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그림자 수어, 만져보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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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그림자 수어, 만져보는 무대
  • 이숙정 전문기자
  • 승인 2023.07.0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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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장애인 접근성 충족되면 모두 어려움 없을 것”
미리 신청하면 ‘지하철역에서 공연장까지’ 이동도 지원
공연‧전시 관람 횟수 서울시민 평균 46회, 장애인 13회
소리를 들을 수 없더라도 대사는 물론 지문까지도 자막으로 알려주는 공연. 배우 뒤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그림자 수어 통역이 함께 연기한다.  자막의 경우 자막에 익숙한 관객과 노인 관객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소리를 들을 수 없더라도 대사는 물론 지문까지도 자막으로 알려주는 공연. 배우 뒤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그림자 수어 통역이 함께 연기한다. 자막의 경우 자막에 익숙한 관객과 노인 관객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오늘 공연 어떠셨어요?” “너무 멋있었어요. 음성 해설이 있으니까 제가 몰랐던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시각장애인 김혜영 씨(39)는 두산아트센터 연극 <20세기 블루스> 배리어프리 회차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공연 소감을 이야기하는 혜영 씨의 얼굴은 공연 관람 이후 감동과 만족감이 뒤섞여 있는 보통 관객의 얼굴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공연을 눈으로 보지 않고 듣고 느꼈다는 것이다.

혜영 씨와 같은 장애인을 위해 모든 공연장은 접근성(배리어프리)을 제공하게끔 되어있다. 장애인석이나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건물의 경사로 등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설들이다.

그동안 활용 여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공연장 장애인석의 존재가 더 눈에 들어온 것은 공연에 접근성(배리어프리) 콘텐츠가 다양한 방식으로 도입되면서부터다. 화면 자막 해설이 시작되고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던 수어 통역사가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 공연에 배리어프리를 도입하는 연극이 등장하기도 했다. 배리어프리 영화, 배리어프리 공연, 배리어프리 전시 등 접근성(배리어프리)’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접근성(배리어프리)이 뭐길래?

 

배리어프리는 barrier(장벽)free(없음)의 합성어로 원래 건축 용어에서 시작됐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물리적인 장애물, 심리적인 벽 등을 제거하자는 운동과 정책을 뜻한다. 요즘은 접근성이란 용어가 배리어프리를 대체해 사용되고 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2년 문화시설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문화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은 장애인을 특별하게 고려한다는 의미가 아닌, 장애인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를 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접근성이 충족된다면 다른 대상들도 문화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김혜영 씨는 두산인문극장 연극 <댄스네이션>을 관람할 당시, 무대 모형 터치 투어(관람하기 전에 공연의 무대 모형을 직접 만지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감각 경험을 할 수 있다)를 통해 실제 무대의 구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저도 배우가 이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배우들의 동선이나 움직임이 굉장히 궁금해요. 대사만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세심하게 준비해주신 게 감사했어요. 비장애인들은 선택할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선택할 수가 없어요. 접근성이 제공되지 않으면 장애인들은 공연예술을 아예 접할 수가 없어요라며 접근성(배리어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람하기 전에 공연의 무대 모형을 직접 만지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감각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실제 무대의 구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관람하기 전에 공연의 무대 모형을 직접 만지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감각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실제 무대의 구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강소정 두산아트센터 매니저는 무대 모형 터치 투어의 경우,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 모두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 소개, 무대나 조명 등 시각적 요소들을 미리 인지할 수 있도록 음성과 텍스트 형식의 음성 소개 자료도 제공하는데, 자막의 경우 자막에 익숙한 관객과 노인 관객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는 것이다. 접근성(배리어프리)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노인, 저시력자 등 비장애인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배리어프리가 연극을 만나면

 

2021년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에서는 접근성(배리어프리) 서비스인 개방형 음성 해설, 그림자 수어 통역이 공연에 도입됐다. 음성 해설은 개방형으로 이루어져 해당 회차를 관람하는 비장애인 관객과 장애인 관객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수어 통역은 그림자 통역(Shadow Interpreting) 기법을 시도해 수어 통역사가 배우의 동선을 쫓으면서 수어 통역을 진행했다. 무대 아래나 지정된 위치에 있었던 수어 통역사가 무대 위 배우가 된 셈이다. 이러한 시도는 비장애인 관객에게도 새로운 연출 방식이었다.

국립극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한 무대에서 그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연극을 만들었다. 2022년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시계로, 엘사 아님>에서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는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를 했다.

