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식구’라는 공식 더는 성립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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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식구’라는 공식 더는 성립 불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6.08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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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비중 33%…10명 중 3,4명의 집밥은 ‘혼밥’
다인가구도 “밥때 서로 달라” 따로따로 식사 늘어나

밥하는 세 남자 이야기

마당에 사는 누렁이나 바둑이도 한 식구(食口)’이던 시절이 있었다. 개밥바라기별이 반짝이는 저녁,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서로의 밥그릇을 살폈다. 누구라도 밥을 남기지 않으면 개가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다가 한 숟가락씩 남긴 밥을 모아서 개를 먹였다.

세월이 흘러 도시의 개는 반려견으로 격상됐다. 집 안(室內)에 살면서 한 이불을 덮기도 한다. 하지만 밥이 아닌 사료를 먹는다. 밥을 나누지는 않는다.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 입()’이다. 예전에는 혼인과 혈연, 혹은 입양 등으로 형성된 가족이 곧 식구였다. 이제 가족=식구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단 1인 가구의 비중이 매우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1인 가구는 33.4%에 이른다. 열 명 중 서너 명의 집밥은 그래 봤자 혼밥인 셈이다. 이어 2인 가구 28.3%, 3인 가구 19.5%, 4인 가구 13.5% 순이다. 다인 가구라고 해서 반드시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이러느니 식당에서 월식하자

증어중문학을 전공한 것과 중국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우리집이 그렇다. 조금 과장하면 언제 넷이 모여 밥을 먹었는지 아득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밥을 만들지만 먹는 시간, 먹는 방식이 완전히다르다. 나는 신혼 때부터 29년째 취사 전담이다. 다른 일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밥에는 진심이다. 끓이고, 지지고 볶는 데 사용할 맛국물을 미리 내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국이나 찌개에 일품(一品)을 더해 아침상을 차린다. 그런데 내 밥은 어제 또는 그제의 밥이다. 6시 뉴스를 보면서 혼자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아내는 아침을 거른다. 들고나는 것이 불규칙한 두 아들도 서로 밥때가 다르다. 주말에는 ‘My life’를 꿈꾸며 집 밖 작업실에서 꿈을 먹는다.

먹성이 제일 좋던 큰애는 ‘PT(Physical training)’를 시작하더니 아예 다른 걸 먹는다. 인디카(안남미)로 지은 밥에 닭가슴살과 달걀흰자, 브로콜리 등을 얹고 유기농 케첩에 비벼 먹는다. 등산 가방보다 큰 도시락 배낭에 하루 다섯 끼를 메고 다닌다. 30kg을 감량하고서 바디 프로필(Body profile)’을 찍었다.

이제 나도 집밥 취사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수년 전에 보온밥솥을 없앴고 그날그날 냄비밥을 한다. “집안에 큰 냉장고를 치우고, 차라리 믿을 만한 식당을 정해서 월식(月食)을 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봄에는 나물 캐러 나가려

이광희 전 충북도의회 의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하는 아내의 도시락을 싼다.
이광희 전 충북도의회 의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하는 아내의 도시락을 싼다.

결혼 32년 차인 이광희 전 충청북도의회 의원도 집밥에 진심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했던 터라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아버지가 끼니를 챙겨준 날이 더 많았기에,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혼 초부터 취사를 분담했다. 전담하다시피 된 것은 6년 전, 도의원을 그만두고 낙선과 출마 불발을 겪으면서다. “밥과 국이 있어도 찌개를 끓이고 모든 밑반찬을 손수 만든다숨고(숨은 고수)’가 분명하다.

서른한 살인 아들과 스물여덟 살인 딸은 독립해서 이제 부부만 집에 남았다. 부부는 아침을 거르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침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이광희 전 의원은 출근하는 아내의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 반찬을 만들다가 스스로 감탄하는 날에는 아침을 뜬다.

저녁도 웬만하면 부부가 같이 먹는다. 코로나 대유행을 거쳐오면서 저녁 약속이 많이 줄었고, 문화로 고착된 까닭이다. 저녁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준비하는데 이 전 의원이 차리는 비율은 90% 정도다. 자녀가 독립하면서 식단은 육식을 꺼리는 아내 중심으로 짠다. 이 전 의원은 올해부터는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에 의존하지 않고 냉이도 캐고 원추리도 뜯어다가 밥상을 차리려고 노력한다고 귀띔했다.


취사는 꼼꼼한 장보기부터

최시영 전 청주유기농마케팅센터장은 SNS에 자신의 ‘집밥 이야기’를 올린다.
최시영 전 청주유기농마케팅센터장은 SNS에 자신의 ‘집밥 이야기’를 올린다.

최시영 전 청주시유기농마케팅센터장은 집밥 이야기를 SNS에 일기처럼 올린다. 최시영 전 센터장은 집밥일기에 재료의 조달 과정과 조리법 등을 구구절절 쓰고, 반드시 아내 이야기를 곁들인다. 소꿉장난처럼 산다. 이러다가 사랑의 집밥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는 게 아닐까 싶다.

최시영 전 센터장은 2000년에 결혼했다. 장남이라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처음엔 어머니가 밥을 하다가, 몸져누우신 뒤로는 최 전 센터장이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결혼 전 취사의 경험도 없었단다. 이에 반해 최 전 센터장은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적잖이 동생들의 끼니를 챙겼다. 곤로에 냄비밥부터 배웠다고 회상했다.

스물네 살인 큰딸은 타지에서 대학에 다닌다. SNS뽁식이라는 태명(台名)으로 등장하는 둘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함께 살고 있다. 아침은 아내랑 둘이 먹는다.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았던 아내는 이제 빵과 커피로라도 아침상에 마주 앉는다. 건강 때문에 직장생활을 접은 최 전 센터장은 이참에 살림을 전담할까도 고민 중이다.

최 전 센터장은 한살림이나 별별농부(청주시 유기농)’에서 반드시 구매하는 재료도 있지만 동네 슈퍼와 전통시장에서 사는 품목도 있다품질과 가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성비를 따진다고 말했다. 그가 사는(Buy)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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