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휴식에 젖는 일본 료칸(旅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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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휴식에 젖는 일본 료칸(旅館) 여행
  • 고재열 전문기자
  • 승인 2023.03.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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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설국(雪國)의 고장 ‘유자와’ 등 온천 관광과 연계
대부분의 민숙(民宿)도 식사제공, 온전한 휴식에 초점
유자와 온천마을의 타가한 료칸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의 무대다.
유자와 온천마을의 타가한 료칸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의 무대다.

료칸에서 본 한국 관광의 미래

20년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창직(創職)’했을 때 포부는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을 기획하겠다는 것이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 여행 정보가 집중되면서 청년의 취향이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어른을 위한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접하면서 그들을 위한 생애 전환 여행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이런 여행기획자에게 일본여행이란? 한마디로 돈값을 하는 여행이다. 일본여행의 장점은 확실하게 값어치를 증명한다는 점이다. 물론 가까워서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점도 바쁜 현대 도시인에게 장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어른의 여행의 첫 경험을 일본에서 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일본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사케투어’ ‘트레킹여행’ ‘미식기행등 다양한 테마로 일본여행을 기획하는데 숙소는 되도록 료칸(りょかん, 旅館)을 쓰고 있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고도의 숙식 테크닉 중 하나인 료칸을 이용하면 집약적으로 일본을 경험할 수 있다.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일본의 료칸은 이미 큐레이션 해두고 있다. 그 지역 식자재로 요리한 카이세키 요리, 그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그 지역의 민속 등을 이미 모아두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다양한 형태의 료칸기행을 진행했다. 일본 료칸에도 코로나19의 잔상은 남아있었다. 종업원이 부족해서 부분 개장한 곳도 많았고,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곳도 많았다. 예전만큼의 친절 과잉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료칸이 주는 힐링은 여전했다. 사람들은 짧은 일정에서도 깊은 휴식을 경험했다.


소설 설국의 무대도 관광지화

유자와 온천마을의 타가한 료칸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의 무대다. 그래서 료칸에서도 책을 접할 수 있다.
유자와 온천마을의 타가한 료칸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의 무대다. 그래서 료칸에서도 책을 접할 수 있다.

쿠로카와 오쿠히다등 전통 온천마을도 가보고 일본 숙박업계의 혁신을 일으킨 호시노 카이 브랜드의 카이지와 키누카와도 경험해 보았다. 겨울에 설경 속에서 즐기는 온천욕은 특히 일품이었다. 쿠로카와는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적인 온천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구현해 주었고, 오쿠히다는 압도적인 설경을 선사했다. 일본 3대 온천마을로 꼽히는 게로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무대인 유자와는 관광단지화 돼 온천마을의 발전 형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겨울 료칸을 두루 답사하며 느낀 것은 일본 료칸의 규모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료칸끼리의 격차가 컸다. 우리는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의 료칸을 상상하는데 중소기업 정도는 될 정도의 리조트형도 많았고 호시노 브랜드처럼 대기업 규모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게로와 유자와에는 전통있는 료칸 중소기업들이 있었다. 게로에서 묵은 슈메이칸은 일왕가를 비롯해 유명인들이 주로 찾는 곳인데 고층 숙박동만 세 동으로 웬만한 리조트 규모였다. 게로에는 슈메이칸과 같은 료칸이 열 곳이 넘었다. 유자와 온천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스키 리조트까지 있어서 우리나라 강원도 전체에 있는 숙박시설을 다 모아놓은 규모였다.

기업화된 료칸은 시설 안에서 모든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주점과 상점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한 번 들어오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들어와서 탕에 몸 좀 담그고 가볍게 쇼핑 좀 하고 식사 후에 술 한잔하는 것까지 모두 가능했다. 여행자의 몸을 붙들어 매는 재주가 탁월했다.

일본 료칸을 두루 답사하며 답답한 한국 관광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내수 위주로 관광산업이 발전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해외여행 위주다. 인구 12600만 명의 일본이 한 해 1500만 명 정도 해외에 나가는 데 반해 인구 5200만이 조금 안 되는 대한민국은 한 해 3000만 명 가까이 해외에 나간다. 환산해보면 한국인이 다섯 배 정도 해외에 더 자주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사를 제공하는 료칸 문화

일본 숙박업계의 혁신을 일으킨 호시노 카이 브랜드의 카이지 료칸
일본 숙박업계의 혁신을 일으킨 호시노 카이 브랜드의 카이지 료칸

일본은 여행 수요를 내수로 끌어들였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의 여행문화 차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숙박과 식사의 일치 여부다. 일본은 료칸을 비롯해 온천호텔과 대중적인 민숙(民宿)까지 대부분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저녁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숙소에 일찍 도착해서 대욕장 등에서 목욕을 하고 일찍 휴식을 취한다. ‘쉼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늦게 들어가거나 저녁식사를 위해 숙소를 나와야 하는 한국과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또 하나 료칸의 핵심 코드는 지역의 재해석이다. 일본의 료칸에는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없다. 그 지역의 식자재와 그 지역의 전통을 재해석해서 숙박자들이 경험하게 한다. 료칸의 카이세키를 먹어보는 것이 그 지역 식자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인테리어에 지역 특색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 고민의 끈을 놓은 한국의 숙박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침체기를 맡고 있다. 21세기 들어서 펜션과 콘도 위주로 숙박이 발전했는데 핵가족화를 넘어서 ‘1인 가족화되면서 이런 숙박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문화에서 사 먹는 문화로 바뀌면서 펜션과 콘도의 키친 시설이 쓸모없이 공간만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의 온천관광은 전성기보다 이용자가 10분의 1로 줄었다. 우리가 일본의 료칸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일본 숙박업계의 혁신을 일으킨 호시노 카이 브랜드의 키누카와 료칸
일본 숙박업계의 혁신을 일으킨 호시노 카이 브랜드의 키누카와 료칸

*이 기사는 다음 호에 2편으로 마무리됩니다.

고재열

‘바쁜 현대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을 기획하는 여행감독이다. 시사저널과 시사IN에서 20년간 기자로 일했다. ‘트래블러스랩’이라는 여행클럽을 운영하며 <월간 고재열>이라는 여행을 매월 발행한다. ‘어른의 허비학교’라는 스테이형 여행도 기획한다. <미리 써본 북한여행 기획서> <생애, 전환, 학교> <기자로 산다는 것 1,2>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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