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기자의 '무엇'] 전업주부와 워킹맘을 향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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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의 '무엇'] 전업주부와 워킹맘을 향한 판타지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05.10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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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줄때마다 또래의 아이를 둔 학부모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들의 복장은 늘 등산복이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바로 산으로 올라갈 기세다. 산행은 이들에게 아마 휴식이자 자유일 것이다. 가끔 회사를 안 가고 그들을 따라 곧장 산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바로 5월의 어느 날들이 그렇다. 신록이 잠을 깨고, 모든 게 찬란하게 햇빛에 비치는 그런 날.

회사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다시 한번 에 대해 생각해본다. 또 최근 재밌게 보는 드라마 <닥터 차정숙>도 포개어진다. 의사 면허를 어렵게 취득했지만 20년 동안 장롱면허로 있다가 다시 레지던트 1년차를 선택한 전업주부 차정숙의 이야기다.

차정숙 앞으로 물론 많은 난관과 부조리한 세계도 펼쳐진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정면승부하며 전업주부 20년 차 차정숙은 소위 이른바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갖고 헤쳐나간다. 이 모든 이야기는 판타지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듯한 갈등과 남편의 불륜, 멋진 왕자님과의 로맨스 등이 버무려진다.

그러면서도 전업주부 20년의 삶과 전문의로서의 20년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달랐을까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월급(육체노동, 감정노동)으로 환산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대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들이 다시 일을 구하기는 정말 힘들다. 이전과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경력단절로 인해 점점 일자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차정숙처럼 전문직 여성일지라도 다시 일을 시작할 땐 1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남편은 20년 동안 아내의 조력을 받아 성장한다. 승승장구한 삶 뒤에는 아내의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드라마 속 가족 누구도 이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한번도 전업주부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딱히 활동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에 밀려 여기까지 왔다. 아이를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할 엄청난 사건도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버텨왔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놀란 것은 갓난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극도의 체력소진이 필요한 일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또 육아도 그때그때 해야 할 과제가 쉼없이 주어진다. 물론 아이는 내 맘대로 크지 않는다. 어쩌면 이를 내려놓아야 하는 게 가장 큰 정신수련이다.

둘째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출근하던 첫날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이가 건넨 말은 회사가 다시 가는 걸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갈 곳이 있어서 너무 부럽다는 것이었다. 데면데면하는 사이인데 그런 말을 하다니. 이 여성은 아이를 낳기 전 어떤 일을 했을까. 왜 그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까.

정말 아이도 잘 키우고, 회사 일도 잘하고 자기 자신도 발전시키는 것은 판타지가 아닐까. 조금씩 삐걱거릴 때마다 누군가 조금씩 도와주면 좋겠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대한민국에 사는 건 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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