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머리를 가진 대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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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머리를 가진 대의민주주의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3.01.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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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의 기원과 위기 논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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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서 : 신생 미국에서 최초로 채택된 대의와 권력분립 제도는 군주와 귀족의 독재를 막기 위한 것(민주적 계기)이기도 하지만, 민중의 정치참여와 집적, 집중을 막기 위한 것(반민주적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근대의 정치엘리트들은 대의정부를 수립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부유층과 엘리트들만이 선거권을 갖고 그들만에 의해 의회와 정부가 구성되는 헌정질서를 주조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고, 그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보통선거권 운동으로 나타납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그와 동년배인 영국의 밀(John Stuart Mill)은 민주주의에 보다 우호적입니다. 그는 모든 시민들이 신분·재산·교육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두 1표의 선거권을 갖는 정치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대의정부가 민주주의와 상응하는,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대의정부의 민주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밀은 대의민주주의는 지적·윤리적 탁월함의 담지자들에 의해 제어되고 지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의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대표를 선출하여 정치를 수행케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책임을 묻는 제도로, ‘대표성책임성원리를 양대 축으로 합니다. 밀은 이 양대 축을 수정하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먼저 보편적이고 평등한 참정권에 기초한 대표성 원칙을 수정하여, 교양계층이 보다 많이 대표로 선출될 수 있는 제도를 제시합니다. 전문직이나 대학졸업자들에게 여러 장의 투표권을 부여하고, 고위공직자나 군사령관 출신과 같은 저명인사들만으로 구성된 상원을 별도로 설치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각자 의견은 언제나 일정한 몫으로 계산될 수 있다. 다만 사람에 따라 투표의 값어치를 다르게 산정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이 제도에서 낮은 값어치에 매겨진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공동 관심사에 대해 자기 의견을 반영할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과, 공동체 일은 더 잘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발언권을 가지게 양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 둘은 그저 다른 것이 아니고,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바보, 그것도 아주 구제불능의 바보라면 모를까, 사람들 중에는 생각이나 그 이상의 희망사항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것보다 더 큰 배려를 받아야 마땅한 예외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 , 대의정부론

 

그러나 밀은 민주적 대표성의 왜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왜곡된 대표 원리에 따라 선출된 이들이 무지한 시민들의 관여와 추궁에서 벗어나도록 최대한의 권한과 재량을 부여하고, 시민 대표인 의회도 행정과 사법 관료들의 판단과 행위에 되도록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민들보다 월등히 탁월한 의원과 관료들이 오직 자신들의 전문가적 지식과 공적 사명감에 따라 판단하고 처신할 수 있게 되면, 모든 시민과 공동체를 위한 보다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민주주의의 수직적·수평적 책임성을 현저히 약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인민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큰 전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최대한 늘리자는 것이다.대의기구의 기능을 이처럼 합리적 한계 안에서 억제해야만 한편으로 민주적 통제, 다른 한편으로 숙련된 입법과 행정이라고 하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각의 기능을 분리, 즉 통제와 비판을 담당하는 부서를 실제 업무를 추진하는 기관으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 앞의 일은 다수 국민을 대표하는 기구에 맡기고, 뒤의 일은 국민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 전문 지식을 갖추고 특수 훈련을 거친 소수의 경험자(관료를 의미)에게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앞의 책

 

정치를 엘리트와 관료의 전유물로

 

조지프 슘페터(1883∼1950)
조지프 슘페터(1883∼1950)

밀의 이러한 정치와 행정에서의 수직적·수평적 책임성 완화, 엘리트·전문가·관료주의 강화는 슘페터(Joseph Schumpeter)에 의해 극단으로 전개됩니다. 슘페터는 대중과 전문적 정치집단 간의 정치분업을 극단화하여 정치는 정치엘리트들이 전유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대표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하는 일에 참견하려 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 그는 유권자가 대표에게 편지나 전보를 보내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시민의 대표인 정치인이 관료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료가 정치인을 지시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슘페터는 밀이 말하는 인민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전제와 양립하는 한계 내에서”,“국민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라는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와 제한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그는 책임성의 완화가 아니라 그것의 제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관료가 일상행정에서 능률적이어야 하고 충고를 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료는 동시에 정부의 수장인 정치인을 지도하고 필요한 경우 지시할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관료는 자신의 원리들을 전개하는 지위에 있어야 하고 그 원리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관료는 마땅히 독자세력이어야 한다. -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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