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구경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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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구경 간다
  • 이지상 가수, 작가
  • 승인 2023.07.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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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사진: 이지상
사진: 이지상

꽃 구경 간다. 속 편해서가 아니다. 나의 심사는 몹시 뒤틀려 있다. 순전히 좁쌀같이 사소한 일에도 톡톡 튀어버리는 편협함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토(NATO)회의에는 왜 가느냐 말이다. 아시다시피 나토는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서방의 군사 연합동맹인데 거기 가서 부산 엑스포 홍보한다고 핑계를 대는 게, 언 듯 보기에도 미국의 빵셔틀 노릇하고 온 게 뻔한데 외교 끝판왕이니 뭐니 설레발치는 게 영 마뜩잖은 것이다.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기자들의 노트북과 핸드폰도 모르게 27시간이나 걸려 달려간 우크라이나에서는 양국 간의 역시 철통같은 연대를 위해 죽자 살자 함께 싸우겠다는 연설까지 날리셨는데.

역시나 우리 대통령이 애정해 마지않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니 도대체 지켜낼 자유나 민주주의는 있는지 따져 묻고도 싶은 것이고, 나의 속내로는 세금 2000억 원 뚝 떼어 전쟁 한복판에 시원하게 뿌리면서도 러시아와는 세기의 적이 되어 한 판 시원하게 뜨겠다는 심사로만 보이니 누가 나를 좁쌀이라고 비아냥거려도 달리 할 말은 없는 것이고, 이 와중에 은밀한 주식과 부동산 기획가로 소문난 영부인께서는 리투아니아의 명품 가게를 순회하시며 이멜다 킴 박사라는 호칭까지 획득하셨으니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이 생색을 내는가를 또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꽃 구경 간다. 꽃이라도 보지 않으면 내 못난 속내를 들켜버릴까 봐 꽃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간다.

나랏님이 포악하면 온 나라에 도적이 들끓는다고 했던가.

사진: 이지상
사진: 이지상

전국에 비가 내렸다. 오송에서는 강둑이 터졌고 지하차도를 메운 물이 1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북 예천 에서는 산 사태 등으로 27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전국적으로 50여 명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뉴스에서는 2011년 이후 최대의 피해라는 속보를 내보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 국가 안보실이 통째로 나라를 비운 초유의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여지없이 피해 현장을 시찰하시는 장관님 의원님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 인터뷰하기에 열을 내셨다. 어느 시장님은 비 철철 내리는 주말에 골프 좀 치는 게 뭔 잘못이냐고 따지시고 어느 의원님은 재난지역 선포에 앞장서겠으니 박수 좀 쳐달라고 으쓱거린다.

대통령은 첫째도 국민 안전, 둘째도 국민 안전이라며 각 기관 모든 부서의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라고 말했다 한다. 작년 이맘때 침수 피해로 일가족 세 명이 숨진 신림동의 반지하 방 앞에 쭈그려 앉아서 했던 말과 거의 유사하다. 못난 의원이 사후 약방문을 내고 게으른 농부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지만 예방도 없고 후속 대책도 없이 재난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라의 국민인 나는 그저 꽃 구경이라도 하며 쓰린 속을 달래야 한다.

심판(Referee)은 과정에 간여하지 않는다. 경기중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만 판단하는 사람이다. 반칙을 범한 선수에게 경고나 퇴장을 명할 수 있지만 반칙을 예방할 수는 없다. 경기의 수준은 지각 있는 선수들의 몫에 의해 좌우된다. 국민은 이 정부를 심판만 봐 달라고 뽑지 않았다.

장마가 시작된 지 열흘이나 지난 뒤에야 장마가 오려는지 날이 습하다고 했던 작년 대통령의 언사나 지금 서울로 뛰어가도 호우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상기하면 그나마 심판이나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조차 의문이 들 지경이다.
그래서 꽃 구경 간다. 경기의 감독과 선수로 열심히 뛰어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달라고 뽑은 사람들이 내내 심판만 보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을 꽃에게라도 읍소하려고 간다.

아마도 이 각자도생의 나라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달라는.

사진: 이지상
사진: 이지상

꽃은 언제나 환상 속에 있었다. 실제의 아름다움보다 더 부풀려진 고귀한 가치를 일컬어 꽃이라 명명했고 나의 환상은 희망으로 둔갑하여 언제나 꽃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 꽃의 환상마저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나의 생도 시들어 가는 것이겠다. 그래서 꽃 구경 간다. 지난한 장마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아니면 절망하는 나를 숨기기 위해 간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연꽃 이파리는 생채기를 낼 것만큼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받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연못으로 쏟아냈다. 물은 한 방울도 다치지 않았다. 연잎도 어디 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 빗속에서도 활짝 피어 색깔을 드러낸 꽃봉오리도 있고 바라보고 있으면 금세 꽃망울 터트릴 것 같은 봉오리도 있다.

산 아래부터 연밭으로 깔리는 안개구름을 배경으로 고고한 연꽃을 시샘하듯 흔들어 대는 빗줄기를 담고 싶었다. 그러나 내 몸을 흠씬 젖게 했던 폭우도 사진으로 옮기기에 쉽지 않았다. 연잎 끄트머리에 맺힌 물방울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물방울은 당황하지 않았고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연 앞에 무릎 꿇은 성의를 기특하게 여겼는지 물방울은 떨어지지 않고 나의 무례한 촬영의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물방울에 나의 모습이 얕게 배어 나왔다. “물에 자신을 비추지 말라, 사람에게 비추라(不鏡於水 鏡於人)”는 묵자의 가르침을 오늘은 어겨도 괜찮았다. 꽃을 앞에 놓고 욕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기도나 할 일이었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 하나 없이 권력의 맛에 취해있는 이들에게 작은 물방울이라도 던져주고 싶었다.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는 것은 고사하고 수많은 물방울 중 어느 하나에도 자신이 비추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니면 좁쌀 같은 나의 안목을 멥쌀처럼 크게 만들어 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연잎 속에 담긴 땅에 물들지 않은 최초의 물처럼 나를 조금만 더 맑게 해달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긴 장마 속에서도 짙은 분홍 빛깔로 익어가는 연꽃처럼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고 다독이는 우리이기를 바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각자도생의 나라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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