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 아니고 연극도 아닌 청소년극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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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극 아니고 연극도 아닌 청소년극 ‘영지’
  • 이숙정 전문기자
  • 승인 2023.05.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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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5월 18일부터 6월 11일까지 3년 만에 공연
기성세대 눈에는 현실성 없고 걱정‧경계 대상인 인물
또래 혹은 어른에게 들려주고,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
영지는 기성세대의 눈으로 본다면 현실성 없는 인물이며, 걱정과 경계 대상이다. 그래서 병목안 사람들은 영지가 마녀이거나 악마일 거로 생각한다.
영지는 기성세대의 눈으로 본다면 현실성 없는 인물이며, 걱정과 경계 대상이다. 그래서 병목안 사람들은 영지가 마녀이거나 악마일 거로 생각한다.

3년 만에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가 돌아왔다. 영지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깨끗한 동네 1로 선정된 완전무결한 마을, 병목안에 전학 온 11살 아이다. “나는 영지야.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 다리를 가졌어. 날개도 있고 꼬리도 있지. 내일은 또 다르고 모레는 또 다르지.”

자신을 소개하는 영지의 모습은 엉뚱하기 그지없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본다면 현실성 없는 인물이며, 걱정과 경계 대상이다. 그래서 병목안 사람들은 영지가 마녀이거나 악마일 거로 생각한다.

영지는 어떤 아이일까? 풍경화를 그려야 하는 학교 미술 시간에 끝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아이,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방을 챙겨 들고 어딘가로 떠나는 아이. 영지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무언가를 찾아 밤마다 마을을 돌아다닌다. 영지는 내일 다르고 모레는 또 다른 아이다.

영지의 귀환은 다시 청소년극이 돌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기념일이 많다. 매주 누군가를 소중하게 기억하게 되는 이맘때가 되면 청년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의 존재가 새삼스럽다. 이즈음 청소년극 <영지>가 선물처럼 돌아온 것이다.

사실 청소년극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장르다. 청소년극이란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아동극도 아니고 그냥 연극도 아닌 청소년극은 무엇일까? 아동극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면 청소년극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을 말하는 것일까?
 

왜 굳이 청소년극일까?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는 아동청소년연극헌장을 통해 아동청소년극은 전문 예술인이 만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청소년극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도기에 있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전문 예술인이 만든다고 해서 진짜 청소년극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이 점에 대한 해답은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청소년을 문화 주체로 인식하고 청소년의 창작활동 참여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 2011년 출범한 이래 꾸준하게 청소년극 연구와 작품개발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김미선 프로듀서는 청소년극은 청소년을 만나는 연극이며, 청소년극의 원칙은 제작 과정에서 작품 속에서 극장에서 반드시 청소년을 만나야 된다고 말한다. 또한 청소년극은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만나 세대 간의 시차를 좁힐 수 있는 어떤 만남을 의미한다라고도 했다.

청소년들을 청소년극의 주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립극단은 예술교육을 프로덕션과 결합시켰다. 학교 현장에 참여자를 모집하고 학생들과 연극놀이 예술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청소년극 제작 과정에 필수단계인, 청소년 대상 오픈 리허설을 통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을 청소년극의 관객이자 창작의 구성원이 된다.

영지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청소년극 영지속에는 수많은 청소년, 특히 이 작품이 주 대상으로 하는 초기 청소년들의 생각과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는 셈이다. 청소년극의 진짜 모습과 존재 이유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연극이라는 신선한 자극

 

청소년극 ‘영지’ 속에는 수많은 청소년, 특히 이 작품이 주 대상으로 하는 초기 청소년들의 생각과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청소년극 ‘영지’ 속에는 수많은 청소년, 특히 이 작품이 주 대상으로 하는 초기 청소년들의 생각과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파트너 청소년은 2015년 청소년 15인으로 시작해 현재 청소년 17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공연 연계 워크숍, 청소년예술 탐색전, 희곡개발, 연구 등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리서치와 창작, 공연 제작에 협력하고 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서 다양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청소년 17관객 중 권지윤과 황웅비(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활동, 현재 23)는 청소년기에 청소년의 고민을 담은 연극을 본 이후의 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3년간 청소년극을 보면서 계속 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물론 영화에 나온 청소년을 보고도 느낄 수 있지만 공연예술에는 체험적인 요소가 있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권지윤)

