꺼져가는 연탄불, 기후약자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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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연탄불, 기후약자 덜덜덜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2.12.22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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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로 보는 연탄학 개론 인문학-경제학-사회학-정치학
기후 정의 때문에 탈 석탄을 추진하고 있지만, 연탄은 기후 약자들의 겨울나기에 필수품이다.  사진=충청리뷰DB
기후 정의 때문에 탈 석탄을 추진하고 있지만, 연탄은 기후 약자들의 겨울나기에 필수품이다. 사진=충청리뷰DB

연탄산업의 불이 꺼져간다. 8년 새 생산량이 76%나 줄었다. 연탄구멍을 늘려 재료비를 줄이고 타는 속도도 빨라졌지만 중과부적이다. 기후 정의 차원에서 석탄 사용을 줄이려는 정책도 한몫했다.

그런데 꺼져가는 연탄불에 전적으로 기대어 사는 이들은 기후 약자들이다. 등윳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돈도 돈이지만 겁이 나서 기름은 못 때겠다는 이들이다. 봄이 되면 바깥보다 집이 추워서 연탄난로를 때는 이들이다. 연탄은 24시간 릴레이로 태워도 기름값의 3분의 1이면 충분하다.

골목길, 비탈길로 이어지는 연탄의 길에 우리 시대의 인문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이 깃들어 있다.


고쿠락, 내로로 바꾸니 으찌나 편하던지

80%가 구공탄 때던 80년대, 만화책 주인공도 구영탄

연탄학 개론- 연탄의 인문학

1976년, 청주시 공보관실이 촬영한 청주 삼화연탄공장. 연탄공장을 찍는 데는 ‘흑과 백’ 무채색으로 충분할 것 같은 느낌. 사진=청주시 포토갤러리
1976년, 청주시 공보관실이 촬영한 청주 삼화연탄공장. 연탄공장을 찍는 데는 ‘흑과 백’ 무채색으로 충분할 것 같은 느낌. 사진=청주시 포토갤러리

찬바람이 들창을 흔드는 밤, 어머니를 깨운 것은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어깨싸움이 벌어지는 아랫목을 우리에게 내주고 가족들의 곤한 잠을 지키려 늘 연탄불을 갈았다.

연탄불은 어머니의 곤한 삶처럼 하얗게 연소했다. 밤새 구들을 데우다 새벽녘에는 은근히 밥을 뜸 들이고 재가 되어서도 비탈진 세상에 으깨어져 위태로운 발걸음마다 연탄길을 열어줬다.

땔감을 하러 먼산나무 다니던 시절을 지나서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연탄을 때던 시절이 있었다. 보일러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나무를 때던 아궁이에 레일을 깔고 연탄을 담은 통을 밀어 넣었다. 이른바 내로식(內路式)’이다. 충청도에서는 아궁이보다 고쿠락이라는 사투리를 더 많이 사용했다.

한때는 연탄을 구공탄(九孔炭)’이라고도 불렀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구멍이 아홉 개 뚫린 연탄이다. 그런데 구멍이 아홉 개인 연탄은 이 세상에 없었다. 구멍이 열아홉 개인 십구공탄을 부르기 편하게 구공탄이라고 부른 것이다.

연탄의 절정은 1980년대. 그중 1987년에는 전국에 240여 개의 연탄공장이 있었고, 연탄용으로 사용한 석탄이 2338만톤이나 됐단다.

오죽하면 당시 대본소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만화책의 주인공 이름도 구영탄이었을까?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구영탄이 등장하는 고행석 작 불청객 시리즈는 박봉성의 신의 아들’, 이현세의 까치 시리즈와 함께 시대를 풍미했다.

1988년까지도 가정의 78%가 연탄을 연료로 썼지만 88올림픽이 분수령이 됐다. 공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며 기름보일러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이었다. 불과 5년 만인 1993, 가정용 에너지에서 연탄의 비중은 33%로 낮아졌다.

누가 아직도 연탄을 때는지는 연탄의 사회학에서 다루겠다. 어찌 됐든 머지않아 연탄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것이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 때문이라도 원초적 석탄인 연탄부터 뜨거운 안녕을 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탄의 정신만은 온기를 이어가길 바란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에서 세상을 향해 물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구멍 늘려가며 버텨도 곧 불은 꺼지리라

생산량 8년 새 77% 감소업체 충북 4곳 등 26개뿐

연탄학 개론- 연탄의 경제학

국내 연탄 소비량은 2013년 191만7000여 톤에서 2021년 44만9000여 톤으로 8년 만에 76.57%나 감소했다. 그래픽=서지혜
국내 연탄 소비량은 2013년 191만7000여 톤에서 2021년 44만9000여 톤으로 8년 만에 76.57%나 감소했다. 그래픽=서지혜

이 시대 연탄 경제학의 핵심 명제는 구멍을 늘려가며(?) 버텨보지만 머지않아 그 불은 꺼지리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참이다.

