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콩트-자치활극 민주시장 오민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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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콩트-자치활극 민주시장 오민심1
  • 글: 이재표 삼화: 최나훈
  • 승인 2022.12.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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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국물의 배반을 진압한 ‘기초의원 추첨제’
삽화: 최나훈
삽화: 최나훈

민충북도(旻忠北道)가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를 위한 연대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서 낸 오민심(吳珉心) 후보가 국력당과 평민당 후보를 제치고 도청소재지인 민주시(旻州市) 시장에 당선됐으니 말이다.

오민심 후보의 당선은 203065, 10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최대 이변으로 손꼽혔다. 오 후보는 33904명이 투표한 선거에서 52%172340표를 얻었다. 현직 시장이었던 집권여당 후보는 24.3%, 평민당 후보는 22.5%를 얻는 데 그쳤다.

평범한 주부, 민북의 수부 점령’ ‘주부의 반란, 오민심 민주시장어디서 군사쿠데타라도 일어나 권력을 장악했다는 얘긴가? 정론지를 자처하는 민충일보와 민충투데이의 66일자 헤드라인이 이랬다.

사실 오민심 후보의 정치 경력이라고는 2025년에 도입된 기초의원 일부 추첨제에 따라 시의원을 지낸 것이 전부였다. 민주시 행복동 1312반장을 15년이나 역임했다고 하나, 아파트 라인의 줄반장이니 이는 어디 이력서에 한 줄 끼워 넣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오민심 씨는 쉰다섯 살의 가정주부다. 국립 민충대학교를 나왔지만, 점수에 맞춰서 철학과에 진학했다. 학점은 4.1로 우수했지만, 마땅히 취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스물다섯에 세 살 위 평범한 직장인과 결혼하고 이듬해부터 연년생 남매를 기르느라고 6년을 육아에 씨름하다가 서른두 살에 취업한 곳이 가정방문 학습지 회사였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마흔세 살에 명예퇴직인지, ‘()에 퇴직인지를 당하고 나서 장모님네라는 토종브랜드 치킨집을 차렸다. 퇴직금에 적금을 깨서 개업한 것인데, 민심 씨가 닭을 튀기고, 남편은 스쿠터를 탔지만 두 사람이 직장생활 할 때만큼의 수입은 나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주는 2년마다 꼬박꼬박 보증금과 월세를 올렸다. 2년 동안 모아놓은 돈을 건물주의 통장에 채워주며 4년을 버텼으나, 동일 상권에 정상급 연예인들이 광고하는 맛슐랭, 뿌링뿌링, 소보루 치킨이 밀려오는데, 개콘도 아니고 유머 1번지 시절의 코미디언이 광고하는 장모님네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애매하게 5년 만에 가게 셔터를 내려놓고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대타를 기다리다가 빈 가게 임대료만 내면서 7개월이 훌쩍 흘러갔고, 결국 원상복구를 해놓고 나가라는 건물주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반 토막 난 보증금을 받아들고 물러서야 했다. 민심 씨는 옛날 가게 앞을 지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먼 길로 돌아서 다녔다.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가 시민들 억울한 사정 해결해 준다는 민주시민참여연대 맞죠? 제가 못된 건물주 만나서 가게 보증금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왔는데요.”

아이고 억울하시겠어요. 우리 단체에는 권리 찾기를 위한 상담 코너도 있고 강좌도 있어요. 이왕이면 회원 가입하시고 안내를 받으시죠.”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오민심 씨는 그때 결심했다. 어차피 집을 정리해 빚잔치는 끝냈고, 이제 아등바등 살기보다 단순하고 단단하며 단아하게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리라고. 금은 한나절만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화목에는 참여연대에 나가서 활동했다.

그중에서도 재미를 붙인 게 의정감시단이었다. 민주시의회가 열리면 방청석에 앉아 직접 감시하거나, 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생방송 또는 녹화방송을 보면서 의정활동을 모니터했다. 감시단으로 활동하면서 의정감시단장을 맡은 여덟 살 아래 김근민(金根民) 국장과는 누나, 동생 같은 사이가 됐다. 김 국장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참여연대 간사로 활동한 시민운동 베테랑이었다.

 

김 국장, 시의원들이란 사람들 웃기지 않아? 방청석에 가서 직접 모니터링을 하면 조는 인간도 적고, 말투나 자세도 진지해지고, 영상으로 모니터할 때랑 느낌이 달라. 영상으로 보면 끼리끼리 어울려 노는 느낌? 머리만 처박으면 몸 전체를 숨긴 줄 아는 꿩도 아니고.”

오민심 단원과 김 국장의 눈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크크큭

민심 씨는 시골에서 자랄 때 뒷산에서 본 머리만 덤불 속에 쑤셔 박았던 꿩을 떠올렸고, 김 국장은 꿩 대신 닭이라더니 뜬금없이 닭대가리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그러게요, 누나. 비용을 줄이고 신속한 절차를 위해서 주민이라는 모집단을 대신하라고 대의(代議)기구인 의회를 만든 건데, 저 사람들의 삶결과 좌표가 주민들과는 너무 다르죠?”

