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마다 총소리, 통곡이 들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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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마다 총소리, 통곡이 들리는구나
  • 신현수 전문기자
  • 승인 2023.06.21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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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 되새기며

그림책으로 읽는 625

2023625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73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호국 영웅 감사 위로연, 참전 용사 추모식, ·미 참전용사 초청 보은 행사, 학도의용군 추념식,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 등 갖가지 행사가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동족이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눈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비극적 역사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역사다. 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데다 종전이 아니라 잠시 멈춘 정전 상태에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625전쟁 발발 73주년을 맞아 625전쟁을 다룬 역사 그림책을 어린이·청소년들과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그림책 다섯 권을 소개한다.


치매 할아버지에게 찾아든 소년병 시절의 기억

우리 할아버지는 열다섯 살 소년병입니다

박혜선 글, 장준영 그림, 위즈덤하우스

올해 여든다섯 살인 할아버지가 열다섯 살 까까머리 소년병이 됐다. 치매를 앓게 되면서 70여 년 전 625가 일어났던 열다섯 살 시절에 기억이 머물러 버린 탓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 갔다가 가방 대신 총을 메야 했던 할아버지는 깜깜한 걸 싫어한다.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며 쿵쿵거리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엄마도 잊고 아빠도 잊고 다른 기억은 점점 사라지는데, 소년병 시절의 일만큼은 갈수록 또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겁에 질린 채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이 손으로 저 같은 아이를 죽였어요라며 흐느껴 운다.

그런 할아버지를 가족은 열다섯 살 소년의 눈높이에서 아버지, , 친구가 되어 안아 주고 토닥인다. “걱정하지 마라, 네 잘못이 아니란다하면서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치유하려 애쓴다.

기나긴 인생길에서 행복하고 좋은 날들도 많았는데 할아버지의 기억은 왜 70여 년 전의 소년병 시절에 멈춰 있는 것일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전쟁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가슴 아픈 그림책이다.


단짝이었던 두 순득이의 전쟁 속 숨바꼭질

숨바꼭질

김정선 글·그림, 사계절

전쟁과 숨바꼭질, 둘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양조장 집 딸 박순득과 자전거포 집 딸 이순득은 한동네에 살며 늘 꼭 붙어 다니는 단짝이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서 이순득은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오르고, 박순득은 마을에 남는다.

이순득은 들판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전투기의 폭격을 피해 밭에 숨는 등 고단한 피란길 끝에 피란민촌에 정착한다. 술래가 된 박순득은 이순득의 피란길을 목소리만으로 뒤쫓는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달님이 찾을라하면서.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순득은 피란민촌을 떠나 단짝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제 내가 술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해님 아래 지난다. 동구 밖에 다 왔다라고 하면서.

하지만 고향 마을은 폐허가 돼 버렸고 자전거포도 양조장도 다 부서졌다. 박순득이 키우던 점박이만 있을 뿐, 단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순득은 애타게 찾는다, 박순득!”, “어디 어디 숨었니?”하면서 박순득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박순득은 어디에도 없다. 이순득이 단풍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아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도 박순득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한 아픈 이별을 우리 전래놀이인 숨바꼭질에 빗대어 그린 독특하고도 뜻깊은 그림책이다.


흥남 철수 작전의 마지막 피란선 이야기

온양이

선안나 글, 김영만 그림, 샘터

6.25 전쟁 당시 벌어졌던 흥남 철수 작전에서 수만 명의 피란민을 실어 나른 마지막 피란선 온양호의 사료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195012월 중순, 아홉 살 명호네 가족은 고향을 떠나 피란길에 오른다. 북으로 진격했던 국군과 미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군인들과 무기, 물자를 남쪽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키고자 흥남 철수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만삭인 어머니는 양식과 이불 보따리를 이고 지고, 명호와 명남이도 봇짐을 멘다. 기차는 이미 끊겼고 육로는 중공군이 점령해 남쪽으로 가려면 배를 탈 수밖에 없다. 명호네 가족도 흥남부두를 향해 춥고 험한 길을 밤낮으로 걷고 또 걷는다.

