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저하고(上底下高)’라더니 말 바뀐 ‘장기저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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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저하고(上底下高)’라더니 말 바뀐 ‘장기저성장’
  • 백정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6.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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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총재 “구조개혁 외면 통화‧재정정책 망국 지름길”
부자감세 뒤 몰려온 ‘24조’ 세수감소…지방재정은 ‘위태위태’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대한민국 거품 붕괴 ‘이미 진행 중’

2023년 하반기 경제전망

지난 3월 충청리뷰는 올해 우리 경제를 전망하며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기초가 위태로운 건축물로 묘사했다. 경제를 지탱하는 3개 기둥인 내수, 수출, 정부재정이 모두 그 토대부터 쓸려나가는 위험한 모습이 예상된다는 것. 이러한 전망은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던 상저하고(上底下高)’ 전망과 배치됐다.

올해 한국경제 전망이 시작된 작년 말부터 한국은행을 비롯해 주요 정부 및 유관 경제 전망기관들은 우리 경제는 하반기 코로나 봉쇄에서 해제로 전환한 중국발 훈풍의 수혜로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계부채로 신음하는 국민이 소비에 나설 수 있게 자극하는 방법은 급여 소득 인상으로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이것이 얼어붙은 내수를 녹이는 경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교섭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가계부채로 신음하는 국민이 소비에 나설 수 있게 자극하는 방법은 급여 소득 인상으로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이것이 얼어붙은 내수를 녹이는 경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교섭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2023년 하반기를 목전에 둔 지금 정부의 상저하고(上底下高)’ 전망은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중국은 이미 무역에서 우리 경제의 순풍이 아닌 역풍이다. 관련해서, 지난 525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이 총재는 5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경제가 이미 장기저성장(長期低成長) 구조에 와 있다선언했다.

구조적 조건이 장기저성장 체계라는 말은 적절한 수준(보통 2% 내외의 잠재성장률을 의미)을 넘어서는 성장목표는 현재 구조 아래에서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덧붙여 우리 사회가 필요한 구조개혁 없이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고도 말했다.

올 초 무려 40조 가까운 예산을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공급한 특례보금자리론사업이나, 한국은행 조기 기준금리 동결을 압박한 정치권에 대한 총재의 견제구였을까? 이번 호에서는 우리 경제의 하반기 변수들을 점검해 본다.


수출추락-재고급증-생산붕괴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다시 하향 조정했다. 작년 말 1.7% 전망에서 시작해 벌써 세 번째 조정이며 1.4%로 낮춰 잡은 성장전망도 하반기 경제가 1.8% 정도로 회복하지 못하면 달성할 수 없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최악의 경우 1% 초반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도 열어 뒀다.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3대 축인 수출, 내수, 재정 모두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수출이 살길이라며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기록한 실적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지난 4월까지 마이너스 341억 달러(439000억 원). 같은 기간 수출이 무너지며 기록한 무역적자는 683억 달러(88800억 원)에 이른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대한민국이 현재의 국민총생산 규모를 무역으로 유지하는 방식을 한마디로 묘사하면 반도체(제조업)를 팔아 번 돈으로 식량과 에너지를 사 오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지난 5월말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4월 제조업의 재고-출하 비율(재고율)은 130.4%로 외환위기 당시 수준인 129.2를 훌쩍 넘어섰다. 출처=통계청
지난 5월말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4월 제조업의 재고-출하 비율(재고율)은 130.4%로 외환위기 당시 수준인 129.2를 훌쩍 넘어섰다. 출처=통계청

그러나 수출의 보고였던 중국을 중심으로 수출이 막히면서 수출업체들의 창고는 재고로 넘쳐나고 있다. 관련 지표인 제조업 재고비율130.4를 기록하며 이미 외환위기 당시의 수준인 129.2를 훌쩍 넘어섰다. 수출이 추락하며 재고가 쌓이는 과정이 무려 1년 가까이 이어지며 그 여파는 제조업 자체를 억누르고 있다. 국내 제조업 생산이 이미 6개월째 감소하며 산업생산 붕괴 조짐까지 관측되고 있는 것.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정부는 상저하고를 강조하며 대중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 말고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6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온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현재 세계 경제 전망이 가장 낮은 시기로 우리 경제도 함께 영향을 받고 있다하반기에 나아질 것이라는 정부의 상저하고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최악의 수출과 그 여파로 붕괴 조짐을 보이는 산업생산의 대책을 내놓는 대신, 정부의 기존 전망에 집중하면서 책임론을 피하는데 급급한 모습이다.


