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지부 지정이 결국 해고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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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지부 지정이 결국 해고 면죄부”
  • 계희수 전문기자
  • 승인 2023.06.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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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청주결실련 성희롱-해고무효 소송 항소심中
법원 “4인 이하 사업장이라 하자 없어” 1심 각하
피해자 “처음엔 사과하더니 이제는 부정…모욕적”
중앙경실련이 충북청주경실련은 사고지부로 지정한 것은 결국 해고의 명분으로 작용했다. 사진은 중앙경실련 앞에서의 시위. 사진=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
중앙경실련이 충북청주경실련은 사고지부로 지정한 것은 결국 해고의 명분으로 작용했다. 사진은 중앙경실련 앞에서의 시위. 사진=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

이 재판은 성폭력과 성차별적인 환경에 놓인 다수의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가, 아니면 법이 그것을 막아버리는가의 문제를 판결하는 것입니다. 성차별, 성폭력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 그 상식에 기초해 판결해 주십시오.”

기자회견에 참여한 선지현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의 해고 무효 소송 항소심 3차 변론 기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412, 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이하 지지모임)은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이어 나갔다.

시민단체 충북청주경실련에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20205, 성희롱 피해자 두 명은 조직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상조사를 요청했지만, 결국 충북청주경실련은 사고지부로 지정됐다. 규정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직무 정지가 결정됐고 임금 지급도 중단됐다.

지역 지부 존폐 결정 권한이 있는 중앙경실련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무처장을 포함한 사무국 상근활동가 네 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피해자들은 해고 사유를 만들기 위해 충북청주경실련을 사고지부로 지정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부당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걸었다. 1심에서는 각하 결정이 났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원심에서 재판부는 충북청주경실련이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에 해당하는 4인 이하 사업장이므로 민법상 해고 절차에 하자가 없다고 보았다. 또 성희롱 사건이 사고지부 지정의 발단이 된 것은 맞지만 이 때문에 해고됐다는 증거나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 측은 중앙경실련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재판부를 비판하는 한편, 항소심을 통해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성희롱 없었단 주장, 모욕적

1심에서 충북청주경실련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해고에는 이와 무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헸다. 그러나 항소심 단계에 진입하면서 돌연 태도가 변했다. 2심에서 충북청주경실련 측은 피해자들이 성희롱 사건을 고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사건 발생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는 202011, 경실련이 피해자에게 보낸 공식 사과문과 충북청주경실련이 꾸린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을 뒤집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항소심 과정이 자신들에게 세 번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한다. 성희롱과 2차 가해에 이은 또 한 번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성희롱 사건을 고소하지 않은 것이 경실련의 부당한 해고 조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성희롱이 발생했을 당시, 조직 내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고 나아가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를 원하며 법적 대응을 자제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지모임 측은 충북청주경실련이 언론과 지역사회의 이목이 쏠려있던 1심까지는 성희롱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소송 원고인 피해자 박나라 씨(가명)우리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조직을 믿고 기다리느라 소송하지 않은 것인데 이제 와 성희롱은 없었다’, ‘경미한 성희롱이었다등 말을 바꾸고 있다정말로 황당하고 모욕적이라는 심경을 전했다.


사건아닌 문화였다고?

해고무효소송 항소심은 6월 21일에 열린 4차 변론을 마친 후, 올해 하반기 내 판결이 날 전망이다. 사진은 중앙경실련 앞에서의 시위. 사진=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
해고무효소송 항소심은 6월 21일에 열린 4차 변론을 마친 후, 올해 하반기 내 판결이 날 전망이다. 사진은 중앙경실련 앞에서의 시위. 사진=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

피해자들은 그날의 성희롱을 두고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조직 내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가 이어진 결과라고 말한다. 기존에도 충북청주경실련 내부에서는 일부 위원들이 청년 여성 활동가에게 오빠라고 부르게 하거나 심지어 이쁜 강아지라고 부르는 등 성희롱과 성차별적 문화가 남아 있었다. 조직 내부에 여성위원회가 설립되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205, 한 임원의 별장에서 열린 단합회가 부싯돌이 됐다. 이 자리에서는 색소폰이라는 단어를 섹스폰으로 발음한 것을 농담으로 언급하며 색소폰보다는 섹스폰이 더 듣기 좋다고 하거나, 에로영화 이야기를 하던 중 애마부인의 환상적인 바스트, 풍만한 가슴등의 부적절한 발언이 오갔다. “과거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에로영화를 보고 나갔다고 말한 임원도 있었다.

