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의 몰락, 실리콘밸리뱅크 파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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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의 몰락, 실리콘밸리뱅크 파산으로
  • 백정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3.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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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스위스 인수까지 ‘블랙먼데이’ 문턱까지 간 글로벌경제
글로벌은행 파산 공포, 각국 정부 진화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
기준금리 4.75%까지 오르자 연준 만류에도 손실 보며 현금화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 보유고에서 미 국채를 줄이는 대신 금을 사고 있다. 특히 세계 미 국채 보유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미국채 보유총액 감소는 심각하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 보유고에서 미 국채를 줄이는 대신 금을 사고 있다. 특히 세계 미 국채 보유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미국채 보유총액 감소는 심각하다.

310, 미국 은행 순위 16위인 실리콘밸리은행(SVB·Silicon Valley Bank)’이 파산했다는 소식이 타전된 직후부터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S)가 스위스 1위 은행 UBS에 인수되었다는 속보가 날아든 20일 새벽까지 열흘간 국제금융계는 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시와 맞먹는 혼돈과 충격의 시간을 보냈다. 사태의 파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은행들의 연쇄 파산사태가 주는 충격이 컸던 이유는 그 진앙이 다름 아닌 기축통화국 미국이라는 점. 곧이어 터진 세계적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파산 이슈는 실리콘밸리은행으로 시작된 미국 은행들의 파산사태가 2008년 리먼 사태를 넘어서는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위기로 인식됐다.

현재 글로벌 은행 파산 공포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뒤에 살펴볼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 대책을 발표하면서 잠시 진정됐고, 유럽에서는 스위스 스위스국립은행(SNB)141조가 넘는 대규모 자금을 UBSCS 인수에 지원하면서 은행 파산 공포가 전 세계 자산시장을 집어삼키는 것은 일단 막은 상태다. 하지만 미국 내 지역은행 파산 공포는 여전히 확산 중이다. 만약 지난 월요일(20) UBSCS인수가 발표되지 않았다면, 세계 자산시장은 1987년 미국 주식시장을 덮친 블랙먼데이를 다시 소환하기 충분할 만큼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SVB, 미국 장기국채에 투자하다

2023년 2월 기준 최근 5년간 미국 정부 부채 증가 추이.
2023년 2월 기준 최근 5년간 미국 정부 부채 증가 추이.

이번 글로벌 은행파산공포의 방아쇠를 당긴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근본적으로 세계 최고 안전자산이라는 미국 국채의 몰락이 원인으로 꼽힌다. 은행의 기본적 영업방식은 이렇다. 예금자들이 은행에 맡기는 돈, 즉 예금은 은행의 가장 핵심적 부채다. 은행은 자신의 채권자인 예금자에게 예금금리를 지급하고 조달한 돈을 더 높은 금리로 개인과 기업에 대출하거나, 다른 자산에 투자하여 채권자들로부터 조달한 원가(금리)보다 높은 수익률(금리)을 확보하는 돈놀이로 운영된다.

실리콘밸리은행 역시 IT기업들이 맡긴 예금을 대출하고, 채권이나 주식 같은 유가증권에 투자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정부 국채와 유가증권투자에 55%, 대출에 35%, 현금 비중은 5% 정도를 유지했다. 대출보다 유가증권투자가 많은 점이 국내 은행과 다르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유가증권, 특히 만기가 긴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것이 가장 수익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금융산업에서 미국 정부의 국채는 모든 금융상품의 기초가 되는, 위험도가 0에 가까운 안전자산이다. 10년 이상 만기 조건 국채는 국채 중에서도 높은 금리를 보장하니, SVB 입장에선 가장 안전하고, 수지맞는 자금 운용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위험한 자산이 되다

그러나 SBV 판단은 20223월 이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가 고강도 긴축에 착수하고, 그 여파로 자금난에 빠진 IT기업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기국채는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만 약속된 금리와 원금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은행이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국채를 채권시장에서 현금화할 경우 채권은 액면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거래된다.

