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찬교 전 이장 참사 직전 ‘물 넘는 광경’ 촬영
주민들 “제방 헐고 공사하다 이틀 전부터 쌓아”
교량 확장 및 연장공사…둑 높이 1m이상 낮아
모두 열네 명이 희생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의 원인은 다리 확장 및 연장 공사 과정에서 우기 직전에 쌓은 허술한 제방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장찬교 전 청주시 오송읍 궁평1리 이장은 7월 17일 오후 3시 45분 충청리뷰와 현장 인터뷰에서 “사고 당시 임시제방을 무너뜨리고 물이 넘어가는 것을 직접 지켜봤다”고 증언했다.
장 전 이장은 기자에게 당일 사고 직전 찍은 현장 사진과 영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장 전 이장이 제공한 사진에는 방수포가 벗겨진 임시제방에 찰랑찰랑하게 물이 찬 광경이 그대로 담겨있다. 또 2초짜리 영상에는 물이 임시제방을 타고넘는 순간이 촬영됐다. 임시제방으로 물이 쏟아져 지하차도 옆 농지가 흡사 물바가지가 됐고, 이 바가지가 깨지면서 사고의 단초가 된 셈이다.
이날 현장에는 17일 원희룡 건설교통부 장관도 방문했으나 장 전 이장과 기자 등을 만난 원 장관은 “조사하러 온 것 아니다”라며 자리를 떴다.
인터뷰 하루 전인 16일 오후 3시쯤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거친 물줄기가 임시제방을 뚫고 빠져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먼저 물이 현재도 2차선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기존 제방을 타고넘은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가드레일 등 구조물은 물론이고 풀이나 나무도 눕지 않았으며 흙탕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새로 확장하는 다리 밑에서는 굴삭기를 이용해 다시 흙을 쌓고 방수포를 덮는 보수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또 다리 아래로 놓은 4대강 자전거도로가 끊기며 유실됐고, 수면 위에 공사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구조물도 물가 쪽 상판이 뜯긴 상태였다. 물길이 지난 흔적은 다리 밑 방수포를 씌운 쪽으로 이어졌다. 물길이 어떤 경로로 ‘할퀴고’ 지나갔는지 ‘현장’이 증명한 것이다.
장찬교 전 이장은 이에 대해 “흘러가는 물은 흘러가는 것이지만 옆구리가 터졌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빠른 속도로 안의 것이 쏟아져 나왔겠느냐”고 되물었다.
행복청은 “임시제방 튼튼했다”
그렇다면 왜 임시제방을 쌓았고 그 공사는 언제 이뤄진 것일까? 장찬교 전 이장은 “공사를 하느라 허물었던 제방을 사고가 나기 하루나 이틀 전인 13일, 14일에야 다시 쌓았다”며 “그것도 기존 제방보다 1m 정도 낮게 쌓아서 거센 물살을 막아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장 전 이장은 “홍수를 막으려면 현재 낮아진 교량의 상판보다 높게 난간까지 임시제방을 쌓고 양쪽에서 흙을 추켜올리면서 단단하게 다졌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상판 하단과 제방 사이에 틈이 없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752억 원을 들여 도로 및 교량 확장‧연장 공사를 발주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설명은 다르다. “7월 7일부터 임시제방을 쌓기 시작했으며, 총 44m 길이의 제방을 하단 너비 18m, 상단 5m로 쌓아 100년 빈도 홍수에 대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 들의 확인 결과 임시 둑 높이는 해발 29.7m로 기존 둑 31.3m보다 1.6m 낮았다.
장 전 이장은 이에 대해 “지금 보수한 임시제방을 눈으로 확인해 보라”며 “하단은 18m가 아니라 6~8m에 불과하며, 상단의 너비는 2m도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말이 모두 맞는다면 행복도시건설청과 시공사인 K건설 사이에 뭔가 사인이 맞지 않았고, 감리가 허술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다리 양옆으로는 2차선 도로로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제방을 허문 것은, 이 공사가 미호천교(미호강교)를 기존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하는 것과 동시에 다리의 길이까지 연장하는 공사이기 때문이다.
전후 과정을 빤히 아는 오송 주민 오 모 씨는 “다리 밑의 하천 폭은 320m인 반면 하류 쪽은 700m까지 넓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물흐름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하천 폭을 620m로 넓히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 제방도 뒤로 밀어내 새로 쌓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천 폭을 계획대로 넓히게 되면 미호천교는 기존 360m에서 약 두 배인 710m로 길어진다.
여기에다 2021년 8월부터 약 2년 간을 공사기간으로 시작한 이 공사는 확장한 미호천교에서 고가(高架)로 연결되는 도로까지 6차선 확장공사를 이어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공사 차량이 현재 일반 차량이 운행하는 ‘임시다리’나 ‘임시도로’로 다니지 않고 공사 현장을 누비기 위해서 기존 제방을 헐었다는 얘기다.
