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하는 6월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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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하는 6월 사색
  • 주현진 인문학자,한남대 연구교수
  • 승인 2023.06.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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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호한 공간에서 소요하는 존재

도종환 시인에게 6월은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우는공허한 그리움의 공간이듯, 멀고 먼 시간의 철학자에게 6월은 자기성찰의 공간이다. 옛 문구를 회고하며, ‘사유하는 주체가 되어 나 자신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6월의 공간에서 펼쳐보자.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참회록에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6이라고 말한다. 루소가 6월을 예찬한 것은 시원한 숲속에서 나이팅게일의 노래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명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의 18세기를 찬란히 빛나게 해준 철학자는 자연과 더불어 보내는 소박한 여름나기를 꿈꾸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준비하던 사회로부터 슬며시 물러난 은수자가 되려고 했던 것인가.

어쨌든 앞선 세기로부터 배운 이성주의에 기대며 인간 개인의 자유, 평등, 의지의 관념에 입각한 국민주권 원칙을 천명한 사회계약론의 저자 루소라는 위대한 인물에서 조금 벗어난 생경한 소박함이다. 유럽의 18세기, 특히 시민혁명을 구현하는 프랑스의 18세기에 붙여진 빛의 세기란 수사의 동인(動因)이기도 한 루소는 한국인들에겐 에밀참회록의 저자로 각인되어 있다.

남성을 가르치는 이상적인 교육법을 다루는 전자보다, 한국 근대문학사에 고백소설이라는 문학유형을 탄생시켰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후자의 저자로 루소는 받아들여졌다. 루소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100년도 훨씬 전이다. 1897년 대한제국 학부편집국에서 발행한 서양사 번역 교과서 태서신사(泰西新史)에 서양철학자로 소개되었다. 아마도 한국문헌에 처음 등장한 서양철학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190984일부터 98일까지 황성신문로사민약(盧梭民約)이라는 제목으로 제1면에 루소의 일부 문헌들이 번역문으로 소개되면서 근대 지식인들에게 자유주의자로 혹은 자연주의자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루소는 프랑스인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사회계약론』을 출간하기 바로 한 해 전 1761년에 『쥘리 또는 신(新) 엘로이즈』라는 서간체 소설을 출간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루소는 프랑스인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사회계약론』을 출간하기 바로 한 해 전 1761년에 『쥘리 또는 신(新) 엘로이즈』라는 서간체 소설을 출간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루소의 이면

 

물론 서양에서 루소는 ‘18세기 프랑스의 빛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뿐만 아니라, “통치할 정당한 권력은 신성한 칭호나 자연적 권리에 직접적으로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피통치자의 동의에 의해 비준되어야 함을 주장한 사회계약론자로서 현대 민주주의가 잉태되는 현장이었던 프랑스 시민혁명의 초석을 놓은 존재로 역사에 새겨져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교육론에 관한 지적인 정보를 획득하면서, 18세기 이성주의의 진정한 화신으로 루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가 도달한 현대적인 통찰, 즉 인간과 국가 간의 관계에 관한 명료한 해설이 그것을 증명해주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성주의 철학의 견지에서 현대인의 자유와 권리를 견인한 루소를 이성적 인간형으로 규정할 것인가?

으레 사람들이 자신을 혹은 타자를 이성적인 사람또는 감성적인 사람으로 규정하듯이, 우리도 루소를 이성적 인간형으로, 현대의 모든 이성적 인간들의 선구자로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통상 인간유형을 숙고 없이 거의 습관처럼 분류하는 이성과 감성의 이분법으로 본다면, 루소는 이성적 인간형으로 분류되지 못할 것이다.

루소가 18세기 후반기 동안 유럽전역에 퍼지게 한 눈물의 희열이 그것을 증명해주니 말이다. 또한 눈물 흘리는 것을 즐긴다고 고백한 이성주의철학자는 18세기 바로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더구나 눈물로 감정의 무절제를 표출하는 최루성 소설을 창조한 사람이다.

루소는 프랑스인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사회계약론을 출간하기 바로 한 해 전 1761년에 쥘리 또는 신() 엘로이즈라는 서간체 소설을 출간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 이성을 개입시킬 수 없는 감동의 격정을 눈물의 홍수로 쏟아내게 한 소설이다. 신분이 다른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로서 신파극의 전형이다. 이 사랑으로 인해 여주인공 쥘리가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시민들에게 자유, 평등, 의지를 지닌 인간임을 자각하라고 역설하던 이성주의자 루소는 독자들에겐 최루성 소설을 제시하며 고독 속에서 진정 토로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 자신을 즐기라고 권유한다. 이렇듯 인간은 오묘하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는 분별 가능한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둘은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포개지기도 하면서 오묘한 인격을 형성한다. 인간은 이성적이다가도 유난히 감성적이게 되고, 감성적이다가도 선명한 이성을 내세우기도 하는 존재이다.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 연구교수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 연구교수

그러니 인간의 성향을 양분화한다거나 MBTI16분화하기보다는 이성과 감성의 사이 모호한 공간에서 소요(逍遙)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여름을 급히 초대한 6, 시원한 숲에서 새들의 노래와 시냇물 소리 들으며 를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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