채권의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매각 당시 금리가 채권 발행 당시보다 싸진 경우라면 채권을 액면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은행은 채권 매각으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은행은 금리가 0% 수준에서 매입한 장기국채를 기준금리가 4.75%까지 오른 현재 시점에서 어쩔 수 없는 현금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 은행 예금자들은 은행이 유동성 부족으로 유상증자를 시도할 당시부터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국채매각에 나서자 뱅크런으로 대응하며 결국 파산에 이른 것이다. 제로금리 시대, SVB가 선택했던 최고의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가 불과 2~3년 만에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셈이다. 이후 이어진 미국 은행 연쇄파산과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의 사실상 파산 위기는 그 연장선에서 벌어졌다.


연준, “국채, 제발 팔지 말라!”

지난 10일 파산이 확정된 실리콘밸리뱅크(SVB)홈페이지.
지난 10일 파산이 확정된 실리콘밸리뱅크(SVB)홈페이지.

SVB 파산사태가 은행들의 연쇄파산으로 이어지자 미국 중앙은행이 내놓은 대책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는 바로 이번 사태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대책을 간단히 설명하면 미국 국채에 물린 은행들이여, 제발 팔지말라!”는 중앙은행의 절규다. 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던지면 손실이 확정되지만, 중앙은행으로 가져오면 시세보다 훨씬 비싼 액면가격으로 현금을 빌려준다. 채권시장의 본질적 기능을 중앙은행이 무력화시키는 대책이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가장 핵심 시장인 채권시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초유의 대책이 나온 것이다. 어쩌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자신들뿐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자산이 된 것일까? 과연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번 국채 폭락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달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미국 국채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다. 본래 현대 화폐는 은행이 자신의 금고에 보관하는 금의 보관증을 발급하면서 시작한다. 은행 금고에 금을 맡겨두고, 간편하게 그 보관증을 거래한 것이 우리가 돈이라 부르는 종이쪽지의 출발점. 이는 2차대전 직후인 1944년 세계열강의 미국 브레턴우즈에 모여 달러를 기축통화로 합의한 브레턴우즈 국제통화체제서도 적용됐고, 이 회담에서 금 1온스(31.1g)35달러로 고정했다.

그러나 만성적인 달러 부족에 시달리던 미국은 현대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된 이 합의를 1971년 닉슨 대통령에 이르러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달러 지존 시대가 열린 것. 이후 달러는 금 교환권의 족쇄를 끊고 미국 정부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발행됐다. 시중에 자금이 필요하면 연방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발행 채권은 금보다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되며 전 지구적으로 소비된다. 금 대신 대한민국을 비롯한 각국 외환보유고의 핵심 자산으로 등극한 것이다.


중국, 일본은 운명을 알고있다

본래 현대 화폐는 은행이 자신의 금고에 보관하는 금의 보관증을 발급하면서 시작한다. 은행 금고에 금을 맡겨두고, 간편하게 그 보관증을 거래한 것이 우리가 돈이라 부르는 종이쪽지의 출발점
본래 현대 화폐는 은행이 자신의 금고에 보관하는 금의 보관증을 발급하면서 시작한다. 은행 금고에 금을 맡겨두고, 간편하게 그 보관증을 거래한 것이 우리가 돈이라 부르는 종이쪽지의 출발점

다시 2023년 현재, 미국이 원하는 만큼 달러를 만들어주는 미국 국채가 추락하고 있다. ‘헬리콥터머니라는 말이 상징하듯 미국은 무제한으로 국채를 발행해 만든 현금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했고, 코로나 위기를 이겨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국채로 막대한 정부 부채는 과거의 위기가 끝남과 동시에 미국을 새로운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국채의 주요 매수 주체인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외환 보유고에서 미 국채를 줄이는 대신 다시 금을 사고 있다. 최근 국제 금 시세가 급등한 배경이다. 특히 세계 미 국채 보유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미국채 보유총액 감소는 심각하다. 중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일본은 자국 화폐가치 방어를 이유로 미 국채를 팔아대고 있다.

이들이 국채시장에 매각한 국채의 새로운 매수 주체로 부상한 것이 바로 미국 시중은행과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다.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과 이어진 글로벌 은행파산 공포의 배경에는 이렇게 급변하는 안전자산 미 국채의 현실이 작용하고 있다. 추락하는 미 국채의 위기가 몰고 온 파장이 과연 어디서 끝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백정현

대표적 풀뿌리신문인 옥천신문 기자, 편집국장을 지냈다. 팟케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 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금융정책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2008년 옥천신문에서 출판한 ‘자전거타고 옥천에서 보물찾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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