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정념에서 피어나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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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정념에서 피어나라, 인문학!
  • 주현진 인문학자
  • 승인 2023.02.16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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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대상을 탐구하고 관찰한 구체적인 기록

격정의 붉은 빛에 물든 가슴을 던져버린 시인이 있다. 기원으로부터 육백여 년 물러난 시간계에 살았던 시인은 그리스반도의 서쪽 이오니아 바닷가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 플라톤이 열 번째 뮤즈라고 칭송한 서양 최초의 서정 시인이자 최초의 여성학자인 사포(Sappho)의 이야기다. 아도니스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비견될만한 미모를 가진 남자를 열렬히 사랑하였던 사포는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자 녹슨 하프와 갈라진 심장을 내던지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라는 마지막 시를 남기고 죽음을 선택하였다.
 

 

비애적인 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사포는 한반도에 최초의 시를 피어나게 한 또 다른 서정(抒情)을 떠올린다. 흰 머리 풀어헤치고 강물 속에 휩쓸린 술 취한 남편을 따라 들어간 여인이 공후(箜篌)’를 뜯으며 물결에 흘려보낸 서정이다. 그 격정의 장면을 목격한 뱃사공의 아내 여옥이 다시 불렀는가? 미지의 여인이 세상에 던져놓은 서정의 노래 <공무도하가>를 말이다.

21세기 초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득한 옛적 사람들의 서정은 한낱 문학사의 첫 장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첫 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자. 더군다나 인문학이 유행하는 시대를 누리는 시민으로서 말이다. 가마득한 시공간에 떠돌던 격정의 시가 물려준 위대한 문화자산으로서 인문학을 사유해보자.

과학기술문명의 시대인 현재 인문학이란 말이 범람한다. 시간도 공간도 길들이지 않는 물과 같이 자유로이 흐른다. 십여 년 전부터 시민사회 속으로 가장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진지한 학문과 관념의 용어가 있다면 그것은 인문학이고 인문학적이란 말이다.

책을 좋아하거나 자기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인문학이란 수식어에 더더욱 쉽게 매료당한다. 그래서인가? 오늘날 인문학이란 단어는 영역과 범주를 가리지 않고서 이공계 경제계 교육계 시민사회 등 어느 차원에서든 멋들어지게 사용되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혁신적인 기업경영도 인문학을 부르짖고, 인공지능 기술도 인문학을 찾고, 기후변화 시대의 환경정책도 인문학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모든 한국인들의 욕망을 일관되게 응집시키는 부동산에도 인문학이 들러붙는다. 이제 인문학은 신앙과 같은 경지에 올려져있다. 그럼에도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면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래서 인문학이 위기인 것인가? 이십여 년 이상 인문학에 몰두해온 필자는 요즘처럼 인문학이 광범위하게 또한 보편적으로요구된 시대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문학이 머지않아 대우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필자는 이 현상에 만족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곳에 머무는 씁쓸함을 괴로워한다. 아마도 이 꺼림칙함은 필자가 생각하는 인문학과 통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인문학 간에 놓인 상당한 간격을 자각한 때문이리라.

또한 대중적이고 소통적인 후자는 얇은 막에 싸인 공허한 말들의 모음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특히 하루가 멀다고 방영되는 인문학특강에 초대되는 이른바 인문학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함은 깊은 비애감으로 변하기 일쑤다. 유명 인사들이 교수, 작가, 종교인, 의사라는 직함을 내밀고 시청자들에게 인생을 조언하는 인문학적인방송을 보면 더욱 더 그러하다. 그들이 어떤 인문학적인 여정을 통과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아름답게 설명하는 산문집 몇 권 출간했을 뿐이다.

이렇듯 인문학은 에세이란 자유로운 장르를 통해 인생을 조언하는 방법론으로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과연 인문학의 모습이 그러한 것인가? 일반인들이 누릴 수 없는 가정환경과 기회를 제공받으며 백세를 살아온 철학교수가 인생의 지혜라고 들려주는 훈계가 인문학의 본질인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종교인이 냉소를 머금고 삶에 대해 거침없는 충고를 던지는 것이 인문학적인 태도인가? 이들이 내뱉는 무형의 말들보다 더 인문학적인 것은 사랑을 잃어버린 사포가, 고조선의 여인이 인간에게 품은 정념을 형상화한 시와 노래이다.

인문학은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 사람, 시간과 공간을 추상의 언어로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의 정수는 글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피상적 행위에 있지 않고, 사유의 대상을 관찰하고 탐구하고 기록하는 구체적 행위에서 발견된다. 말하자면 인문학의 실체인 을 지탱하는 인간적인 정념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소통해본 적도 없는 타인들을 캔버스로 여기며 마음껏 스케치하는 퍼포먼스의 학문이 아니다. 타인들을 향해 던져진 추상의 말은 유사인문학일 뿐이다.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학교 초빙교수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학교 초빙교수

그러하니 인문학에 매료당한 사람들이여, 필자와 함께 인간적인 정념을 추구하는 인문학의 자취를 탐색해보지 않겠는가? 앞으로 우리는 이 지면 위에서 펼쳐질 인문학의 유구한 숲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정념의 인문학에 취하라!> 진열대를 책임지게 될 인문학자의 첫 인사말을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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