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선수들 이름이 뭐예요? 왜 숨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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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수들 이름이 뭐예요? 왜 숨기죠?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2.02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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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모 학교 수영대회 입상자 현수막에 ‘김O경’식 표기
시민들, 자랑스럽고 대견한 일인데 굳이 숨길 필요 있나
학교측, 선수들 본인 공개 원치 않아···당당히 밝혔어야

 

두 얼굴- 개인정보보호 명분으로 전국수영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수개월째 학교 정문에 내걸린 현수막(왼쪽)과 프로축구팀에 입단한 졸업생 이름을 다 적어 환영하는 청주 덕성초 정문 옆의 현수막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
두 얼굴- 개인정보보호 명분으로 전국수영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수개월째 학교 정문에 내걸린 현수막(왼쪽)과 프로축구팀에 입단한 졸업생 이름을 다 적어 환영하는 청주 덕성초 정문 옆의 현수막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저게 뭐야?

청주시내 한 중학교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곤 한다. 학교 정문에 걸린 현수막을 학생들 이름을 뺀 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수막 내용을 보면 더욱 기가 찬다. 전국수영대회 결과를 알리는 내용이어서그렇다.

현수막 내용은 이렇다.

71회 회장배 전국수영대회 금메달 김O(3학년)-여중 평영 200m, 은메달 김O(3학년)-여중 자유형 100m

2022 교보생명컵 꿈나무 체육대회 여중 자유형 200m 2위 김O(3학년)

자유형 메달리스트 김O원 선수는 동일인이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학교 측은 현수막에 경축이라고 해 놓고 막상 선수 이름은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학생이 스포츠든, 각종 경연대회든 전국 규모 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학생 자신의 영광도 영광이지만 학교 명예를 드높이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래서 수영 명문 학교인 이 학교 학생들이 전국수영대회에 나가 메달을 획득한 쾌거는 대내·외에 홍보할 좋은 소재다.

더욱이 학교 측이 수영대회가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다소 빛바랜 현수막이지만 아직도 내걸고 있다면, 지금은 졸업한 이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현수막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시민 A 씨는 전국 대회에 나가 입상하려면 평소 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겠나. 그런 선수들의 이름을 널리 알려도 시원찮을 판에 선수 이름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비록 성별과 나이는 다르지만 이 학교 현수막과 대조되는 곳도 있다.

축구 명문 청주 덕성초등학교 정문 옆에는 이 학교 60회 졸업생인 최성범과 61회 이현규, 63회 박준서의 프로축구팀 입단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 3개가 내걸렸다.

두 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은 모두가 축하 메시지를 담은 것인데 이렇듯 이름을 온전히 밝히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축하 온도가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다.

교정에서 만난 여중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일이죠. 우리 학교도 선수 이름을 다 밝혀 축하해 주고 학교 안팎으로 홍보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요즘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라는 벽에 막혀 어쩔 수 없이 가운데 이름을 숨기고 현수막을 내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당당하지도 않고 보기에도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이름을 밝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원치 않는다고 해서 익명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보호법. 이 법에서 사용하는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말한다.

각종 컴퓨터 범죄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이다.

사생활 보호와 범죄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일선 학교는 홈페이지에 교사는 물론 교장의 이름마저 노출시키지 않을 정도다. 개인 휴대폰 번호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민원 때문에 비공개를 공개로 전환한 일도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202010월 이전까지 전 직급 인사발령을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그러나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사건 이후 K에듀파인 일반게시판을 통해서만 공개해 일반인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이에 일부 퇴직공무원들이 관련 법령 위배라며 이의를 제기하자 도교육청은 지난해 1월부터 5급 이상 인사발령 내역은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각에서는 개인정보보호를 내세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B 씨는 좋은 성적을 낸 운동선수의 경우 대개가 언론을 통해 이름이 공개된다현수막 이름을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도 아닌데 좀 더 담대하게 대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익명 처리로 당당하지 못하다는 모습을 보여줄 바에야 차라리 현수막을 내걸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영이 기자 kimyy@cc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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