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팔루에서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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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팔루에서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만나다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6.0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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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된 아역 배우가 남아 기념관 운영
체팔루 전경, 왼쪽 아래가 마을이고 오른쪽 바위산이 로카 디 체팔루. 사진= 정연일
체팔루 전경, 왼쪽 아래가 마을이고 오른쪽 바위산이 로카 디 체팔루. 사진= 정연일

팔레르모에서 지중해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마치 제주도의 산방산처럼 바다에 붙어 돌출한 바위산이 눈에 들어온다. 모양도 산방산과 흡사하다. 체팔루의 상징인 로카 디 체팔루(Rocca di Cefalu)이다. 로카는 바위라는 뜻이다. 바위산 아래 해안가 쪽의 마을이 체팔루( Cefalu).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서 동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14000여 명의 작지만 아름다운 어촌이다. 시칠리아의 여러 해안가 마을과 도시처럼 체팔루의 역사도 고대 그리스와 카르타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시칠리아 출신이다. 그는 시네마 천국을 대부분 고향 시칠리아에서 찍었다. 영화의 배경인 지안칼도(Gian Caldo)는 시칠리아섬 내륙에 있는 팔라조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라는 작고 오래된 마을이다. 지금은 중장년이 된 꼬마 토토(Toto) 역을 맡은 배우 살바토레 카스치오(Salvatore Cascio)가 시네마 천국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바위산 (로카 디 체팔루) 에서 내려다 본 체팔루. 사진= Pixabay
바위산 (로카 디 체팔루) 에서 내려다 본 체팔루. 사진= Pixabay

체팔루도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 중 한 곳이다. 체팔루를 찾는 많은 사람이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어느 장면을 체팔루 어디서 찍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영화 중반 바닷가 방파제의 야외 영화 상영 씬을 이곳에서 찍었다. 야외 상영 도중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데 엘레나를 그리워하며 방파제에 드러누워 비를 맞는 토토에게 마치 꿈처럼 엘레나가 나타나 키스하는 장면이다. 영화 덕분에 체팔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1988년 영화 촬영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감독의 고향은 시칠리아

고향을 떠난 지 30년 동안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살바토레 (극 중 토토)는 로마에 사는 유명한 영화 감독이다. 어느 날 토토에게 고향의 노모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알프레도가 죽었다고. 알프레도는 토토가 고향을 떠나게 만든 사람이다. 토토의 고향은 시칠리아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도입부이다.

시칠리아의 태양은 뜨거워 5월 초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사진= 정연일
시칠리아의 태양은 뜨거워 5월 초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사진= 정연일

영화 시네마 천국의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이다. 하나는 토토의 유년 시절, 시네마 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낯익은 장면이 등장한다. 다음은 토토의 청년 시절,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으로 시칠리아를 떠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마지막은 토토의 중장년,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 시칠리아에 돌아왔다가 첫사랑 엘레나와 우연히 재회 후 다시 로마로 돌아가기 전까지 이야기이다.

2차 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한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홀어머니에 외아들로 자라는 꼬마 토토는 엄마에게 혼이 나면서도 마을의 영화관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에 매일 드나 든다. 영사실에서 혼자 일하는 늙은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반대와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곁눈질로 배운 영사 기술로 알프레도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국 알프레도의 조수가 된다.

체팔루 구시가 백사장, 1988년 촬영한 시네마 천국의 영화속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 정연일
체팔루 구시가 백사장, 1988년 촬영한 시네마 천국의 영화속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 정연일

그러던 어느 날 영사실 필름에 불이 붙으며, 죽음의 문턱 가까이 다가간 알프레도를 꼬마 토토가 구한다. 화재로 인해 알프레도는 실명하고, 꼬마 토토는 정식 영사기사가 된다. 시간이 흘러 청년으로 자란 토토는 부유한 은행가의 집안 출신인 전학생 엘레나와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은 점점 깊어 가지만, 모든 비극적 사랑이 그렇듯 엘레나의 부모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영사기사로 일하는 토토와 딸이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

엘레나와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는 데 토토는 영장을 받아 군대에 가게 되고 입영 전에 엘레나와 만나기로 했지만 어긋난다. 제대 후 연락이 끊어진 엘레나를 그리워하며 실연에 빠진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진지한 충고를 건넨다. 한 번은 바닷가에서, 한 번은 고향을 떠나는 기차역에서, 시네마 천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되는 명대사이다.

 

체팔루 대성당, 노르만 왕조의 루제루 2세가 노르만 양식으로 1131년에 세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된 시칠리아 섬의 9개 아랍 노르만 양식 건축물 중 하나. 사진= 정연일
체팔루 대성당, 노르만 왕조의 루제루 2세가 노르만 양식으로 1131년에 세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된 시칠리아 섬의 9개 아랍 노르만 양식 건축물 중 하나. 사진= 정연일

여기서 매일매일 살아가면 이곳이 세상의 중심인 줄 착각하기에 변하는 게 없지. 반면 네가 이곳을 몇 년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모든 게 변한다는 걸 느낄 거야. 넌 지금 나보다 눈이 더 멀었어. 인생은 영화와 달라. 영화보다 훨씬 더 힘들어. 넌 젊어. 이곳에 있지 말고 로마로 가라.”