연탄은 석탄 중에서도 주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는 무연탄을 빻은 뒤 점토 등 점결제(粘結劑)와 섞어 원통형으로 가공한 연료다. 연탄에는 위에서 아래로 뚫린 여러 개의 구멍이 있는데, 구멍이 점점 더 많아지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짐작 가능한 비밀이 있다.

첫째는 공기와 접촉 면적을 늘려 잘 타게 하기 위해서다. 연탄을 갈 때는 반드시 불구멍을 일치시켜야 한다. 그래야 불길이 생긴다. 당연히 구멍이 많을수록 화력은 세지고, 타는 시간도 줄어든다.

보일러 이전 내로식(內路式)에 사용하던 연탄 통에는 아래위로 연탄 두 장이 들어갔다. 갈아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면 불이 꺼져서 번개탄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느리게 타서 한 장에 열두 시간씩, 두 장으로 하루를 땠다.

요즘은 십구공탄이 아니라 스물둘에서 스물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그만큼 재료가 덜 들어가 제조원가가 줄고 화력도 좋다. 타는 시간이 불과 다섯 시간 정도다. 그렇다고 다섯 시간마다 연탄을 갈아야 하는 건 아니다. 보일러는 대개 삼구삼탄식으로, 한꺼번에 3×3, 아홉 장이 들어가고 차례로 옮겨가며 불이 붙는다.

구멍을 늘려 제조원가를 줄이고 빨리 타게 만드는 전략에도 불구하고 연탄 산업의 불씨를 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 연탄 소비량은 20131917000여 톤에서 2021449000여 톤으로 8년 만에 76.57%나 감소했다.

연탄의 주 소비처인 원도심이 하나둘 재개발돼 수요가 줄고, 연탄 대신 등유나 도시가스를 쓰는 가정이 늘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다 탈석탄 정책의 여파로, 제조업체에 주던 정부 지원금마저 크게 줄면서 업계의 경영난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전국 연탄공장은 2019년 서른아홉 곳에서 2020년 서른 곳, 2021년에는 스물여섯 곳으로 불과 2년 새 33.3%나 감소했다. 지역별로 보면 강원과 경북이 여섯 곳으로 가장 많고, 충북이 네 곳으로 뒤를 이었다. 충북에 있는 연탄공장은 충주의 동원에너지, 제천의 동원산업, 제천연탄, 그리고 단양의 성원 등이다. 충북엔 왜 연탄공장이 많을까?


봄이면 바깥보다 안이 더 추워서 연탄 때

충북, 연탄공장 수연탄 사용가구 수 모두 전국 3

연탄학 개론- 연탄의 사회학

24시간 연탄난로가 주 난방원인 박○영 씨네. 박 씨가 허리수술을 여러 차례 한 부인 대신 연탄을 간다. 사진=이재표
24시간 연탄난로가 주 난방원인 박○영 씨네. 박 씨가 허리수술을 여러 차례 한 부인 대신 연탄을 간다. 사진=이재표

도시의 연탄 소비층은 원도심에 있는 단열이 취약한 가옥들이다. ‘웃풍(또는 외풍, 外風)’이 센 이런 집들은 연료비 때문에 껐다, 켰다를 반복해야 하는 기름보일러로는 난방을 감당할 수 없다.

(72) 씨는 1987년부터 청주시 서원구 사북로(청주의료원 아래) ‘불란서집 마을에 살고 있다. 프랑스의 목가적 주택을 본뜬 불란서집이 유행하던 1975년에 지어진 집이다. 1994,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꿨는데, 지금은 5시간 정도에 한 번씩만 돌아가게 설정하고 24시간 연탄난로를 땐다.

박 씨는 기름값이 너무 올라 기름보일러가 역적이 됐다면서 가끔 보일러를 돌리고 잘 때는 옥장판을 틀어놓지만 24시간 난로가 아니면 못산다. 봄이면 바깥보다 집안이 더 추워 4월까지 연탄난로를 땐다고 말했다.

연탄이 복지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20181123일부터 현재까지, 서민 연료인 연탄(3.6kg 1호탄 기준)의 공장도가격 639.0원을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다 판매소까지 운송비와 상하차 비용 개당 12.75, 판매소 수수료 5원을 더한 656.75원이 소매가다.