이날 마무리 단계에서 한 위원은 중·노년의 남성 임원들과 젊은 여성 활동가들이 섞여 있는 무리에서 서로 손을 잡고 포옹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한 활동가가 악수로 대신하자고 제안했으나 포옹은 강요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언제까지 안고 있으면 되나요?”라는 발언이 나왔다.


2차 가해, 그리고 해고

조직 안에서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202010, 피해자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피해자지지모임을 결성했다. 그 이후로 2차 가해는 더욱 심해졌다. 가해자와 일부 경실련 회원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2차 가해가 온라인 네이버 밴드를 통해 이뤄졌다.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지한 연대인들은 이 밴드에서 자행된 수많은 비난과 조롱을 견뎌야 했다. “‘꼴페미들이 시민단체 하나를 말아먹었다”, “성희롱으로 뭘 그리 난리냐와 같은 발언들은 피해자들에게 성희롱 사건보다도 훨씬 더한 고통을 안겼다.

그해 11월 중앙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는 성희롱 사건과 이로 인해 발생한 2차 가해를 인정하는 사과문을 피해자에게 보내왔다. 또 가해자 및 2차 가해자에 대해 윤리위원회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과 재발 방지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 교육, 매뉴얼 구축 등의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내용도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 만에 받은 결정문이었다.

문제는 이와 동시에 충북청주경실련(지부)사고지부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함께 전달된 것이다. 이 조치에 따라 충북청주경실련 의사결정기구의 운영을 비롯해 상근활동가의 직책과 호칭은 자동 상실됐다. 이어 사무처장과 사무처 활동가 세 명 전원이 해고됐다. 성희롱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 2차 가해, 그리고 해고였다.


해고는 무효라는 정의를 위해

겪었던 아픔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깊어지는 진창에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의 용기가 실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할 겁니다.”

소송 원고 박 씨의 말이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행여 자신들이 건 소송으로 받은 판결이 나쁜 선례로 남는 것이다. 피해자지지모임은 피해자를 해고하더라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면, 일하는 여성들은 부당한 일에도 침묵해야 한다라며 우리가 이 고통스러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해고무효소송 항소심은 621일에 열린 4차 변론을 마친 후, 올해 하반기 내 판결이 날 전망이다.

충북청주경실련은 회원들의 회비 등을 모아서 마련한 자체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성희롱과 해고 등을 규탄하는 홍보물이 붙은 충북청주경실련 건물. 사진=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
충북청주경실련은 회원들의 회비 등을 모아서 마련한 자체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성희롱과 해고 등을 규탄하는 홍보물이 붙은 충북청주경실련 건물. 사진=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지지모임

 

 경실련 성희롱 사건 주요 경과


20205월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사건 발생, 피해자들이 문제 제기

20207월 충북청주경실련 집행위원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구성 및 조사 결정

20208월 진상조사 진행 중, 중앙 경실련의 조직 실사시작 및 충북청주경실련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구성

20208월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구성

202010월 가해자 및 경실련 일부 회원을 중심으로 온라인 네이버 밴드 공개. 조직적인 2차 가해

2020114일 중앙경실련 상임집행위 의결로 충북청주경실련 사고지부지정

20201111일 중앙경실련 상임집행위의 피해자 사과문 전달. 동시에 사고지부 지정 및 피해자들에게 해고통보

20201125일 사고지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현재까지 사고지부 상태

20212월 피해자들과 지지모임 해고무효 소송 시작

20227151각하판결, 피해자 항소

202211~2023년 항소심 1·2·3차 심리
2023621일 항소심 4차 심리

●계희수

기사 쓰는 언론 활동가.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을 나와 ‘청주방송’, ‘충북인뉴스’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충북민언련 활동가로 새로운 시대의 언론을 고민한다. 6‧1지방선거 특별페이지 <다른시선>의 편집국장을 맡아 독립언론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현재는 한국기자협회보 칼럼니스트, 청주여성시민매거진 <떼다>의 편집장으로 글을 짓고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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