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커피, 그 소녀를 다시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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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커피, 그 소녀를 다시 만났죠”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1.04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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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빛처럼 세상을 조율하는 권일문 조율사

지난봄, 공립유치원에서 조율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어요. 일을 마치고 나니 교사가 제게 선생님 저 기억 안 나시죠? 제가 오래전 그 꼬마예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제야 오래전 소금 커피가 떠올랐습니다.”

말문을 떼는 권일문(54) ‘피아노샵대표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권 대표는 2008년에 늦깎이로 피아노 조율사가 됐다. 자영업을 접고 피아노학원에 책을 납품하다가 낯선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초짜 조율사에게 피아노를 고쳐달라는 전화가 왔다. 오라는 데로 가니 지하층에 사는 청각장애인 부부가 권 대표를 맞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집주인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듯한 여자애가 소리도 나지 않는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권 대표는 손도 댈 수 없는 전자피아노였다.

부부와 아이의 눈빛을 보니 차마 못 고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쳐준다고 가지고 왔다. 마침 반품 들어온 새 전자피아노가 있었다. 고친 것처럼 가져다주니 꼬마만 알아챘다. 그때 아이가 타 준 커피가 소금 커피였다. 설탕인 줄 알고 잔뜩 넣은 것이 소금이었으나 권 대표는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느냐고 물었죠. 내가 준 전자피아노 밑에 연락처 스티커가 있었다네요.”

권 대표는 자신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동안 이곳저곳에 자신이 고친 중고 피아노를 기증했다. 주로 아동 관련 시설이었다. 일부러 헤아리지는 않았는데 20여 대쯤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권 대표의 피아노샵은 내비게이션 없이는 찾아갈 수 없는 한갓진 곳에 있는 창고다. 권 대표는 그곳에서 피아노를 고치고 조립한다. 손을 본 중고 피아노는 주로 학원 등에 되판다.

권일문 조율사가 만든 투명피아노
권일문 조율사가 만든 투명피아노

아크릴판으로 만들어 속이 비치고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소리에 반응해 LED 조명이 들어오는 투명피아노2016년 그의 손에서 처음 탄생했다. 지금까지 140대 정도를 전국에 유통했다.

현재 청주의 조율사는 스무 명, 피아노를 옮기는 기사는 단 두 명뿐이다. 피아노를 운반할 때 최소 두 명이 필요하니 가끔 운반사 일도 한다. 남자아이는 무조건 태권도를 배우고, 여자아이는 피아노를 배우던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피아노가 거의 팔리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건반을 두드리지 않아도 줄은 장력으로 인해 풀린다는 것! 더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해 풀림이 더 심하다는 사실이다. , 그를 포함한 대개의 조율사는 바이엘도 칠 줄 모른다. 세상을 조율하는 하늘님처럼 참으로 오묘한 조율사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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