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없애고, 냉장고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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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없애고, 냉장고도 치웠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6.28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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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으로 탈(脫) 자본주의 실험하는 사람들 6인
자급자족하며 냉장고 없애고 옷 두어 벌로 한철
샴푸 안 쓰고 물 적게 쓰기 위해 머리카락 버려
스트레스 받지 않을 만큼 절약 실천하는 지혜도

내 시야에 들어올 만큼만 갖자.” “수납장을 먼저 없애고 나니 치워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남겨야 할 것 100가지를 적는 것으로 시작했다.” 비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자기 고백이다.

옷장이며 책꽂이, 심지어는 냉장고까지 깔끔하게 수납하는 법을 가르치는 강사가 직업이 되고, 편리하게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는 수납장이 불티나게 팔리는 정리정돈의 시대에 지독한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비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극단적인 출발이 필요하다. 그만큼 본능적으로 쟁여두는 삶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청명이 자급자족하는 전북 남원 지리산집으로 가고 있다. 그는 비움 운동의 선구자다.
청명이 자급자족하는 전북 남원 지리산집으로 가고 있다. 그는 비움 운동의 선구자다.

청명은 먼저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별로 두 벌씩만 옷을 남겼다. 빨아 입기 위해서는 그래도 두 벌이 필요했단다. “옷을 없애니까 옷장, 옷걸이가 사라졌고, 세탁기 다리미도 필요 없게 됐어요. 물론 버린 것은 아니고 잘 빨아서 아름다운가게 등에 기부했습니다.” 옷은 옷장 대신 여행용 캐리어에 보관한다.

이쯤 되면 다른 것들은 어떻게 비웠을지 대충 공식이 나올 만도 하다. 냉장고를 없애는 과정은 조금 더 복잡했다. 일단 찬물 대신 상온이나 따뜻한 물을 마시고, 한살림 등 생협에서 최소한의 먹거리만 샀다. ‘우리 집 냉장고를 없애는 대신 생협 냉장고를 빌려 쓰자는 개념이었다. 크기가 다른 항아리를 포갠 뒤 그 안에 음식을 보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저는 일이 있어서 주중에 청주에 살고 남편은 지리산(전북 남원)에서 김치공장에 다니며 농사도 지어요. 쌀과 두부는 동네나 생협에서 사고 나머지 부식류는 밭에서 키웁니다.”

청명의 청주집에 있는 옷가방과 찬장. 이게 옷가지와 주방도구 전부다.
청명의 청주집에 있는 옷가방과 찬장. 이게 옷가지와 주방도구 전부다.

냉장고를 없애는데 전 가족이 동의한 것은 아니다. 남원 집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는데 여름 석 달만 튼다고 했다. 청명 가족이 최근에야 치운 것은 책이었다.


수칙 눈에 보여야 비운다

지극히 적게는 리산은숙의 신조다. 눈에 보이는 물건만이 아니다. 적게 먹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도, 관계도, 모두 적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면으로 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지극히 적게를 지키며 살다 보니 오히려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돼요.”

수납장을 모두 없애고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버릴 것은 무엇인지 다 드러내기 시작했다. “100개 정도만 남기고 다 정리하기로 했어요. 필통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세어 보세요. 버리는 게 쉽지 않아요. 사진을 찍어가며 몇 달 동안 했어요. 쓸만한 것은 다 기증했고 내가 버리는 쓰레기들을 적어보기도 했죠.”

리산은숙은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버렸다. 낮은 책상 하나만 있는 그의 집 거실.
리산은숙은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버렸다. 낮은 책상 하나만 있는 그의 집 거실.

그도 열다섯 벌만 남기고 옷을 모두 정리했다. 이제는 솔직히 더 버릴 게 없단다. 그래서 그는 최근 머리카락을 버렸다. 삭발했다는 얘기다. 아직도 혼자 머리 깎는 게 어렵단다.

샴푸는 사용하지 않고 물도 덜 쓰려고요. 남들의 시선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모자를 쓰기도 하지만 강의할 땐 이유를 설명하고 모자를 벗습니다.” 지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자아탐구와 평화의 말하기를 가르치는 그는 여성장애인연대와 뇌성마비인권협회로 출강한다.

