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인들이 꽃이라 불렀던 ‘팔레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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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인들이 꽃이라 불렀던 ‘팔레르모’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6.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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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 살던 바이킹이 남하에 점령한 땅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⑤

팔레르모 대성당 전경. 사진= 정연일
팔레르모 대성당 전경. 사진= 정연일

시칠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이킹이다. 영어로는 바이킹이지만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비킹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에 살았던 이들이다. 북유럽 특히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 ‘Vik’으로 끝나는 지명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Reykjavik). 비크(Vik)는 노르드어로 만(, bay)을 뜻한다. 좁고 긴 협만(피요르드)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해서 바이킹(Viking)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북유럽은 국민소득이 높고 사회복지가 발달한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이 포진해 있지만, 중세 시절은 겨울이 길고 추운 척박한 야만의 땅이었다.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바이킹은 뛰어난 항해술로 먹거리를 찾아 유럽 곳곳을 배로 다니며 탐험하거나 무역 또는 약탈을 했다. 바이킹의 용감무쌍한 전투력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네거리를 의미하는 콰트로 칸티. 사진= 정연일
네거리를 의미하는 콰트로 칸티. 사진= 정연일

11세기부터 바이킹은 따뜻하고 기후가 좋은 땅을 찾아 남하하는데, 이들이 정착한 곳이 프랑스 서쪽 노르망디 지역이다. 이때부터 바이킹은 노르만(Norman)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르만의 어원은 북쪽 사람(North man), 노르망디라는 지명도 노르만에서 나왔다. 이후 노르만은 노르망디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바다 건너 영국을 정복하고 노르만 왕조를 세우기도 하고, 지중해를 항해하며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이 지배했던 시칠리아에서 아랍인을 몰아내고 노르만계 왕조 국가인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바이킹과 노르만의 침략으로 유럽의 많은 지역이 파괴되었지만, 이들은 유럽에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르만 건축 양식이다. 노르만이 지배했던 유럽 곳곳에 노르만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노르만 양식은 현지의 문화와 결합하여 독특한 스타일을 재창조한다. 영국에 남아있는 노르만 건축물은 앵글로 노르만 스타일이고, 시칠리아에 남아있는 노르만 건축물은 아랍 노르만 양식이다.

누오바 게이트의 무어인 조각. 사진= 정연일
누오바 게이트의 무어인 조각. 사진= 정연일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이교도의 건축 양식이지만 노르만 왕조의 시칠리아 왕국은 북아프리카 아랍(무어) 양식을 배척하지 않았다.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지식과 지식도 적극벅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했다. 노르만 왕조의 시칠리아 왕국이 한때 지중해를 호령하며 이탈리아반도 남부 대부분을 접수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특히 시칠리아에 아랍 노르만 양식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다.


도보 여행의 시작은 누오바

노르만인이 세운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는 팔레르모였다. 팔레르모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지배 시절 완전한 항구라는 뜻의 판노르무스(Panormus)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카르타고 지배 시절의 이름이 팔레르모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르타고인들은 팔레르모를 꽃이라고 불렀다. 시칠리아의 주도이기도 한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에 핀 한 송이 꽃 같은 도시이다. 겹겹이 쌓인 역사의 흔적과 문화,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야경이 있는 도시다. 며칠을 머물며 둘러봐도 시간이 부족한 곳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부분의 유럽 도시가 그렇듯이, 팔레르모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구시가와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신시가로 나눠진다. 구시가는 충분히 걸어 다닐만한 거리다. 구시가의 거리와 골목은 작고 좁아,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이 많다. 팔레르모 도보 여행의 시작점은 독립광장 근처 누오바(Nuova) 게이트에서 시작한다.

프레토리아(시청) 광장 수치의 분수. 사진= 정연일
프레토리아(시청) 광장 수치의 분수. 사진= 정연일

멀리서 봐도 누오바 게이트는 매우 특이한 모양이다. 거대한 아치형 통로에 터번을 쓴 네 사람의 남자가 머리로 기둥을 받치고 있는 듯한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터번을 쓴 사람은 한때 시칠리아에 토후국을 세우고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북아프리카 아랍인이다. 누오바 게이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의 튀니지 정벌 이후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입성할 때 기념으로 세워졌다. 무어인을 기둥 받침으로 새겨 놓은 것이다.

