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바로크 기행, 모디카와 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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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바로크 기행, 모디카와 노토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7.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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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과 젤라또를 따라가는 여행
모디카의 랜드마크 성 베드로 성당. 사진=정연일
모디카의 랜드마크 성 베드로 성당. 사진=정연일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 ⑪

라구사(Ragusa)를 떠나 노토(Noto)로 가는 길에 모디카(Modica)에 들른다. 모디카도 바로크 건축물이 아름답긴 하지만,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역사는 기원전 13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지만, 시칠리아를 찾는 많은 한국인 여행자와 관광객이 모디카를 찾는 이유는 초콜릿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지 않는다. 남미가 원산지인 카카오를 스페인 사람들이 들고 와서 남미와 기후가 비슷한 서아프리카에서 재배했다. 유명한 이탈리아의 커피도 마찬가지이다. 커피와 카카오 모두 대항해시대의 역사와 남미 아프리카의 식민 지배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물이다.

카카오와 커피 모두 유럽에서 생산되지는 않지만 유럽인들은 뛰어난 가공기술로 상품화 시켰다.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모디카의 초콜릿은 애초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해서 시칠리아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한때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서 들어왔다.

노토 구시가의 거리 풍경. 사진=정연일
노토 구시가의 거리 풍경. 사진=정연일

스페인 사람들은 중남미 아스텍에서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와 코코아 분쇄기술을 가지고 왔다. 초콜릿은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스페인 귀족들의 디저트였다. 모디카 초콜릿이 다른 초콜릿보다 특별한 이유는 가공방식 때문이다. 맷돌의 일종인 메타트(Metate)로 카카오를 수동 분쇄해서 조금 거칠지만 견고한 질감의 초콜릿이다.

수동분쇄 초콜릿은 단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카카오 알갱이로 인해 조금 거칠어 보인다. 카카오를 볶고 빻아 코코아 덩어리에 함유된 코코아 버터를 제거하지 않고 가열하여 액체로 만든 뒤에 설탕과 혼합하고, 계피, 바닐라, 생강, 칠리페퍼, 레몬 또는 오렌지 껍질을 첨가한다. 식물성 지방, 우유, 대두 레시틴 같은 이물질의 부재로 인해 질감은 조금 거칠지만 씹으면 잘 부서지면서도 맛과 풍미가 훌륭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뿐만 아니라 카카오를 맷돌(Metate)에 분쇄하는 기술까지 모두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들여왔다. 그뿐만 아니라 아스텍 사람들이 카카오에 넣지 않았던 설탕을 넣어 달콤한 고체 초콜릿을 만들었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 또한 유럽에서 나지 않는 것이다. 원산지는 서남아시아 인도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쿠바를 비롯한 중미 카리브해의 섬나라에 재배농장을 만들어 설탕을 만들었다.


모디카 유명세는 TV 때문

 

노토 대성당. 사진=정연일
노토 대성당. 사진=정연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모디카 초콜릿은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 바깥의 원재료로 시칠리아 지배 시절 만든 것이다. 쉽게 먹을 수 있는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에도 역사가 겹겹이 쌓여있다. 정작 시칠리아섬 모디카의 초콜릿이 이탈리아에서 유명해진 것은 세월이 한 참 흐른 1990년대 TV 방송 때문이었다.

모디카의 초콜릿 가게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자 오래된 곳은 1880년에 설립한 ‘Antica Dolceria Bonajuto’ 이다. 안티카(Antica)는 오래되었다는 뜻이고 돌체리아(Dolceria)는 달콤한 것을 파는 곳이라는 뜻이다. 보나후토(Bonajuto) 는 창업자의 성이다. 모디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성 베드로 성당 길 건너편 골목길 안에 있다.

매장의 한쪽에는 초콜릿의 역사와 제조 방식 그리고 도구를 전시해놨다. 고형 초콜릿을 판매 중이었지만, 중남미 아스텍 사람들처럼 마시는 액상 초콜릿과 시칠리아의 유명한 디저트 케이크인 카놀리를 주문했다. 고형은 사 들고 갈 수 있지만 액상은 매장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장 한쪽 벽에 카카오의 효능에 대해 써놓은 게 보인다. 건강에 신경을 쓸 나이라서 그런지 그 중 혈압강하가 눈에 들어온다.

모디카 초콜릿 가게 입구. 사진=정연일
모디카 초콜릿 가게 입구. 사진=정연일

식당 벽에 식재료의 효능에 관한 내용이 붙어있는 한국의 식당이 생각나서 쓴 웃음이 나왔다. 액상 초콜릿은 진했지만 많이 달지 않았고, 카놀리는 달콤했다. 카놀리는 팔레르모에서 탄생한 케이크다. 카놀리라는 이름은 관(pipe)에서 유래했다. 튜브 모양으로 도우를 만들고 그 속을 크림이나 치즈로 채운 모양이 마치 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카놀리라고 한다. 기분 탓인지 혈압이 조금 내리는 기분이었다.