장 전 이장은 “작년에도 올해처럼 임시제방으로 잠시 막았다. 작년에는 올해처럼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넘어갔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누가 뭐래도 ‘인재+인재’ 겹쳐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만, 이번 참사는 인재에 인재가 겹쳤다. 홍수 발생의 위험이 매우 컸음에도 시공업체의 대비가 허술했음은 물론, 행정기관의 현장 확인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장 전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어느 기관도 현장 나타나지 않고서는 사고 결과에 대한 책임만 떠넘기는 상황이다.
결국 충북 청주에 500mm에 가까운 비가 쏟아진 7월 15일 오전 8시 45분쯤 흥덕구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오송 3거리에서 오송읍 쪽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이 지하 차도는 길이 430m, 높이 4.5m, 왕복 4차선 규모다.
다리 건너 상습 침수구역인 강내면 탑연 삼거리가 물에 잠기면서 쌍청리 쪽으로 우회한 차량이 대거 몰리면서 지하차도 안에는 747번 급행 시내버스 등 차량 열여섯 대가 갇혔고, 17일 오후까지 이어진 수색 결과 모두 열네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홉 명은 사고 직후 스스로 현장에서 탈출했다.
지하차도에 6만t의 물이 밀려드는 데는 불과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결국 허술한 임시제방을 손보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면 적어도 지하차도의 교통을 통제함으로써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고를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여러 차례 있었다. 미호강에 홍수경보를 발령한 시간은 15일 오전 4시 10분, 계획홍수위인 9.29m를 넘어서 흥덕구청에 주민대피와 교통통제를 권고한 시점은 2시간여 뒤인 6시 30분쯤이다.
흥덕구 관계자는 “시청 관련 부서에 내용을 전달했으나 이 도로의 교통통제는 충청북도의 권한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충청북도 관계자는 “홍수경보가 내려도 상황 등을 파악해 차량을 통제하게 돼있다”며 “시청 등에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해, CCTV 확인 뒤 현장 출동 조치만 했다”고 답변했다. 이 지하차도는 ‘침수위험 3급’에 해당해 홍수경보가 내려지면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어느 기관도 책임지고 나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장찬교 전 이장은 “사고 직전인 15일 오전 7시 51분쯤 119에 신고했고 소방대원들이 곧바로 (제방 쪽에) 출동했지만 ‘저희가 이건 못 막습니다’라며 철수했다”며 “외부에 알려진 것 같이 소방관들에게 교통통제를 요청했던 것은 아니다. 지하차도 침수로 이어질 거라는 사실은 아무도 예측 못 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원희룡 장관, 뭐하러 왔는가”
한편 17일 장찬교 전 이장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마주쳤으나, 원 장관이 대화를 피하며 현장을 황급히 떴고, 장 전 이장이 강하게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원희룡 장관은 이날 오후 4시쯤 행복도시건설청 관계자 등 약 열다섯 명과 함께 임시제방을 찾아 현장을 둘러봤다. 아래에서 현장을 살핀 원 장관은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제방 위까지 올라왔다가 장 전 이장과 마주쳤다.
원 장관은 장 전 이장이 “TV에서 봤다. 나는 궁평1리 전 이장”이라고 소개하자 반갑게 인사하는 듯하다가, 장 전 이장이 “대비하지 않아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며 상황을 설명하려 하자 “조사하러 나온 게 아니다”라며 서둘러 현장을 떴다. 원 장관은 또 장 전 이장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두세 명의 기자들에게 “언론인들이냐? 언론인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도 아니다”라며 선수를 쳤다.
장 전 이장은 서둘러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원 장관 일행을 향해 “이렇게 하려면 뭐하러 왔냐. 나는 이렇게 깍듯하게 대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직함만으로 장관 노릇을 하는 사람이냐?”고 따졌다.
원희룡 장관은 16일에도 지하차도 수습 현장을 찾았다가 인터뷰를 핑계로 20초 동안 견인차를 가로막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CBS의 ‘노컷브이’ 유튜브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쯤 원 장관은 도로 가운데서 인터뷰하다가 “견인 차량이 들어가야 한다. 잠깐 비켜 달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원 장관은 “예, 예, 우선 좀…”이라며 인터뷰를 이어가다가 “비켜달라”는 요구가 다섯 차례나 반복되자 그제야 한쪽으로 비켜섰다.
원 장관은 17일, 다시 지하차도 현장을 찾아 종합상황실에서 최종 수습 결과를 들은 뒤, 사고의 실마리가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임시제방까지 500여m를 걸어서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18일까지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추가 유실 우려 등을 살피기 위해 현장을 찾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장을 찾은 도종환(청주 흥덕, 민주당) 의원은 “과 도로 확장이 행복도시 특별회계 예산을 사용해서 행복청이 발주, 관리하는 공사이다 보니 감독이 허술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