온갖 고생 끝에 흥남에 도착한 얼마 후, 군인들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피란민들도 배에 오른다. 하지만 피란민이 너무 많아 명호네는 언제 배를 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러던 중 곧 배가 끊길 거라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배에 올라탄다. 명호와 명남이, 어머니도 배를 타기 위해 앞으로 나간다. 그런데 다른 피란민이 지고 있던 농짝이 어머니의 배를 쳐서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명호는 선원에게 애원해 어머니의 상태를 알리고 그 덕분에 명호네는 배에 탈 수 있게 된다.

밤새 진통하던 어머니는 다음날 갑판에서 아기를 낳고,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온양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아기가 태어난 흥남부두의 마지막 배, ‘온양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195012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 간 약 10만 명의 군인과 17000대의 차량을 비롯한 장비와 물자, 10만 명의 피란민까지 수송했던 흥남 철수 작전은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해상 철수 작전으로 꼽힌다. ‘온양호는 이때 가장 마지막인 1224일에 흥남부두를 떠났던 마지막 배다.

온양호라는 피란선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참혹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새 생명이 기적처럼 태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희망을 그려낸 그림책이다.


원혼들이 말하는 전쟁의 참상과 본질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권정생 글, 이담 그림, 보리

하얀 달빛이 내리비치고 소쩍새가 울어대는 치악산 골짜기의 봄밤. 평안도가 고향인 오푼돌이 아저씨와 함경도가 고향인 소년 곰이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쯤 우리 고향 집 뒷산에서도 소쩍이가 울 거예요.”

그건 우리 고향 집 뒷산도 마찬가지지.”

둘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 통에 목숨을 잃은 원혼들이다. 인민군이었던 오푼돌이 아저씨는 국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고, 곰이는 가족과 피란 가다가 전투기의 폭격을 맞았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건만 입은 옷은 그때 그대로다. 인민군복을 입은 오푼돌이 아저씨는 한쪽 어깨가 찢낀 채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무명 솜옷에 고무신을 신은 곰이는 뒷머리에 핏덩이가 엉켜 있다.

전쟁을 피해 달아나려 했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금방 따라온 거예요. 살려고 갔는데도 난 죽은 거예요.”

인민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뿐이었어.”

오푼돌이 아저씨와 곰이, 두 원혼이 나누는 대화는 전쟁의 참상과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토속적이면서 두터운 질감의 사실적인 그림 또한 전쟁의 비극을 생생히 전하는데 한몫한다.


큰 기와집의 눈으로 본 전쟁의 비극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이규희 글, 김종민 그림, 키위북스

6.25 전쟁에 휩쓸린 한 가족의 아픔과 비극을 그들이 살던 큰 기와집의 시선으로 그려낸 그림책이다.

미루네 집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큰 기와집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떠들썩하게 치른 다음날 새벽, 쌕쌕이가 요란하게 날아가고, 대포 소리도 쿵쿵 들려온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평화로웠던 미루네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난다. 미루 할아버지는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고, 미루 아버지는 북쪽에 끌려가고 만다. 나머지 식구들은 부랴부랴 외갓집으로 피란을 간다.

미루네 식구들이 모두 떠난 사이, 북쪽 군인들이 큰 기와집을 차지한다. 큰 기와집은 주저앉고만 싶지만 피란 간 식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꿋꿋하게 견디기로 한다.

애타게 기다리던 식구들이 돌아온 건 봄꽃들이 피어나던 화창한 봄.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미루 아버지는 돌아올 줄 모른다. 큰 기와집은 언제쯤 오시려나.’ 하면서 미루 아버지가 떠나던 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식구들이 피란을 떠난 사이에도 그 자리에 머무른 채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고스란히 지켜본 큰 기와집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신현수

동화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청주가 고향이다. 오랫동안 ‘국민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어렸을 때부터의 꿈대로 작가가 되어 활발한 작품 활동과 강연이나 강의로 전업 작가의 길을 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동화 <사월의 노래> <그해 유월은> <사이공 하늘 아래>, 청소년소설 <플라스틱 빔보> <조선가인살롱> <은명소녀분투기>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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