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머리를 가진 대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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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머리를 가진 대의민주주의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3.02.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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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의 기원과 위기 논쟁 (4)

 

전회에서 : 현대 대의민주주의 근간인 대의와 권력분립 제도는 역사적으로 민주적 계기와 반민주적 계기를 동시에 갖고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군주와 귀족의 독재권력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민중의 정치적 힘을 봉쇄하고 제어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되며 서구에서 보통선거제는 서서히 제도화되어 갔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20년 동안 대의민주주의는 최대의 호황기를 맞습니다. 대의민주주의는 정치공간에서 유일한 게임규칙으로 정착되었고,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케인즈주의와 복지정책으로 시민들의 권익과 복지가 점증하고, 그만큼 국가와 권위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1970년을 전후하여 발생한 신사회 운동과 세계 경제위기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기대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서구는 1968년 이후 10년 동안 흑인인권 운동, 베트남전 반대, 반핵, 페미니즘, 생태보호 등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는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또한 1970년대 있었던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하강은 인플레이션, 실업률 증가, 만성적 재정적자를 도드라지게 하여 기존의 복지국가를 지탱했던 사회적 공감과 합의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희망으로 가득찼던 대의민주주의가 이제 의심받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현대 대의민주주의 위기논쟁

 

그러나 이러한 현대 대의민주주의 위기의 원인과 그 대안에 대한 모색에서 우파와 좌파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파는 위기는 민주주의의 과잉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시민과 노동자들의 과도한 민주적 요구와 압력, 즉 시민들의 점증하는 복지요구, 노조의 경영참여와 정치개입, 시장과 기업에 대한 과도한 행정규제 등으로 정부가 과부하에 걸려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파에서는 자유·사유재산·시장만이 절대적 원리라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 기업과 시장에 대한 정부규제 완화·공적 영역의 사영화(私營化노동유연성과 노동통제 강화·서민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의무·시위와 범죄에 대한 강력한 법집행을 주장하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가 등장하고, 이후 이러한 논리로 무장한 이들이 1980년을 전후하여 영국 대처 정부와 미국 레이건 정부를 출범시켜 전세계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게 됩니다.

 

좌파들은 우파와 정반대로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의 근원에 민주주의 부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현대 정치는 민주적 형식을 띄고 있지만, 실질은 자본 권력과 그와 긴밀하게 연계된 관료 권력이 장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치가 사회경제적 특권층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채 기업과 부유층 편향적인 결과물만 산출하고, 시민들의 민주적 요구와 이익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해 위기에 처했다고 봅니다.

이에 따라 좌파들은,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소규모 공적 영역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 결정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관료 권력을 최소화한 정치체제를 구축하자는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공적 영역을 넘어 기업·공장·학교 등 사적 영역에서도 (참여의 방식이건 대의의 방식이건) 그 내부의 노동자나 구성원들이 경영하고 관리토록 해야 한다는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민주주의 이전의 시대에 우파들은 정치의 주체를 제한함으로서 민주주의를 억압하려 했습니다. 플라톤의 철인왕국,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체, 근대의 대의정부는 모두 귀족, 부유층과 엘리트만이 정치의 주요한 주체가 되는 체제였습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정립된 이후 우파들은 정치의 영역을 제한함으로서 민주주의를 억압하려 합니다. 현대의 우파는 민주정치가 작동하는 영역은 오직 공적 영역에 한정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많은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전환하여 시장의 원리를 따르게 하고, 공적·정치적 영역일지라도 시민들이 아닌 전문적 능력을 갖춘 엘리트·전문가·관료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하여 좌파는 민주정치가 작동하는 공적 영역의 확대를 주장하며, 공적 영역에 민주적 정당을 갖추지 못한 엘리트·전문가·관료 권력과 기업·시장 원리가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비판하고, 오히려 사적 영역에도 점진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로에 선 현대 대의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는 두 개를 머리를 가졌기에 민주적으로 구성될 수 있고, 비민주적으로도 구성될 수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정치의 공간에서 제대로 자리잡고 이러한 체제가 오래 지속될수록, 일반 시민의 권력이 커지고 그들의 요구와 이익에 부합하는 경향이 점증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오히려 재벌 권력의 지배력과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각종 정부기구와 위원회는 민주적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전문가와 관료들의 손에 점점 더 내맡겨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먼 미래에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한다면 어떠한 체제일까요?

유일하게 상상 가능한 것은 외형은 대의민주주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 권력과 그것을 호위하는 정치엘리트와 기술관료들이 지배하는 세상뿐입니다. 고대의 플라톤부터 현대의 우파에 이르기까지 우파들은 정치(민주주의)의 성패는 엘리트·전문가·관료들이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일반 시민과 민주주의를 통제할 수 있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의 우려를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성패는 일반 시민들(또는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엘리트들)이 점증하는 엘리트·전문가·관료주의와 그들의 근간인 자본 권력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느냐, 즉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수행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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