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울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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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울보 농사꾼!
  • 장인수 시인‧국어교사
  • 승인 2023.05.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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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철학‧울음예술‧울음살림을 꾸리는 것들

 

지금은 새벽 1시와 2시 사이 중간쯤이다. 벌써 일곱 시간 째 쉬지 않고 울고 있는 울보들! 우리 집은 뒤뜰 너머가 직방으로 드넓은 논이다. 윗방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개구리 울보들이 떼창을 하면서 울음 농사를 짓고 있다.

봄은 울음의 계절이다. 개구리들 농사꾼이 울음을 파종하고 있다. 울음소리는 부름’, ‘응답’, ‘교감이다. 울음은 울림이다.

계곡산개구리는 경칩 지나 2월 말에서 3월 초에 일주일 정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곡에서 울면서 봄을 깨운다. 이놈들은 울음주머니를 무려 두 개씩 가지고 있어서 번갈아 부풀리면서 운다. 계곡의 찬물 속에서 짝짓기하고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알을 낳는다. 봄을 낳는다. ‘호로로롱, 우러렁, 호로로롱, 우러렁 쿠우 쿡 꾸우 쿡 우러렁중저음의 베이스 음으로 남성 중창단에 가깝다. 어쩌다 긴 울음 끝에 개구리 테너가 오선지에 튀어 오르기도 한다.
 

 

참개구리와 금개구리와 맹꽁이는 4월 말부터 6월까지 무논에서 울면서 논농사를 짓는다. 하늘이 찢어지도록 들판이 운다. 5월 중순에 최고 절정에 달한다. 5월의 들판은 울음곳간, 울음창고, 울음악기다. 들판은 일파만파의 몸부림이다. 필사적으로 울음의 월광(月光)을 토한다. 10억 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양서류의 격렬한 곤두박질이다. 발광하는 흐벅진 사랑의 소나타. 교향악과 오페라와 판소리와 힙합을 넘나드는 듯한 개구리의 울음에는 우주의 근원적인 파동이 흐른다. 어쩌면 개구리 울음은 울음이 울음을 디디고 등을 타고 지구 밖으로 퍼져 나가서 안드로메다에도 가고, 우리 은하계를 넘나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을 주변에는 특히 맹꽁이가 많았다. 맹꽁이 울음은 울림이 컸다. 그 울음소리에 혼을 모두 빼앗기곤 했던 맹꽁이의 울음주머니에 깃들어 잠들곤 했다. 나는 울음주머니에서 편안히 잤다. 우주의 근원적인 힘에 닿아있는 울음이 나를 키웠다.

울음이 농사를 짓고, 철학을 한다. 5월 초엔 어느 날 불쑥 마당과 처마가 시끄럽다. 중국의 장강(양쯔강) 이남을 강남이라고 한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12000km를 날아 다시 돌아온 것이다. 수십 마리의 제비들이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반갑다고 난리를 친다. 집안에 수다쟁이 명랑한 새 식구가 생긴 것이다.

앞산 뒷산에도 봄이면 울보들이 가득하다. 산짐승의 울음소리, 새소리와 벌레 소리로 가득 찬다. 온 세상이 청각이 되고, 공명통이 된 것이다. 산비둘기, 노루, , 고라니, 심지어 가축인 개와 소, 돼지, 고양이들도 발정기가 되어 목이 쉬도록 운다. 주체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발열성 울음이 천지를 휘감는다. 천지가 발정이 난 것이다. 수컷들은 입에서 거품을 물고, 수컷의 물건은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며 정액을 질질 흘리기도 한다.

수컷끼리 무섭게 싸우기도 한다. 종족 번식과 생존의 욕망이 시골을 지배한다. 이에 질세라 식물들도 꽃이라는 성기를 마음껏 벌리고 향기를 품어낸다. 힘센 칡꽃, 약도라지꽃, 아카시아꽃, 밤꽃 향기가 밤낮으로 진동한다. 발정 난 지상의 목숨들. 가장 신선하고 처절하고 열정적인 감각들. 수치와 부끄러움을 무화시키는 당당하고 절박한 울음이다. 참으로 광활한 울보들이다!

나는 곧잘 염소 울음, 개구리 울음, 닭 울음, 소 울음을 흉내 내곤 했다. 소가 암내를 내면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짝을 찾아 울었다. 밥도 먹지 않고, 약간 실성해서 울었다.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몸을 뒤척이면서 끙끙 앓은 소리를 냈다. 나는 소 울음소리 흉내를 잘 냈다. 영각을 켜는 일소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 냈다. 내가 흉내를 내면 소들이 따라서 맞장구를 치면서 울었다.

고양이 울음은 특히 이른 아침에 덤불 속에서 들려오곤 했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천지의 울림통이 애절하게 울렸다. 멧비둘기는 종일 산을 울었다. 그러면 능선도 울고, 나무도 울고, 철쭉도 울었다.

앞 냇가와 저수지에서는 붕어와 잉어들이 울었다. 몸 뒤채며 비늘이 찢어지고 상처가 나도록 산란을 했다. 밤새 물가는 뒤척였고, 수풀은 뒤집어졌고, 저수지는 철벅거리며 울었다. 저수지가 저수지를 울었고, 시냇물이 시냇물을 울었다. 자맥질을 하면서 울었다.

여름과 가을에는 풀벌레가 울었다. 풀이 우는 것인지, 벌레가 우는 것인지, 밤공기가 우는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세상은 울음 곳간이었고, 울음터였다. 울기 좋은 터였다. 지상은 마음놓고 울어야 하는 터전이었다.

겨울이 되면 까마귀와 청둥오리와 고니와 가마우지와 기러기 떼가 울음을 물고 나타났다. 드넓은 창공에서, 벌판에서, 냇가에서, 저수지에서 울음 장관을 연출했다. 겨울 철새들의 현란한 악보와 춤과 노래와 울음이 군무를 펼치며 날아다녔다.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미물들은 지구별 대한민국의 충북 진천군 초평면 들판으로 날아와서 울음을 울고, 울음을 만들고, 울음을 살았다. 울음 철학, 울음 예술, 울음 밥, 울음 살림을 꾸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미물들의 숭고한 사명일까? 아니면 울부짖어야 할 무슨 말 못 할, 곡진한 사연들이 있는 것일까? 계절마다 울보들이 나와서 울림을 쏟아내고 있다.

장인수

충북 진천 출생, 시인, 시집 천방지축 똥꼬발랄, 산문집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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