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소식지로 일군 아파트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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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소식지로 일군 아파트공동체
  • 박미라 전문기자
  • 승인 2023.06.09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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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쓰레기봉투 바꿔주기를 매개로 주민과 소통
주민주도 프로그램 운영, 입주민 소식지는 ‘알지오’

유재열 테크노폴리스푸르지오 아파트 관리소장

유재열 소장은 “주민들이 주체적, 독립적으로 참여,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사진= 박미라 기자
유재열 소장은 “주민들이 주체적, 독립적으로 참여,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사진= 박미라 기자

63(), 청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뙤약볕 아래 진행되고 있는 행사에 그가 나타났다. 청주새활용시민센터에서 주관하는 2023청주시민 환경한마당에 주민이 체험부스 운영자로 참여해서 응원 차 나왔다고 한다. 유재열 테크노푸르지오 관리소장. 이것이 그가 뚜벅뚜벅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그는 군 제대 후 20대 후반에 대우전자에 다니다 IMF 때 퇴직했다. 프리랜서로 다른 일을 하다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관리소 직원으로 9년 근무하며 필요한 자격증을 하나둘씩 따기 시작해, 2010년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기대에 차 관리소장을 시작했으나 18개월 동안 민원, 무한책임감,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아이가 셋이었다. 다시 일반 직장에 다니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리소장으로 되돌아왔는데 그곳이 바로 산남3지구 산남부영사랑으로 아파트였다.

두 번째 출발 당시 박완희 대표회장(현 더불어민주당 청주시의원)이 공동체 활성화를 추진해보자고 했다. 보통 관리소와 직원들의 업무는 공동시설 관리였는데 다양한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부담이 됐으나 용기를 냈다. 관리소가 주민과의 소통이 없으면 단절되고 고립되기 때문이다.


작은도서관, 공동체 거점 공간

작은도서관의 운영주체는 주민들이다. 어른들의 독서모임, 아이들의 학습모임이 주민주도로 열린다.
작은도서관의 운영주체는 주민들이다. 어른들의 독서모임, 아이들의 학습모임이 주민주도로 열린다.

먼저 도서관 운영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썼다. 그러자 민원이 아닌 다른 문제로 주민이 찾아오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또 우유팩을 모아 오면 쓰레기봉투로 교환해 주었더니 주민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잦아졌다. 쓰레기봉투 한 장의 가격은 미미하나 버려지는 우유팩을 쓰레기봉투로 받아가는 재미와 온 김에 나누는 애로사항, 민원, 미담 때문이었다. 우유팩 쓰레기봉투 교환은 환경 문제이긴 하나 공동체 활성화의 중요한 매개체라 생각되어 지금까지 7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는 아파트 관리는 서비스 업종으로 관리소는 아파트 공동시설 관리업무와 주민에게 어떤 서비스를 해야 할지 항상 고민한다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공모사업이나 행사를 열심히 하다 보면 보여주기식 일만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시선이 있는데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기본 업무인 공동시설 관리를 더 열심히 하려고 신경 쓴다고 했다.


주민, 마음의 문 열고 다가오다

주민과 함께 아파트 단지에 꽃을 심고 논을 만들어 모내기와 추수를 하고 공연이나 행사를 여니 관리소와 관리소장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주민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고생한다며 간식을 놓고 갔다. 이런 표현을 접하며 좋은 기운을 얻고 보람과 긍정적 목표를 갖게 되었다. 입주자 대표회장과 관리소장, 주민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되었고, 인정받았고, 성과도 있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주민들의 아파트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고 주거 만족도도 높아졌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러한 아파트공동체 활동으로 녹색청주협의회에서 주관하는 2017 시민실천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렵게 시작한 관리소장, 처음으로 상을 받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유재열 관리소장은 주민 한 명과 함께 대만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테크노폴리스 푸르지오로

노동자의 특성상 회사에서 요청하면 가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 2019년 송절동에 있는 테크노폴리스푸르지오 아파트로 출근하게 되었다. 출근 시간은 배 이상으로 늘었고 201811월에 입주한 새 아파트라 하자보수와 시설 관리 등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이전의 경험을 살려 테크노폴리스푸르지오아파트 공동체를 위해 도서관 활성화에 주력했다.

아이들은 도서관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역사교실과 수학 보드게임 교육, 육아를 위한 돌봄은 주민들을 움직였다. 도서관 봉사자들이 나왔고 주민과 함께한 다양한 공모사업 프로그램은 나날이 열매를 맺었다. 아파트 작은도서관이 시립도서관 책자에 소개됐다. 활발한 도서관 운영은 2021년 시립도서관 작은도서관 운영자 워크숍에 모범사례로 선정되어 유재열 관리소장과 김영순 푸른도서관장이 무대에 올라 발표했다. 떨리고 벅찬 순간이었다.


