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글편지를 관광자원으로 (중)-‘원이 엄마 테마공원’ 관광명소 됐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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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글편지를 관광자원으로 (중)-‘원이 엄마 테마공원’ 관광명소 됐다 왜?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5.25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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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조선판 사랑과 영혼’ 원이 엄마 편지를 관광자원 활용

나신걸 첫 한글편지도 활용 가치 충분...보은군 방안 마련해야

 

경북 안동에 조성된 원이 엄마 태마공원.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는 ‘원이 엄마 편지’를 관광자원으로 승화시켰다.
경북 안동에 조성된 원이 엄마 태마공원.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는 ‘원이 엄마 편지’를 관광자원으로 승화시켰다.

 

센스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는 문화예술 유산이 있다면 이를 관광자원화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남편과의 사별을 슬퍼한 조선시대 사부곡(思夫曲), ‘원이 엄마 편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경북 안동시가 대표적이다.

2015년 안동시는 정하동 귀래정 인근 2118부지에 원이 엄마 테마공원을 조성,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이곳엔 원이 엄마 편지글 조각상과 현대판 번역본, 쌍가락지() 조형물, 수경계류시설, 반원형 야외무대를 비롯한 조경시설이 들어섰다. 작지만 큰 감동이 있는 도심 속 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원이 엄마 편지에는 조선 중기 젊은 부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담겼다. 아내가 사별한 남편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로, 사별의 슬픔을 섬세하고 자세하게 서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이 엄마 편지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지구개발 도중 이응태(1556~1586) 무덤에서 발견됐다.

 

조선판 사랑과 영혼

 

15866월 초하룻날 안동에 살던 고성이씨(固城李氏) 가문의 이응태라는 양반이 31세의 나이로 숨지자 그의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쓴 한글 편지다.

원이 엄마 편지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남편을 영원히 보내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에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 내려간 편지에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강물처럼 굽이친다.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심정,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절절하게 녹아 흐른다.

 

남편의 쾌유를 빌며 원이 엄마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남편의 쾌유를 빌며 원이 엄마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아내는 하고픈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종이가 다하자 모서리를 돌려 편지를 이어갔다. 모서리를 채우고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거꾸로 적어 내려갔다.

워늬 아버님(원이 아버지)’으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둘 사이에 원이라는 자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뱃속 아이를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라는 말에서 당시 아내가 임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편지 외에도 많은 유물이 수습됐다. 그중에서도 남편의 머리맡에서 나온 미투리(신발)’는 더 감동을 준다.

조선시대에는 관 속에 신발을 따로 넣는 경우가 드물어 미투리를 짠 재료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다.

 

신어보지도 못한 미투리

 

남편의 쾌유를 빌며 삼과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함께 꼬아 만들었지만 남편은 이 신을 신어보지도 못했다.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는 글귀가 많은 것을 부연해 주고 있다.

미투리를 감싼 훼손된 한지에서 내 머리 베어...(머리카락을 잘라 신을 삼았다)‘라는 내용이 남편을 향한 아내의 간절한 마음을 엿보게 한다.

원이 엄마의 애절한 편지는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11월호에 소개됐고 20093월에는 이 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엔티쿼티> 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소설 능소화와 뮤지컬 원이 엄마가 창작됐다.

수습된 유물들은 안동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무덤은 안동시 일직면 어담리로 이장했다.

 

공원 담벼락에 새긴 원이 엄마 편지
공원 담벼락에 새긴 원이 엄마 편지

 

원이 엄마 편지는 긴 여운을 준다. 원이 엄마는 정말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을까, 원이 엄마는 남편없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살았을까, 애틋한 두 사람은 무덤 속에서라도 만났을까...

그래서 원이 엄마 테마공원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감동을 준 곳인 만큼 가족, 부부,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해 주는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원이 엄마 편지와 나신걸 한글 편지는 훈민정음 반포 후 작성돼 발견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나신걸 편지는 남편이 아내에게, 원이 엄마 편지는 아내가 저세상으로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나신걸 편지가 모친과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 철릭(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공복) 등 필요한 의복을 보내주고, 농사일을 잘 챙기며, 소소한 가정사를 살펴봐 달라는 당부가 주를 이룬다면 원이 엄마 편지는 숨진 남편을 향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안동시는 원이 엄마 편지를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조선시대에도 저렇게 구구절절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이 현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는 점에서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신걸 편지도 가치 충분

 

원이 엄마 편지
원이 엄마 편지

 

나신걸 첫 한글편지
나신걸 첫 한글편지

 

그렇다면 나신걸 한글 편지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신걸(1461~1524) 한글편지는 지난 39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한 첫 한글편지다. 훈민정음 반포(1446) 45년이 지난 1490년 대에 쓰인 점을 고려하면 원이 엄마 편지(1586)보다 90년 이상 전에 쓰였다.

무관인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근무해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관리에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조선시대 한글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된 것과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통해 남성들도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편지의 발견은 한글이 조선 백성들에게 깊숙이 알려져 실생활에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앞으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문관 복식, 국어사 연구를 하는데 활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는데 이견이 없다.

나신걸 한글편지는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나신걸의 부인 신창맹씨 묘 안 피장자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저고리 바지 등 의복 28, 한글편지를 포함해 13점의 유물 등 총 41점이다. 안정나씨 대종회는 출토된 유물을 모두 대전시에 기증해 지금은 대전시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대전시의 토지수용정책에 따라 이장이 불가피했던 안정나씨 회덕파 종중14기는 보은군 탄부면 매화리 선산에 안장됐다. 한글편지의 주인공 나신걸과 부인 신창맹씨(新昌孟氏)도 이곳에 잠들었다.

비록 한글편지의 실체는 보은에 없지만 주인공들의 묘소가 보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은은 소중한 문화 유산을 얻은 셈이다.

안정나씨 종중에서도 편지에 대한 가치와 공감대 확산에 나서는 등 문화유산을 기리는 일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이달 초부터 문화재 관람료가 폐지돼 보은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 보은 관광 전망을 밝게 해 주고 있다. 여기에 나신걸 첫 한글편지를 속리산, 속리구곡 등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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