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망가뜨리는 폭력 ‘정서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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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가뜨리는 폭력 ‘정서방임’
  • 최영순
  • 승인 2023.04.2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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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12부작 ‘신성한 이혼’을 보고

정서(情緖)는 통상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감정에 다양한 이론이 있으나, 최근 심리학계에서 자주 인용하는 로버트 플루칙의 감정수레바퀴이론에서, 기본 감정을 8가지 기쁨, 신뢰, 두려움, 놀라움, 슬픔, 역겨움, 화냄, 기대로 정리했다.

감정이란 것은 지극히 개인적 주관적 정서인데, 순간 확, , , 불쑥 올라오면, 곧 다양한 색·모양의 기분으로 요동치며 흩어진다. 이 기분으로 더 복잡해진 느낌은 옹달샘에서 시냇물로 변해 깊은 강물이 된다. 해서, 감정이 올라오면 번개처럼 알아차리고 다스려야 한다. 감정 따라가기가 그 방법의 하나인데, 이는 다음 기회에 또 소개하고자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성인조차 자기감정을 주체치 못하고,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과 느낌으로 뒤엉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다 자란 성인도 이럴 진데 어린아이의 경우엔 오죽할까.

 

사람에 대한 예의, 설렘과 울림이 있는 의미 있고 좋은(?) 드라마와 영화 보길 즐기는데, 근래 발견한 드라마가 있다. 예고에서 <신성한. 이혼>(JTBC 12부작)이라는 제목을 듣고 . 이게 뭐야. 성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고(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니, 양해를 구한다), 심지어 서로 물어뜯어 평생 씻지 못할 상처투성이가 되는 그 이혼이란 것이 신성하단 말인가, 참 별난 제목이 다 있군.’ 그 제목에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알고 보니 드라마 주인공 신성한은 이혼전문 변호사였고, 사람 마음을 어루만지는 스토리이긴 했으나, 초반엔 그저 여·남 주인공 연기 내공에 업혀 가는 듯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따뜻해서 복잡한 상황을 잠시 잊고 볼 수 있었다. 주제가 이혼이기에, 극 중 목숨 같은 친구와 우정, 주변과 소중하고 아름다운 교류에 집중할 수만 없는 무거움은 있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빠진 매력 있는 드라마였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돋보였다.

여타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보여주던 화해, 인과응보, 결자해지가 아니라, 이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드라마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출신 변호사였는데, 피아노 치던 손으로 법전을 들었던 절박한 사연이 있었다. 그 여동생이 이혼소송 양육권 분쟁 중 상간녀의 악담에 혼비백산해 무방비 상태에서 걷던 중 교통사고로 떠났다. 그 동생이 남긴 한 점 혈육에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배려심 있고 심성 고왔던 아이 엄마, 이에 대비되는 새엄마의 악행, 선한 이는 당할 수밖에 없는 모략, 이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더 꼬이는 그물 같은 상황은 어쩌면 양념이었다. 법을 무기로 전처 양육권마저 박탈한 이후 아들에게 자행한 심각한 정서 폭력에 죄책감은커녕 작은 반성조차 없었다. 그 혀는 괴무기였는데, 유리보다 날카롭고 뱀보다 차갑고 독했다. 대기업 소유주인 조부의 편협·왜곡된 신념이 이를 더 부추겼다. 그리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돈거래가 아닌 진정한 마음 나눔의 행복은 모르는 듯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신감만 존재했다.

그 험하고 모진 환경에서 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모의 안타까운 선택은 유산 확보였다. 반면, 우리 주인공 삼촌은 정서 학대 주범인 부모 친권을 박탈하고 학대 공간에서 아이를 분리하기로 했다. 그 선택에 노력은 투쟁이었고 혁명이었다.

 

드라마 속 아이와 같은 상황은 극히 일부일 수도 있겠다. 지금 이 시각에도 아이를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교육해야 하니 정서까지 돌보는 것이 어쩌면 사치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정서를 보살피는데 필요한 것이 마음 하나로 된다면 과한 표현일까?

어른이 아이 감정, 기분, 느낌을 살피는 비용과 시간이 그리 크지 않다면. 아이가 저 숨 막혀요. 인제 그만 안아주세요라고 밀어낼 때까지 필요한 시간이 과연 없을까?

드라마에서 아이는 친부·계모와 사는 근사한 집보다 운전기사의 차 안이 더 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기계적으로 잘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만이 양육이 아님을. 정서 보살핌 없는 학대와 방임으로 아이가 망가지고 있음을. 그 것이 폭력이고 범죄임을 주장해야 하는 우리 현실이 아팠다. 모든 이혼가정 재혼가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겠으나, 혹여 가정, 학교, 사회에서 정서방임 학대 상태에 놓여있을 아이들이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또는 가정에서 어떤 연유에서든 아이들 정서 보살핌을 유예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부모를 포함한 어른의 따뜻한 지지와 사랑을 먹고 자람을 잊지 않길 바란다.

우리 소중한 아이가 많이 아프기 전에 정서를 잘 보살피는 것이 건강한 미래인구를 길러 아름다운 미래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우리 국가사회에서 아이들 정서를 잘 보살필 정책 대안은 없을까?

 

 

최영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국제보건전공 겸임교수
아프리카 아시아 희망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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