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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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빅뱅
  •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3.05.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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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별이었을 때의 기억도 어딘가에…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뱀을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놀라고 무서워하거나 징그럽다고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이 뱀과 같이 생활해 보고 그런 느낌이 생겼을까요? 처음 보는 어떤 것에도 인간은 어떤 거절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를, 칼 융은 무의식을 다시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나는 인간의 의식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깝게는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의 의식, 이것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의식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런 의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자각하지 못하는 의식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중에서 개인 무의식은 자기가 태어나서 한 모든 경험이 내면화되어 만들어진 무의식이 개인 무의식이라면,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각인된 무의식이 바로 집단 무의식입니다.

생물학에서는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개체가 알에서부터 성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생명체의 모든 진화과정을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인간과 원숭이의 태아 모습은 거의 같습니다. 심지어 물고기와 인간의 태아 초기의 모습은 같습니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가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 생명체의 육체도 그 모든 진화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인간의 정신이라고 그냥 갑자기 나타났을까요? 인간의 정신도 그 모든 진화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의 내면에는 그 태곳적 경험이 어떤 형태로든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요?

자기가 태어나서부터 경험한 것이 개인 무의식으로 녹아 있다면 조상들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집단 무의식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집단 무의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아마도 호모사피엔스가 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경험한 모든 것이 여기에 녹아 있지 않을까요? 저 원시시대 돌도끼를 사용할 때의 경험, 그들이 짐승을 잡아서 불에 그을려 먹던 그 추억이 요즈음 젊은이들이 하는 캠프파이어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인간의 의식이 단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경험에만 국한되어 있을까요?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집단 무의식이 없었을까요? 그들에게도 호모사피엔스가 되기 전 원숭이나 고릴라이든 시절의 경험이 집단 무의식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의 후손인 우리 인간의 무의식 속에 원숭이나 고릴라의 경험은 없을까요? 나는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더 올라가서 물고기나 아메바이든 시절의 경험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그 경험이 얼마나 희석되고 희미해졌을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의 의식 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의식은 내가 태어나서 한 모든 경험, 나의 조상들이 경험한 모든 경험, 더 나아가 최초의 생명에서 인간으로 진화해 오는 과정의 모든 경험이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칼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도 인간 조상의 경험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이상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의 의식이 호모사피엔스에까지만 올라가고 말아야 할까요? 그것은 논리적으로 그렇게 바른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되기 전, 물고기나 아메바이든 시절의 경험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을 겁니다. 그 무의식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보다 더 심층에 존재하는 무의식도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우주를 생각하는 나는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생명체일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명이 되기 전 무생물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가 저 먼 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별이었을 때의 기억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과학자들이 들으면 웃기는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의식을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도 의식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의식은 동물만 가지는 것일까요? 식물에는 의식이 없을까요?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식물의 의식도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무생물의 의식은 없는 걸까요? 이것도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의식을 무생물에까지 확장한다면 별에서 온 우리는 별에서의 경험도 우리의 의식 저 깊은 곳,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 속에 묻어 있지 않을까요? 더 올라가면 우리의 의식에는 빅뱅의 기억도 있을지 모릅니다.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을 보고 아련한 추억에 젖는 것이 그냥 우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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