영양사인 온도는 노조 전임으로 활동하면서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일한다. 최근엔 노조 일이 바빠서 탈핵과 비움 활동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단다. 그는 4,5년 전 생태도서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명을 만나 저런 삶도 있구나생각했다고 했다. 좋은 생각의 전염은 빠르다.

가진 것 중에 필요 없는 것을 서로 바꾸게 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안 사게 되니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졌죠. 딸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돼 더 기쁩니다.”

학교급식 영양사로 일하면서는 급식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걸 깨달았단다. 식단에 고기가 꼭 들어가고, 튀기고 볶아야만 먹는 패턴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조 전임이니까 함께 대안을 만들고 교육부에 요구도 하려고 해요. 그런데 동료 영양사들은 그럼 애들이 먹을까요”’라고 반문해요. 그게 현실입니다.“

비움을 실천하는 세 친구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청명, 온도, 리산은숙.
비움을 실천하는 세 친구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청명, 온도, 리산은숙.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워

지역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후는 현재 어린이집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청명이 오랜 지인이었지만 해방클럽에서 탈핵운동을 함께하면서 삶의 전환이 일어났다. 비움은 결국 계속 많이 사고, 많이 먹고 축적하려는 욕망을 제어하는 ()자본주의운동이란다.

그는 스스로 무의식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평했다. 로컬생산자와 직결된 물건을 사고 손수건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애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일절 물티슈를 쓰지 않고 물수건과 걸레를 쓴다, 가족들도 후의 방식을 따르게 됐다. 다만 집밥을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아직 냉장고를 없앨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일하는 직장 안에서 고쳐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파트타임 근무라서 내 주장을 내세우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물티슈를 너무 쉽게 쓰는 게 마음에 걸려요. 집에서 수건 몇 장을 가져다 놓고 수건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고 권장하고 있어요.”

종교로 치자면 복음주의, 근본주의적 실천에 질리거나 겁먹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게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다음 기회에를 외치는 사람들은 아직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봐도 된다. 비움의 속도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다.


혼자인 듯 함께 가는 삶

탈핵신문 읽기 모임. 왼쪽 멀리부터 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턴 활동가, 새벽, 후. 오른쪽 멀리부터 청명, 산책.
탈핵신문 읽기 모임. 왼쪽 멀리부터 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턴 활동가, 새벽, 후. 오른쪽 멀리부터 청명, 산책.

새벽은 청명과 같은 언어치료사로 일하면서 서로의 존재는 알았지만 다른 센터에서 일했다. 탈핵 도보순례에 열심인 청명에게 호기심을 느꼈지만 모임에는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절약하며 사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어머니 세대에게 배운 것도 있고요. 천으로 만든 생리대를 쓰고 보온밥솥을 쓰지 않아요. 공부를 통해 비움을 실천하는 편이라 냉동밥 데우기와 보온밥솥의 전기소모를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새벽의 절약하는 습성을 주위에서도 알다 보니 옷을 물려주는 사람도 적잖단다. 여간해서 새옷을 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옷이 적은 것도 아니라고 귀띔했다.

남성인 산책도 1인 세대에서 비움을 실천하고 있다. 그 역시 과도한 자기 억제로 스트레스 받는 것을 경계한다. 단순한 생활, 건강한 생활을 지양할 뿐이라고 했다.

내가 너무 유별나서 다른 사람들이 기피한다면 어떻겠어요.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도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는 자신의 스펙트럼을 중간쯤이라고 규정했다.

그래도 매달 한 차례 탈핵신문 읽기 모임에는 빠지지 않는다. 그전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던 문제였다. 옷이고 신발이고 새 물건보다는 중고품을 사고 만들어 쓸 수 있는 건 직접 만든다. 외식은 자제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물기를 제거하고 말려서 처리한다.

그가 버스나 승용차를 타는 기준은 1시간이다. 걷거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엔 차를 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원칙일 뿐 지키기 위해 스트레스가 쌓일 땐 슬쩍 일탈도 한단다. 이런 게 혼자 가는 듯 늘 함께 가는 삶이 아닌가도 싶다.