우리마을 알지오’-아파트 소식지

소식지 ‘알지오’는 시민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소식지 ‘알지오’는 시민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도서관 운영이 안정적으로 될 즈음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이원택)이 마을의 소식지 같은 신문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2022년 아파트 홍보와 공동체 활성화 차원에서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10여 명의 미디어 푸르미단체를 구성했다. 편집, 내용 구성, 분량, 독자 반응 등을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회에 걸친 외부 강사 강의와 자문 속에 우여곡절 끝에 우리마을 알지오창간호가 나왔고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할 것 같았는데 지금 다시 만들고 있다. 한 번에 끝내기엔 아쉬워서 지속 가능한 시리즈 형식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단다. 과정이 힘든 만큼 열매는 단 법이다.

테크노폴리스푸르지오 아파트 주민들이 계획한 신문 시리즈는 아래와 같다.

2023 상반기 1호 우리 이웃 알지오 / 2023 하반기 2호 우리 지구 알지오 / 2024 상반기 3호 우리 도서관 알지오. 이후 시리즈는 다양한 이름으로 계속된다.

한 번이 힘들지 두 번은 쉽다. 아파트 소식지 만들어 본 한 주민이 최근에 어린이 기자단을 창단,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이 기자단이 취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씨앗은 열매를 맺고 열매는 다시 씨앗을 남기고 퍼뜨린다.


1평 논에서 손 모내기 하다

1평 논에서 손 모내기가 실시됐다. 아이들이 주축이라 새참은 햄버거였다.
1평 논에서 손 모내기가 실시됐다. 아이들이 주축이라 새참은 햄버거였다.

지난 5월 아파트 중심부인 아쿠아가든에 1평 남짓한 논을 만든 후 모심기 체험을 했다. 신청자는 대부분 유치부와 초등 저학년이었는데 주변의 아파트 주민도 참여했다. 어른들은 양쪽 끝에서 줄을 잡아주고 아이들은 자그마한 손에 모를 잡고 허리를 숙여 모를 심었다.

한가한 시간 그 논 위로 새들이 모이를 찾아 내려온다. 협동이 필요한 손 모내기는 요즘 농촌 마을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 아파트 단지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를 심는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신기하다. 논에서 자라는 벼는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색깔과 모습으로 성장하며 주민을 반기고 쌀로 지은 밥을 날마다 먹는 아이들이 그 벼를 직접 심고 키우고 거두는 소중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보통 농촌에서는 힘든 농사일 중간 논두렁에 앉아 새참으로 간단히 국수나 짜장면을 먹지만 이날 아파트에서는 모내기 후에 어린이들에게 새참으로 햄버거가 제공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공동체 사업의 발전 방향으로 불편사항 개선이나 아파트 홍보의 일환으로 다양화 미디어 활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공동주택의 주인은 주민이라는 점이다. 관리소장은 공동 시설물 관리와 주민에 대한 서비스, 지원이 본연의 역할이다.

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성장하면 관리소장은 2선으로 물러나야죠. 주민들이 주체적, 독립적으로 참여,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허투루 듣지 않고

영구배수 활용한 수돗물 절약사업 국토부 장관상


유재열 관리소장은 테크노폴리스푸르지오아파트로 지하 주차장을 순찰하다가 물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 의아했다. 직원들에게 물으니 배수펌프의 필터 값이 비싸고 빗물이 일정치 않아서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던 중 빗물을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 우수(雨水, 빗물) 저수조를 활용하기로 했다.

영구배수를 우수저수조로 끌어 올려서 사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적중했다. 영구배수는 지하수이기 때문에 빗물처럼 오염도가 거의 없어서 필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에 대표회의 의결을 거친 후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그동안 높은 유지비용 및 빗물의 유입이 일정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던 우수조를 지하 2층에 영구적으로 흐르는 물을 연결 담수하여 매년 5000톤 이상의 수돗물 절약과 연간 8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 결과 2021년 전국 110여 개 기관 단체와 경합하는 탄소중립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이후 다양한 환경 공동체 활동으로 2022년에는 우수관리단지 국토교통부 장관상(전국 6)에 선정되었다. 청주시에서는 처음 받는 상이었다. 또한 2023년에는 청주시 환경대상 단체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박미라

2009년, 청주시 산남동 ‘두꺼비마을신문’의 시민기자, 편집장으로서 공동체와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냈다. 현재는 교육문화국장을 맡아 어린이·청소년·시민기자교육과 다양한 인문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작은도서관 활동가 등 직접 해결사로도 나선다. 청주시, 교육청 등의 각종 기록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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