오전이었는데도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시칠리아에 여행 온 이탈리아인을 비롯해 유럽인도 있었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이 더 많았다. 모디카의 초콜릿 매장을 찾는 사람 중에서 대항해시대의 역사와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식빈지배와 수탈, 그리고 커피 카카오 그리고 사탕수수 재배농장의 고된 노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 본다.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젤라또


모디카를 떠나 마지막 바로크 도시인 노토(Noto)로 향한다. 시칠리아섬의 바로크 건축 트라이앵글 세 도시 중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가장 많고 잘 보존되어있는 곳이다. 노토 역시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올라간다. 노토의 위치는 시칠리아섬의 남쪽에 있다. 노토의 어원이 남쪽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Notio에서 왔다.

매장 내부. 사진=정연일
매장 내부. 사진=정연일

옛 도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채 1km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도시는 크지 않지만 길게 뻗은 중심 보행가 좌우로 너무나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마치 갤러리처럼 늘어서 있다. 모디카에서 초콜릿을 먹었다면 노토에서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인 젤라또(Gelato)를 먹는다. 젤라또의 역사는 시칠리아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50대 중장년 세대에게 젤라또보다는 본젤라또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이유는, 80년대 한국의 모 유제품 제조 업체가 만든 아이스크림 TV 광고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드나들며 본(Buon)은 좋다라는 뜻이고, 젤라또(Gelato)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표명으로 쓰였던 본젤라또는 좋은, 훌륭한 아이스크림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젤라또 앞에 굳이 본을 붙이지 않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본젤라또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유를 찾아보니, 이탈리아에서 젤라또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스크림에는 제조 규격이 있다. 우유의 함유량은 70% 이상이어야 하고 공기 함유량은 35% 이하이어야 한다.


우유와 공기 함유량이 맛 결정

 

마시는 초콜릿과 시칠리아 디저트케이크 카놀리. 사진=정연일
마시는 초콜릿과 시칠리아 디저트케이크 카놀리. 사진=정연일

아이스크림은 공기를 함유하지 않으면 냉동할 수 없고, 시판하는 아이스크림의 공기 함유량은 보통 80% 이상이다. 젤라토는 이탈리아어로 얼었다는 뜻이지만, 보통의 아이스크림보다 약간 높은 온도에서 보존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먹는 젤라또의 맛과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여름에 얼음을 가공해서 먹으려는 인류의 노력은 있었다. 얼음은 매우 귀했으니 겨울이 아닌 계절에 얼음을 소비할 수 있었던 계층은 왕과 귀족을 비롯한 고위 지배계층이었다. 아이스크림의 원조는 고대 중국이고, 1200년대 중국을 여행한 마르코폴로가 레시피를 유럽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유럽에서는 1500년대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서 얼음을 갈아서 소금, 우유, 레몬, 벌꿀 등을 가미해 지금의 셔벗(Sorbet) 형태로 만들어 즐기다가,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느 디 메디치가 프랑스로 시집을 가며 프랑스에 전파했다. 하지만 지금 형태의 젤라토는 시칠리아에서 탄생했다. 1600년대 말에 시칠리아 출신인 프로코피오 쿠토가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망 지구에 카페를 열어 보급한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이 크게 히트했다.

1892년에 문을 연 카페 시칠리아. 사진=정연일
1892년에 문을 연 카페 시칠리아. 사진=정연일

프로코피오는 뜨거운 시칠리아섬에서 눈과 얼음을 볼 수 있는 고지대인 애트나 화산 출신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고안한 아이스크림 기계를 대량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게 개조해 파리에 카페를 열었다. 지금도 그 카페가 파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노토의 중심 거리에도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많지만, 유독 한 곳에만 사람들이 가득하다. 1892년에 문을 연 대성당 근처의 카페 시칠리아다. 아이스크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와 여러 종류의 디저트 케이크도 있다. 내부는 아름답고 우아한 이탈리아의 클래식한 카페 분위기이지만, 역시 그만큼 유명한 곳이라 찾는 사람도 많다.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다.

젤라또 가게. 사진=정연일
젤라또 가게. 사진=정연일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는데 그렇지 않아도 인파로 가득한 좁은 실내에 한국 단체 관광객이 몰려든다. 슬그머니 빠져나와 구글맵을 열고 젤라토를 검색하니, 평점은 더 높고 리뷰도 많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가서 젤라또를 사서, 대성당 앞 광장 그늘의 벤치에 앉으니 1차 대전 전사자 기념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이탈리아 왕국은 1차 대전에 참전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 대결했다. 어떤 이유와 명분이라도 전쟁은 쓰고 젤라또는 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어서 빨리 끝이 나기를 빌어본다.일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북유럽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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