올해 1분기 가계부채 OECD ‘1

물론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쓸 만한 대안이 없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무역적자를 내수활성화로 만회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해법이지만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가계부채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라는 절망적인 상황은 정부의 대책이 최소한의 경제상황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20231분기 기준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에서 대한민국은 국내총생산 규모를 빚으로 추월해버린 유일한 나라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국가별 GDP 대비 가계부채 순위와 국가별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순위를 발표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할 경우 한국 가계부채 규모는 3000조에 육박한다. 출처=KERI 3월 6일자 보도자료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국가별 GDP 대비 가계부채 순위와 국가별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순위를 발표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할 경우 한국 가계부채 규모는 3000조에 육박한다. 출처=KERI 3월 6일자 보도자료

가계부채로 신음하는 국민이 소비에 나설 수 있게 자극하는 방법은 최저임금을 포함한 급여 소득의 인상으로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이것이 얼어붙은 내수를 녹이는 경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임금교섭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부총리가 직접 나서 근로자의 임금인상이 물가를 자극한다면서 임금인상 자제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우리 정치인들의 이런 태도는 내수활성화를 위해 총리가 직접 나서 근로자의 임금을 인상해 줄 것을 기업에 요구하고 실제로 이를 이끌며 경기 반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의 정치인들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내수활성화의 기반은 임금인상을 통한 가계 가처분소득 확대가 아니다.

실제로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거나,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을 앞세워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했고 이를 통한 가계부채 공급의 확대로 파생될 부채의 효과를 추구했다. 40조 가까운 막대한 자금을 주택시장에 주입한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대표적인 부채확대 정책이다. 문제는 부채로 소비를 자극하는 정책이 더는 먹히지 않는 경제 환경에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징후는 최근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할 것 없이 전 방위적으로 확인되는 연체율 급등 양상이다. 연체율이 급등하면 정부의 바람과 달리 대출금리가 다시 상승하며 부채 공급의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특히, 오는 9월 말 이후부터 코로나를 이유로 상환이 유예됐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부채 53000억 원의 상환이 시작된다. 하반기 예상되는 금융기관의 연체 및 파산 비율 급증은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더는 빚을 낼 신용의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강제로라도 빚을 줄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강력한 신호다.
 

은행을 제외한 비은행금융기관(제2금융권) 연체율이 지난해 4분기말 기준으로 전 분기 대비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출처=국회 오기형 의원실.
은행을 제외한 비은행금융기관(제2금융권) 연체율이 지난해 4분기말 기준으로 전 분기 대비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출처=국회 오기형 의원실.

지자체, 재정위기 직면할 것

수출이 추락하고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세수 감소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수출 하락을 주도하는 반도체 경기침체는 당장 우리 고장 청주에 입지한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하락을 확정했고 회사가 남은 3분기 동안 실적 만회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내년 청주시의 지방소득세입은 대폭 줄어든다.

그런데 이렇게 수출침체가 지방재정에 미치는 충격은 실제로는 내수침체와 맞물린 부동산 경기침체와 비교하면 오히려 덜 아픈(?) 상처다. 지방재정의 중심에는 부동산세제가 있기 때문.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거래가 급감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예외 없이 대규모 세수 감소를 겪게 된다.

지방세수의 감소분을 국비확보로 만회하는 재정 회복 가능성은 있을까? 당연히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입은 1분기에만 25조 원 가량 감소했다. 이유는 모두 알다시피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단행한 부자 감세, 부동산 세금 감세다. 글로벌경제 환경을 무시한 채 결정한 정부의 세금정책은 내수침체, 수출침체와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 국세감소와 지방교부세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며, 이는 내년부터 지방정부의 재정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지자체들은 향후 보통교부세 감소 등 재정 변동으로 인한 감액추경, 대형 개발 사업에 대한 지출구조조정 등 이전 경제성장률이 국세와 지방세수를 떠받치던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재정위기의 대책을 세워야한다.


장기저성장이 향하는 곳은?

경제학자들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부채가 주도하던 성장의 시대가 끝났음을 경고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부채를 확대할 경로를 찾는데 머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재정 역시 그런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매 분기 세계경제 전망보고서 발표 때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 중인 IMF는 지난 4월 발표한 전망보고에서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 취약성이 위험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경고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 2023년 하반기 정부의 바람대로 반도체 경기가 극적으로 살아나고, 그 결과 환율이 안정되면서 대한민국이 다시 제조 강국, 수출 강국의 항로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일본경제가 30년 전 겪은 자산 가치 붕괴와 장기침체의 경로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이미 시작된 거품 붕괴와 장기저성장 시대를 미처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채 맞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백정현

대표적 풀뿌리신문인 옥천신문 기자, 편집국장을 지냈다. 팟케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 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금융정책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2008년 옥천신문에서 출판한 ‘자전거타고 옥천에서 보물찾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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