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을 개·돼지로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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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개·돼지로 아십니까”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3.03.1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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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내 주요 사거리에 여야 정당 막말 쏟아낸 현수막 수두룩
충북도지사 치적 관련 현수막도 자주 등장…기관 단체가 걸어

 

정당 현수막이 내걸린 청주 상당공원 사거리
정당 현수막이 내걸린 청주 상당공원 사거리

 

현수막 공해
청주시민들의 반응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으로 전국민이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충북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청주시내 주요 사거리가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지난 9일과 12일 청주시내 주요 거리를 돌아 보았더니 충북도청 서문 앞, 상당공원 사거리, 방아다리 사거리, 내덕 칠거리, 육거리시장 입구가 특히 심했다.

국회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각 정당은 지자체 허가 없이 현수막을 아무데나 15일간 부착할 수 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충북도당이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문구를 쏟아내고 있다.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 절실”
 

청주시내에 내걸린 현수막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구호를 담은 정당 현수막이고, 다른 하나는 충북도지사 치적을 홍보하는 것이다. 후자는 지정된 자리에 걸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불법 현수막인 것이다.

지금 청주시내 주요 사거리에 걸린 정당 현수막은 민주당의 ‘윤석열정권 치욕적 강제징용 셀프배상, 이완용의 부활인가’와 국민의힘 ‘이재명판 더 글로리,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다. 현수막을 내건 사람은 민주당 4개 구 지역위원장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이외에 서원구에는 김진모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민주당 138인, 범죄피의자 지키기 성공’, 청원구에는 변재일 지역위원장이 ‘연진아, 네 아빠도 검사니?’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청주의 모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정치적 현안이 생겼을 때 정당에서 현수막을 걸라고 한다. 문구는 정해져 있고 보통 4장 정도 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은 정당만 생각한 것이고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저기서 법 개정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는 전국 문제가 됐다.

청주시의 한 구청 관계자는 “시민들로부터 현수막 문구가 너무 심하니 조치해 달라는 신고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하지만 법적으로 15일 동안 걸 수 있어 어쩔 수 없다”며 “내가 봐도 너무 자극적이다”고 밝혔다. 시민 모 씨는 “이게 바로 언어폭력이다. 여야 정당에서 누가 더 폭력적으로 말하나 내기 하는 것 같다. 아마 시민들을 개, 돼지로 아는가 보다. 이럴수록 정치와 정당에 대한 혐오감만 쌓인다.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런가하면 시내 곳곳에는 충북도지사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많이 내걸렸다. 지난 12일 충북도청 서문 앞에는 ‘경축 충청북도 라이즈(RISE) 사업 선정’ ‘지자체 주도 대학지원 시범지역 충북 선정을 환영합니다’ ‘우리 모두의 소중한 아이! 충북이 함께 키웁니다’ 등이 죽 걸려 있었다.

언제부턴가 서문 앞은 아예 충북도 산하기관 및 관변단체들이 내거는 현수막 장소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조용할 새가 없다. 정문 앞에도 자주 걸리나 대로변에 있는 서문 쪽이 훨씬 더 심하다. 민선7기 이시종 전 도지사 때도 현수막이 쉴 새 없이 걸렸다. 민선7기 후반기에는 충청권 광역철도 청주 도심통과 관련 현수막이 등장했다. 이 전 지사가 이를 일관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충북도지사 치적 홍보 현수막이 걸린 충북도청 서문앞
충북도지사 치적 홍보 현수막이 걸린 충북도청 서문앞

 

충북도, 산하기관과 관변단체에 요구
 

민선8기 김영환 도지사로 바뀐 이후에도 충북도의 현수막 행정은 계속된다. 김 지사가 레이크파크 충북을 화두로 내놓자 바다없는 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내륙지원특별법 제정 등의 현수막이 동네마다 걸렸다. 지금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는 ‘중부내륙 연계발전지역 지원특별법 조속히 제정하라’는 현수막이 남아있다. 중부내륙 연계발전지역 지원특별법 제정추진 민·관·정 공동위원회가 걸었다.

지난 9일 김영환 지사는 충북도가 라이즈(RISE) 시범지역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 2일 김 지사가 청주시와 출산양육수당 합의사실을 밝히고 다음 날 ‘임산부를 국가유공자라는 생각으로 보살피겠습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자 이와 관련된 현수막이 줄줄이 걸렸다. ‘출산가정을 국가유공자처럼 모시겠습니다’ 같은 것도 등장했다. 그 신속성에 놀랄 정도다. 그러나 이런 현수막은 충북도가 거는 게 아니다. 산하기관과 관변단체가 한다. 현수막에도 주최측의 이름이 씌여 있다.

모 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런 현수막은 충북도 사업의 이슈몰이 역할을 한다. 여러 기관 단체가 동시에 거는 건 충북도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충북도 해당과는 산하기관과 관변단체에 ‘이러 이러한 문구로 현수막을 걸어라’고 한다. 몇 개 라고는 하지 않고 가급적 많이 걸라고 한다”고 말했다. 산하기관과 관변단체는 충북도에서 예산을 받기 때문에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충북도는 일종의 ‘을’인 기관 단체에 현수막을 걸도록 지시하고. 시민들은 매일 그것을 쳐다보고 사는 것이다. 이 또한 현수막 공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13일 페이스북에 “디지털을 넘어 챗GPT 시대에 무질서하게 내걸린 정당 현수막은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후진정치의 전형”이라며 잘못된 법의 폐지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충북의 자치단체장 중 이런 의견을 낸 사람은 없다. 실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21세기 정보통신시대에 현수막 구호 정치와 행정은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다. 일부 청주시민들은 ‘내로남불’의 결정판인 정당의 구호정치와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충북도 행정을 중단하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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