걷고 자전거 타고 몸자보까지 온몸 순례

비움 실천하는 톡방 이어 해방클럽 만들어 탈핵 홍보활동

그들을 깨운 한 줄 전기는 누군가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


비움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교집합이 있다. 한때 비움을 주제로 한 단체 톡방(talk)에 함께 있었고, 지금은 해방클럽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탈핵에 관심이 있으며, ‘탈핵신문을 함께 읽는다. 궁극적으로는 값싼 에너지에 기반한 무한 생산에서 벗어나는 탈 자본을 꿈꾼다. 현실적으로는 소비 절제를 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청명을 알고 있다.

아일랜드의 킨세일이나 영국의 토트네스처럼 전환마을에 모여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충북 청주에서 뿔뿔이 흩어져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시간과 돈을 맞바꾸며 악착같이 살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전환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월성 핵발전소 월요 상여 시위에서 관을 끌고 행진하는 청명.
월성 핵발전소 월요 상여 시위에서 관을 끌고 행진하는 청명.

이들이 모두 알고 있는 청명은 생각보다많은 공식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의 에너지전환위원장이고, 충북기후위기비상행동의 탈핵탈석탄팀장이기도 하다.

언어치료사가 직업이에요. 현재는 일주일에 사흘을 일하고 나머지 나흘은 탈핵, 탈석탄을 홍보하러 다녀요. 하반기부터는 주 2일 근무로 전환하려고 해요.”

그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탈핵신문을 읽고 탈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탈핵을 홍보한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이라는 소책자를 배달하러 다녔다. 옷에 붙일 수 있는 작은 현수막을 몸자보라고 부르는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빌 때는 늘 몸자보 차림이다.

6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동안은 전북 군산에서 새만금방조제, 부안, 고창을 거쳐 전남 영광군까지 169km를 자전거로 순례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가 개봉되면서 화제인 수라 갯벌에도 다녀왔다.


해방클럽 소풍 같은 선전전

청명은 틈만 나면 순례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순례했고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곳을 모두 찾아다녔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은 9년째 월요일마다 상여를 메고 시위 중이에요. 저도 때로 관을 끌고 시위에 함께 합니다.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이주뿐입니다.”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청명이 에너지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은 딸을 통해서였다. 지리산 실상사작은학교를 졸업한 딸이 서울에서 대안 고교 과정을 다니면서 밀양 고압송전탑 시위 문화공연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딸이 스물일곱 살이니까 벌써 8,9년 전이네요. 당시 유인물에서 전기는 누군가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문구를 봤어요. 나의 실상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가지지 않으면 불안하고 축적하려는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게 된 거죠.”

리산은숙은 청명의 친구이고, 후도 청명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단다. 청주 낭성 쌍샘자연교회 신자인 온도는 교회 부설 생태도서관 운영위원을 맡으면서 외부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청명을 알게 됐다고 했다. 새벽은 직업인 언어치료사 때문에 알게 됐으나 처음엔 못 이기는 척 탈핵신문 읽기 모임에 따라갔다고 했다. 산책은 탈핵신문 모임에서 청명을 처음 만났다.

이들은 현재 ‘해방클럽’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이들이 바라는 해방은 탈핵과 평화, 환경 등 전 지구적인 과제다. 따져보면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가지들이다.
이들은 현재 ‘해방클럽’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이들이 바라는 해방은 탈핵과 평화, 환경 등 전 지구적인 과제다. 따져보면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가지들이다.

세종시에 있는 공원이나 청남대 등으로 소풍 가듯 걸으며 우리가 알리고픈 것들을 전해요. 남편이나 아내, 아이들, 친구까지 그때그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에요.”

지진과 쓰나미로 폭파된 핵발전소에서 나온 오염수를 바닷물에 희석했다고 그 처리수는 마실 수 있다고 어깃장을 놓거나, 횟집에서 먹방이나 시연하며 방사능 괴담운운하는 정치는 얼마나 천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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