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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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즐거움
  • 장인수 시인, 국어교사
  • 승인 2023.06.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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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을 극락으로 만드는 것들

잘 먹는다는 행위는 정말 중요하다. 입맛은 몸과 영혼을 위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시골에 가기만 하면 미뢰 세포가 미친 듯 춤을 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노모는 된장에 무친 비름나물을 아침상에 올렸다. 나는 눈깔이 뒤집혔다. 비름나물에 썩썩 비벼서 아욱된장국이랑 먹었다. 밥을 고봉으로 세 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노모는 또 오이소박이를 올렸다. 이빨과 잇몸이 부실한 노모가 오이소박이를 아삭아삭 씹어먹는다. 그 소리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오이에 십자가로 칼금을 내어 그 안에 부추무침을 집어넣은 오이소박이! 살짝 발효가 되어 시큼한 오이소박이! 소박한 오이소박이! 쭈욱 찢어서 노모랑 나눠 먹는다. 나는 너무 맛있어서 아침부터 울 뻔했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아욱된장국의 고소함이다. 팔딱거리는 민물새뱅이를 진천 오일장에서 어제 사왔는데 노모가 아욱국에 넣었다. ‘민물새뱅이아욱된장국을 먹으니 머리와 눈과 어깨가 맑아지고, 정신이 청명해진다. 신비로운 국이다.

오늘은 마늘과 감자를 캔다. 햇마늘, 햇감자! 오늘은 이라는 먹거리와 종일 노는 날이다.

6월 초순이면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온다. ‘마늘 캐자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유혹의 말이다. 엔돌핀이 솟고, 심장으로 아드레날린이 상륙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이 햇마늘에 다 모여 있다.

나는 가장 맛있는 대패삼겹살을 사서 시골에 간다. 불판에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방금 뽑은 햇마늘을 통째로 가지고 와서 껍질을 벗기고 칼로 숭숭 토막을 내고 불판에 올린다. 불판에 올리기 전에 순연한 햇마늘의 맛을 보기 위해 통째로 입안에 넣고 와그작 깨문다. 입안 가득 퍼지는 아린 맛! 정신이 번쩍 든다.

지난해 10월 중하순에 파종한 마늘이다. 11월이 되면 마늘은 초록 촛불처럼 싹을 틔운다. 흰 눈 속에서도 파랗게 눈을 뜨고 있는 마늘 촉을 보노라면 신기하다. 마늘이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게 뻗어야 하는데 뿌리는 보통 5월에 많이 자란다.

이때에는 물을 흠뻑 줘야 하는데 1년 중 가장 가물 때다. 마늘 농사도 물과의 싸움이다. 매서운 한파를 이기고 봄을 지나 초여름에 캔다. 알싸하고, 아리고, 맵고, 달짝지근하고, 탱글하고, 아삭하고, 즐거운 맛! 마늘이라는 양념이 없으면 모든 음식의 맛은 반감된다. 우리 가족은 햇마늘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시골살이가 좋은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 가장 압도적인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단연 햇곡식을 먹는 일이다.

햇곡식 중에서 잘생긴 것은 내다 팔고, 못생긴 것은 집에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먹거리는 못생긴 것들이 더 애정이 가고, 더 맛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농작물의 30% 이상은 못생겼다. 좋은 포도송이 옆에는 못생긴 포도송이가 달려있게 마련이다. 튼튼한 고추 옆에는 볼품없는 고추가 자라기 마련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 때문이다.

사고파는 물건은 예쁘고 잘 생겨야 한다. 현대적인 유통 구조 덕분에 우리는 마트에서 잘생긴 농산물만을 매일 접하지만 실상 유통 이전의 생산 단계인 논밭으로 가면 못생긴 농산물이 정말 많다. 초승달처럼 고부라진 오이, 작은 혹이 꼭지 옆에 달린 토마토, 끝부분이 두 다리처럼 갈라진 홍당무, 한 꼭지에 세 몸이 붙어있는 딸기, 유통 기준의 크기에 못 미치는 작은 채소와 과일 등이 정말 많다. 이들을 납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못생겼다고 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옆의 열매에 치여서 못생긴 것이고, 벌레 때문에 못생긴 것이다. 벌레 먹거나 흉터가 있는 복숭아나 사과가 더 달콤하고 맛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 농민들은 잘생기고 못생긴 것으로 미와 추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고부라진 오이, 삐뚤어진 가지, 벌레 먹은 깻잎, 성숙하지 않은 감자알을 통해서도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다. 농민들에게 못생긴 과일이나 채소조차도 모두 아름다운 과일이고 예쁜 채소다.

감자를 캐는데 노모는 첫 수확한 감자를 벌써 가마솥에 쪘다. 감자를 캐면서 새참으로 찐감자와 막걸리를 먹는다. 이것이 들밥이고 새참이다. 나는 평생 들밥과 새참을 많이 먹었다. 밭고랑에서, 신작로에서, 느티나무 그늘 속에서 국수를 먹었고, 햇감자를 먹었고, 햇옥수수를 먹었고, 보리밥을 먹었다. 막걸리를 먹었고, 고들빼기 비빔밥을 먹었다.

옆에서 풀을 뜯던 흑염소가 다가와 젓가락을 핥으면 흑염소에게 밥도 주고, 옥수수도 주었다. 염소는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마늘 캐기는 지옥 같고, 감자 캐기는 천당 같네.”

감자는 줄기를 뽑으면 감자알이 툭툭 튀어나와 구른다. 감자는 깊이 박히지 않는 살짝만 흙을 파도 둥글둥글 데굴데굴 튀어나와 고른다. 감자 캐기는 아주 쉽다.

하지만 마늘을 캐다가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쇠스랑이 부러져서 새것을 사와야 했다. 전라도 마늘, 서산 마늘, 홍성 마늘은 때가 되면 뿌리가 삭아서 캐기가 쉽단다. 하지만 우리집은 단양 마늘, 의성 마늘을 주로 심는다. 뿌리가 튼튼하고 삭지 않는다, 끝까지 흙을 세게 움켜쥐고 있다.

그래서 쇠스랑으로 햇마늘을 캔다. 햇마늘은 끝까지 독종이다. 독종이 입안을 극락으로 만든다. 저녁에는 대패삼겹살과 햇마늘을 함께 구워서 먹는다. 입안이 극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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