누오바 게이트를 지나면 이탈리아를 통일한 사보이 왕가의 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이어진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는 노르만 왕조의 왕궁이었던 노르만 왕궁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거대한 성당이 보인다. 1185년에 완공된 팔레르모 대성당이다. 노르만 바로크 신고전주의 무어식 건축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유럽의 다른 성당과 비교하면 매우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대성당의 지하에는 노르만 왕조 시칠리아 왕국을 세운 루제루 2세를 비롯한 많은 인물의 관이 매장되어 있다.

부치리아 시장의 구이전문점. 사진= 장소란
부치리아 시장의 구이전문점. 사진= 장소란

대성당을 둘러보고 나와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대부분 노점상이 책을 판매하고 있다. 호기심에 한 노점상에게 물어보니, 팔레르모시에서 책 외에는 노점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활자와 종이책이 죽어가고 있는 시대에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반갑기까지 하다. 책을 한 권 사고 싶었지만, 모두 이탈리아어로 된 책들이다.

도서 노점상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팔레르모 구시가지의 중심인 콰트로 칸티(Quatro Canti) 라는 이름의 작은 광장이 나온다. 네 개의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16세기에 지어졌다. 콰트로는(Quatro) 는 숫자 4이고, 칸티(Canti)는 구역을 말한다. 옛 팔레르모의 네 개의 구역이 만나는 중심에 지은 것이다. 네 개의 아름다운 바로크식 장식을 한 건축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네 개의 궁전은 봄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한다고 하며, 궁전 중앙에 있는 네 개의 분수는 팔레르모의 네 개의 주요 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정복자의 조각 그대로 남아

대부3의 배경으로 나왔던 마시모 대극장. 사진= 정연일
대부3의 배경으로 나왔던 마시모 대극장. 사진= 정연일

무엇보다 우리 정서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은, 각 건축물에 있는 대리석 조각상이다. 역시 한때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스페인 왕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 네 명의 조각상이 있다. 콰트로 칸티는 스페인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스페인이 물러가고도 이들은 정복자의 조각을 그대로 남겨뒀다. 지나간 역사도 시칠리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콰트로 칸티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팔레르모 시청사와 프레토리아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는 16세기에 토스카나의 건축가가 만든 아름답고 우아한 분수가 있다. 분수에는 그리스 로마신화 속의 인물로 만든 16개의 대리석 조각상이 있는데, 고대의 신화 조각상이 그러했듯 모두 나체이다 보니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분수를 수치의 분수라고 불렀다는 재밌는 일화가 있다.

프레토리아 광장 근처에는 팔레르모의 재래시장이었으나, 지금은 여행자와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부치리아(Vucciria) 시장이 있다. 작고 좁은 골목을 따라 형성된 시장이다. 시장 구경도 구경이지만,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도 좋은 곳이다. 시장의 카페에 앉아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 오렌지색 아페롤을 한 잔 마시며 있으면, 남부 이탈리아 그것도 시칠리아답게 분위기는 항상 떠들썩하고 시장 사람들은 유쾌하다. 인생의 고민은 조금도 없어 보이고, 있더라도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쉽게 툴툴 털어버릴 것 같다.

시장에서 나와 팔레르모의 마시모 대극장으로 가는 길은 인파로 가득하다. 길의 양쪽에는 물건을 파는 가게와 카페와 바와 아이스크림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독일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많더라도 길은 조용하고 차분하겠지만, 사람들의 말소리, 고함, 웃음소리로 시끌벅적 떠들썩하다. 여기는 시칠리아니까. 시칠리아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시칠리아의 태양과 기후 그리고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콰트로 칸티에서 출발해 인파와 소음으로 가득한 좁은 길을 10분쯤 걸으면, 이탈리아의 음악가 베르디의 이름을 딴 베르디 광장이 나오고, 광장 왼편에 그리스 신전처럼 건축물의 전면을 꾸민 오페라 하우스 마시모 대극장이 나온다. 이태리어 마시모는(Massimo) 영어로 맥시멈(Maximum)이다. 최대, 최고라는 뜻이다. 그만큼 크기도 크지만 건축 자체가 아름답다. 시칠리아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마피아 영화, 대부 시리즈 3편에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잠시 여행지에서 돌아와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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