제가 직접 경험하면서 청소년극은 청소년이 청소년에게 혹은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장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청소년극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황웅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10주년 기념 인터뷰, web <청소년극하는 관객> 중에서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또다른 파트너인 협력학교는 연극과 교육을 연결하기 위한 교사들의 협력 네트워크다. 이 협력학교 중 하나인 서울방송고등학교의 김지훈 교사는 모든 계층이 문화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이 아동청소년때부터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학생들과 청소년극 관람을 하고 나면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한다.

김지훈 교사는 공연을 아예 처음 접한 학생들의 경우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연극 같은 문화예술을 경험함으로써 사회를 보는 눈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아이들의 반응은 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극은 단순히 청소년의 고민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을 넘어 청소년의 예술교육 필요성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지를 어떻게 생각해?


다시 영지로 돌아가 보자. 청소년극 영지에는 모범생 소희와 마을의 마스코트 효정이 등장한다. 이 아이들은 병목안 마을에서 사랑받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소희와 효정은 영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영지의 친구들이다. 비록 학원시간 알람과 엄마의 호출에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원망하며 일어나야 하지만 말이다.

영지는 정상의 세상에 들어 온 비정상인 존재일 수도 있고, ‘비정상인 세상에 던져진 정상의 아이일 수도 있다. 영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우리의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기도 하다.

뉴스에 등장하는 청소년 관련 기사는 대부분 왕따, 학교폭력 등과 같은 사건들과 주로 연결되어 있다. 이같은 사회 현상은 청소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에서도 비슷하다. 연극 역시 가출, 자퇴, 왕따, 학교폭력, 자살 등 청소년들의 문제를 자주 다루며, 지나친 조언과 교훈이 가득하거나 과장된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청소년은 정상인 세상에서 비정상인 과정을 겪는 존재가 된다.

김미선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프로듀서는 청소년극은 청소년 관객과 작업자가 모두 청소년극의 구성원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확장하면 청소년의 모습은 청소년과 사회가 구성원이 되어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지가 공연을 마치고 관객과 만남을 가졌다. 청소년극 영지를 보기 위해 온 관객의 연령층은 무척 다양하다. 초등학교 학생부터 중년의 여성 혹은 남성, 20대의 청년까지.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영지를 관람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겪었던 혼란스러운 10대의 기억으로, 누군가는 세상이 원하는 모양이 되어 살아온 지난 시절의 회한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간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청소년극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청소년기를 통과의례로 지나온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숙제를 남겼다.

 

청소년극 <영지>

- 공연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 판

- 공연날짜 :2023518~611

- 공연시간 : 평일 오후 730/ 일요일 오후 3/ 화요일 공연 없음

- 러닝타임 : 70(인터미션 없음)

- 관람연령 : 11세 이상 관람가

- 입장권 : 전석 35000

- : 허선혜

- 연출 : 김미란

- 공연 문의, 예매 : 국립극단 1644-2033

- 전 회차 음성해설, 한글자막 진행 / 이동지원 서비스 매주 토요일 13회 운영

※ 서울 공연 이후 경남 의령 의령군민문예회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등 공연 예정

*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 상영 예정

●이숙정

공연전문 객원기자이자 비정규 에세이스트.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에 공연, 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오디오 플랫폼 <나디오> 오디오 작가로 활동 중이며, 화성시 문화재단 뉴스레터에 칼럼을 썼다. 포토 에세이집 <나도 처음이야, 중년>, 비정규직 노동자 취재기 <세상을 바꾸는 2%, 나는 비:정규직입니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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