하지만 판매소들이 자율적으로 배달료를 붙일 수 있다. 연탄 배달처는 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좁은 골목이나 고지대가 많아서 약 200원을 붙이는 것으로 전국 통일이다. 2023년 말 현재 연탄 한 장은 850원으로 1년 전보다 50원이 올랐다.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다른 연료와는 비교불가다. 24시간 다섯 장을 땐다고 해도 한 달에 12만원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1년 전, 한 드럼(200)15만원이던 등윳값은 올해 30만원을 웃돈다. 아껴가며 한 달에 한 드럼만 때도 연탄값의 두 배가 넘는다.

연탄의 경제학에서 경북·강원(6), 충북(4) 순으로 연탄공장이 많다고 했는데, 이는 연탄 사용 가구 수와도 비례한다. 사회복지법인 연탄은행이 집계한 연탄 사용 가구는 2021년을 기준으로, 경북 27894, 강원 19124, 충북도 5893곳 순이다. 사단법인 징검다리가 집계한 충북의 연탄 사용 가구는 약 8700여 곳, 청주는 1080여 곳이다. 여기엔 연탄난로를 쓰는 통계도 잡혀있다.

 

얼굴에 검댕 묻히면 진정성 느껴지잖아

부자감세 추진하는 정부·여당도 에너지바우처는 증액

연탄학 개론- 연탄의 정치학

최현호 충북지사 정무특보가 자유한국당 청주서원 당협위원장이던 2019년, 이옥규 충북도의원, 이완복 청주시의원 등과 연탄 봉사 후 기념 촬영한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
최현호 충북지사 정무특보가 자유한국당 청주서원 당협위원장이던 2019년, 이옥규 충북도의원, 이완복 청주시의원 등과 연탄 봉사 후 기념 촬영한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

연탄을 후원하고 나르는 무수한 봉사자들이 있다. 1995년부터 청주시내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 운동을 시작한 징검다리2006년부터는 연탄 후원금을 모으고 전달하는 활동으로 전환했다. 202211월 말을 기준으로, 16년 동안 238가구에 4206934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봉사자는 3000명이다.

자체적으로 연탄을 후원하는 기업이나 단체도 있지만 플랫폼을 거치는 곳도 적잖다. 2005년부터 노사가 함께 연탄을 기부하고 있는 LG화학 청주공장도 1215, 징검다리에 1만장을 전달했다.

연탄과 정치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모든 정치인은 연탄을 나른다. 연탄을 나르다가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임동현 징검다리 대표도 2020415, 충북도의회 청주10선거구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3자 구도를 뚫고 47%를 얻어 당선됐다. 국민의힘 바람이 분 지난 61 지방선거에서는 6%p 차로 낙선했다.

정치인들은 왜 연탄을 나를까? 아직은 정치지망생 수준인 Q씨는 솔직히 전통시장에서 어묵이나 떡볶이를 먹는 서민 흉내보다는 옷과 얼굴에 검댕을 묻혀가며 연탄을 나르는 게 훨씬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보람도 느끼고 볼썽사납지 않아서 좋다고 털어놓았다.

국회의원들이나 원외 위원장들은 지방의원들이나 당원들과 함께 단체로 연탄을 나른다. 익명을 요구한 X지방의원은 위원장으로서는 당원들을 결속시키는 효과와 함께, 언론에 기사 한 줄이라도 나가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에너지 정치학은 큰 정치에서도 통한다. 대기업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등 일관되게 서민예산을 삭감하고 부자감세를 밀어붙이는 정부여당도 올해 에너지바우처는 증액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예산으로 올해보다 4134억원(3.7%)이 준 107437억 원을 편성했는데, 에너지바우처 예산은 올해보다 31.3% 늘려 1842억원을 책정했다. 민주당은 이 예산을 더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충북도의 올해 에너지 바우처 사업 규모는 작년 대비 59.7% 증가한 489000만원이었다. 충북도는 에너지 취약계층 26400 가구에 대해 연탄과 등유, 도시가스 등의 냉난방 요금을 차감 방식 또는 카드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기사 자문- 임동현 ()징검다리 대표

연탄에 대해 기사를 쓴다고 하니 주변에서 임동현 대표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1995년 심장병 어린이 돕기로 시작해 연탄 나누기 운동도 17년째. 연탄 난방의 흐름과 데이터, 취재원 소개까지 임 대표의 도움이 컸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별도의 인터뷰를 싣지 못하고 기사 전반에 녹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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