국물의 배신이지!”

?”

요리할 때 간을 보려면 냄비 안의 국물을 한 숟가락만 떠먹어보면 되잖아. 그게 대의민주주의잖아. 유권자는 냄비 안의 국물, 의원들은 숟가락의 국물!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회고, 지방의회고 냄비 안의 국물과 숟가락의 국물이 달라. 이게 배신이 아니고 뭐야? 돈 들여 선거하느니 차라리 추첨으로 뽑는 게 낫겠어. 연령, 성별, 소득 구간까지 균형을 맞춰서.”

 

김 국장은 민심 씨가 참 엉뚱하면서도 상상력은 풍부한 누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의도에도 엉뚱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국회의원이 나타났다. 이상식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민충남도의원 재선을 거쳐 201620대에 첫 금배지를 단 뒤 202823대까지, 용산한성군에서 내리 4선 고지에 오른 중견이었다.

이상식 의원이 기초의회 일부 추첨제 도입에 관한 특례를 도입하자는 지방자치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은 20247, 22대 국회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지방자치법 제31주민이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따라 선출하며기초의회 의원의 33%는 추첨으로 선출한다는 자구를 삽입하자고 했다. 평민당 동료 의원 여덟 명과 사민당 의원 두 명이 서명해서 가까스로 발의했지만, 공동 발의자들도 이 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사실 이상식 의원은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도 상식이 없다는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국회 다원주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정개특위에서 활동할 때부터 그는 100% 연동제를 주장했다. 정개특위는 가까스로 50% 준연동제에 잠정 합의했지만, 21대 총선 직전 국력당과 뒷거래하며 준연동제마저 원점으로 되돌라고 말았다.

이상식 의원은 이때부터 더 이상해졌다. 21대에 당선된 뒤에는 기초단체장을 의회에서 선출하자는 간접선거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에서 단체장 불신임도 가능하게 하고 지방의원의 집행기관 참여도 허용하자는 법이었다. 독립기구로 감사위원회를 두자고도 했다.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계류하다가 자동 폐기됐다. 그런데 22대 들어서는 한술 더 떠 기초의원 일부 추첨제라니!

대다수 의원은 코웃음을 쳤다. 여기저기서 그냥 도의원이나 하지, 국회의원감은 아니지 않으냐고 쑥덕거렸다. 그는 판검사나 고위관료, 학자 출신이 아니었다. 농민운동을 하다가 사민당 소속으로 도의원이 됐으나 국회 진출을 위해 평민당으로 갈아탔다.

하지만 이상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단순한 부채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회나 중앙정부,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 지방의회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의 수장을 바꾸는 게 쉽고 빠르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상식 의원의 국회 연설은 힘찼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국회는 물론이고 지방의회까지 거대 양당이 피 터지게 싸우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는 담아낼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하는 짓은 동물국회고 기능은 식물국횝니다. 어쩌면 국회는 자정의 희망이 없습니다. 세계에 여러 나라가 있고 나라마다 민주주의 진보가 다른 것처럼, 우리나라 안에 다양한 자치가 존재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선진제도를 배우려 노력하는 것처럼 지방정부들이 다양한 자치를 실험하면서, 앞서가고 따라간다면? 또 그 검증된 경험들을 거꾸로 국회와 중앙정부가 받아들인다면 어떻겠습니까?“

 

다들 말은 안 했어도 신물이 나던 터였다. 국회선진화법이고 뭐고 20년째 굳어진 양당 구도 속에서, 또 제왕적 대통령제 속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다 보니 아무리 낯이 두꺼워도 국민 볼 면목이 없었다. ‘우리가 아니고 지방의회니까’ ‘어차피 실험이니까 일부에서만이라도라는 전제 속에서 한 번 해보자는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민충북도에선 인구 50만이 넘는 민주시가 대상이 됐다. 유권자 71만명의 1%7100명의 신청을 받아서, 그중에 열세 명을 추첨제로 뽑기로 했다. 민주시의회 정족수 42명의 33%가 열세 명이었다. 추첨은 연령, 성별, 소득 구간 별로 전체 유권자와 비례가 맞을 때까지 진행됐다.

202664일 아침,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시의회 당선자와 당첨자가 동시에 발표됐다. 당선자 스물아홉 명 중 국력당은 열네 명, 평민당은 열세 명, 사민당은 두 명이었다. 당첨자는 남성 일곱, 여성 여섯 명 등 총 열세 명. 40~50대 여성 당첨자는 바로 오민심 씨였다. 개표 및 추첨방송을 함께 지켜보던 남편이 민심 씨를 와락 껴안았다. 눈가에 눈물이 비치는 것 같았다.

 

여보 당선 축하해

당선이 아니라 당첨이라니까요.“

*다음 호에 2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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