돌아오지 마라, 우리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고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향수에 젖지도 말고 편지도 쓰지 마. 설령 네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만나지 않을 거야. 내 집에 들이지도 않을 거야. 알아들었어?”

 

체팔루의 골목. 사진= 정연일
체팔루의 골목. 사진= 정연일

친구이자 스승이자 아버지 같았던 알프레도의 충고에 따라 고향 시칠리아를 떠나 로마로 간 토토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지만 역시 그의 충고에 따라 시칠리아로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알프레도의 죽음으로 드디어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토토는 잊지 못할 첫사랑 엘레나와 우연히 재회하고, 입영 전 엘레나를 만나지 못한 것과 제대 후 엘레나와 연락이 끊어진 이유가 엘레나가 자신을 떠나 버린 게 아니라 알프레도의 미필적 고의와 운명의 장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

엘레나는 시네마 천국을 찾아가 영사실의 알프레도에게 다른 도시로 이사하지만 토토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을 전해달라고 했으나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전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엘레나는 영사실 벽에 메모를 남겼지만, 토토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다른 메모지에 의해 덮여 버린다.

체팔루의 골목 끝은 바다로 나가는 문으로 이어진다. 사진= 정연일
체팔루의 골목 끝은 바다로 나가는 문으로 이어진다. 사진= 정연일

알프레도가 엘레나의 소식을 전해줬더라면, 제대 후 돌아온 토토가 메모지를 발견했더라면, 토토는 실연의 실의에 빠져 시칠리아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알프레도처럼 늙은 영사기사로 평생 시칠리아에서 살며 폐허가 된 시네마 천국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 알프레도의 미필적 고의와 운명의 장난 덕분에 토토는 시칠리아를 떠났고 로마로 가서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했다.

엘레나의 얘기를 듣고 토토는 폐허가 된 시네마 천국의 영사실에 찾아가 벽에 걸린 수많은 메모지에서 엘레나가 남겼던 메모를 찾아낸다. 성공 가도에도 불구하고 토토의 마음속 한구석은 늘 그리움으로 허전했는데,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엘레나 때문이었다. 젊은 날의 사랑의 기억에 불타오른 중장년의 토토는 엘레나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하지만, 엘레나는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 미래가 아니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체팔루 방파제에서 촬영한 영화 속 바닷가 야외 상연 장면
체팔루 방파제에서 촬영한 영화 속 바닷가 야외 상연 장면

장례식 후 만난 알프레도의 부인은 알프레도가 눈을 감기 전 자신의 죽음을 토토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긴 유품을 전달한다. 한 통의 영화 필름이었다. 장례식 후 낡을 대로 낡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시네마 천국은 폭파로 해체된다. 이제 시칠리아에는 토토의 과거를 이어주는 장소도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거야

상실감 혹은 과거와의 단절을 안고 로마로 돌아온 토토는 혼자 상영관을 빌려 알프레도의 유품인 낡은 영화 필름을 본다. 시네마 천국 당시 검열관이었던 신부님에 의해 삭제된 여러 영화의 19금 신을 이어 붙인 핸드 메이드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인 50년대 시칠리아의 19금 씬이라고 해봐야 겨우 키스 씬 수영복 장면 등이다. 혼자 영화를 보면서 웃는 토토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그리고 흘러 나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영화 시네마 천국은 그렇게 끝난다.


공주를 사랑한 병사가 있었다. 공주는 병사에게 내 방 창문 아래에 100일 동안 밤낮으로 있어 준다면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병사는 공주의 창문 아래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하지만 99일째 되는 날 병사는 그 자리를 떠났다.”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거야. 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별 차이가 없어.”

 

야외 상영 장면을 촬영한 체팔루 방파제. 사진= 정연일
야외 상영 장면을 촬영한 체팔루 방파제. 사진= 정연일

어떤 영화는 나이가 들어 다시 보면 젊어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그 때는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구나 싶은 것도 눈에 들어온다. 198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시네마 천국도 그렇다. 시네마 천국의 늙은 알프레도가 젊은 토토에게 말했던 이런 대사는 젊은 날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로소 알프레도의 나이에 가까워지니 이해가 되고 가슴에 와 닿는다.

체팔루의 숙소는 대부분 해안가에 있다. 대부분 숙소에서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 중심까지 걸어서 10여 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옛 성벽 안 구시가는 반나절이면 돌아보는 데 충분할 정도로 작지만 시칠리아 여행에서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며칠 머물며 천천히 쏘다니기 좋은 곳이다. 오랜 역사의 좁은 골목 골목이 아름답고 골목의 끝에는 바다가 있다. 체팔루의 방파제에서 어두워지는 지중해 밤바다를 바라보며, 시네마 천국의 대사를 곱씹어 본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잠시 여행지에서 돌아와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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