이 작품은 수어 통역사가 있지만, 청인 관객을 위한 자막 서비스는 없었다. 수어 통역도 필요한 만큼만 진행됐다. 관객은 청인 관객과 농인 관객이 같은 비율로 공연장을 채웠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서로의 언어로 소통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했다.

두산아트센터는 접근성(배리어프리)에 좀 더 적극적이다. 모든 공연에 접근성 콘텐츠를 제공한다. 연극 <댄스네이션>의 경우 수어 통역사가 무대 위에서 배우의 대사를 동시에 통역하는 수어 통역과 공연 전 기간 동안 대사나 소리 정보가 포함된 한글 자막 해설을 제공했다. 특히 무대 모형 터치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정 공연의 경우 가변형 무대의 특성을 살려 휠체어 석을 늘리기도 한다.

하우스 매니저가 장애인들의 이동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있다. 공연 관람전 별도 신청을 하면 지하철역에서부터 공연장까지 이동을 지원해 준다. 접근성 모니터 관객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같은 비율로 선정하여 접근성에 대한 모니터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접근성 매니저가 있어 장애인들의 공연 관람을 위한 접근성 지원과 더 나아가 작품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결합해 공연 속에 접근성을 위한 장치들을 연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청 두산아트센터 접근성 매니저는 이렇게 다 차려놔도 정작 서비스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와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이용하는 사람들과의 연계성도 필요해요. 아직 비장애인 중 접근성 콘텐츠에 대해 예민하게 보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이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좋겠고 실제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어요. 이 접근성 콘텐츠 때문에 새로 유입되는 관객분들도 있으니까요라며 장애, 비장애인 모두 윈윈(Win-win)’하는 방법들을 계속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장애인을 보기 힘든 이유

 

서울문화재단은 2023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연전시 관람 횟수가 서울시민은 46, 장애인은 13회였다. 비용에서도 서울시민은 10.1만 원을 사용하는 데 비해 장애인은 1.6만 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영상 시청에서는 장애인의 경우 72.5%로 다른 집단에 비해 높게 나왔다.

배우가 대사와 수어로 연기한다. 문체부는 “장애인의 접근성이 충족된다면 다른 대상들도 문화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우가 대사와 수어로 연기한다. 문체부는 “장애인의 접근성이 충족된다면 다른 대상들도 문화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민 13462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는 서울에 거주하는 장애인 313명이 포함되어 있다. 장애인의 문화 향유는 여전히 집 안에서 이루어지며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는 경우가 낮다는 얘기다. 서울은 공연장이나 문화시설이 상대적으로 밀집되어 있고 이동 수단이 풍부하기에 다른 지역의 경우를 미루어 짐작할 지표가 될 수 있다.

<2022년 문화시설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 보고서>의 조사 결과도 눈에 띈다. 조사대상인 문화시설의 73.0%장애인 접근성 개선 관련 계획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나,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응답은 29.1%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3년간 배리어프리 운영 여부는 11.1%에 불과했다. 이 중 59.1%는 연 1~2회 운영을 했다고 응답했다.

강소정 매니저는 접근성 서비스를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해요. 또 이 인력들을 교육해야 하고 정말 모든 것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죠. 소규모 극단이나 프로덕션이 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청 접근성 매니저 역시 접근성 예산이 책정된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정부 지원 사업의 경우도 극단이나 프로덕션이 접근성 강화에 의지가 있어도 한정된 예산에서 접근성 예산으로 사용해야 해요. 예산이 없으면 자원봉사에 의존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 접근성 의지가 있거나 필요로 하는 단체에는 예산을 추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민간이 당장 해결하기 어려우니 공공기관에서라도 빨리 해결이 되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여전히 장애인에게 문화시설 방문은 일상의 여가가 아니라 특별한 외출이다. 장애인은 그 특별한 외출에서도 무엇을 볼 것인가가 아니라 갈 수 있는 장소인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조사 결과는 보여준다. 법 규정도 있고 필요성도 느끼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공연장 장애인석에 앉기 힘들다.

공연장을 나서기 전 시각장애인 김혜영 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건 평등권의 문제잖아요.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르면 불편하고 싫은 것은 저도 마찬가지예요. 불편한 것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여유로운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접근성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지쳐서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숙정

공연전문 객원기자이자 비정규 에세이스트.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에 공연, 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오디오 플랫폼 <나디오> 오디오 작가로 활동 중이며, 화성시 문화재단 뉴스레터에 칼럼을 썼다. 포토 에세이집 <나도 처음이야, 중년>, 비정규직 노동자 취재기 <세상을 바꾸는 2%, 나는 비:정규직입니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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