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찰 청주 ‘보현사’ 흔적도 없이 통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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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 청주 ‘보현사’ 흔적도 없이 통째로 사라졌다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7.26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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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 1000여 평 상속받은 창건주 혜득 스님 여조카,..건물 철거소송 대법서 승소
태고종 측 작년 7월 속전속결 철거...지역선 몰라, 시민 특히 고시 수험생 황망

 

철거 전의 보현사 대웅전
철거 전의 보현사 대웅전

 

철거되고 있는 보현사
철거되고 있는 보현사

 

흔적도 없이 사라진 보현사 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보현사 터

 

사찰이 흔적도 없이 통째로 사라졌다면 믿어질까.

이런 기가 막힐 노릇이 청주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1년이 되도록 지역에서 이슈가 되지 않아 그 배경이 의아하다. 그래서인지 청주시나 한국관광공사 관광 정보란에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은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보현사(普賢寺).

보현사는 전통사찰(78)로 청주대 후문에서 우암산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올라가면 만났던 절이다. 많은 시민이 이곳을 거쳐 우암산을 등산하고 샘물과 화장실을 이용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곳이다.

특히 과거 청주대 등 학생들이 고시 공부를 위해 묵었던 요사채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지만 이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보현사는 어떤 사찰?

 

보현사는 청주시 청원구 우암산로 190-37(25번지) 1000여 평에 자리잡고 있었다.

1950년 혜득(속명 김천운) 스님께서 현재의 자리에 초암(草庵)을 짓고 기도처로 삼으며 불사를 시작했다. 그 후 법당 중건과정에서 700여 년 전 고려시대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개의 기왓장이 출토됐다.

고서에 의하면 와우산(우암산) 중턱에 몇 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보현사 바로 옆 관음사 절터에서는 계향지사(桂香之寺)라는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보현사 자리에는 응적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찰 이름을 창건주인 혜득 스님의 뜻에 따라 보현사라 지었지만, 불교계에서는 고찰(古刹)의 유래를 그대로 계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현사는 응적사의 후신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현사는 700년이 넘는 역사를 계승한 사찰로, 불자들은 물론 86만 청주시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혜득 스님은 신도가 늘어나자 1962년부터 요사채를 짓고 대웅전을 건립하는 등 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태고종 충북종무원 간부였던 원봉 스님이 1988년 혜득 후임 주지(2)로 부임하면서 종각과 관음전 불사, 3층 규모의 요사채 재건 등을 통해 보현사를 크게 일궜다.

 

아직도 걸려 있는 빛바랜 현수막.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직도 걸려 있는 빛바랜 현수막.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 주지 스님 욕심이

 

행사 때 500~600명의 신도가 모일 정도로 잘 나가던 보현사는 2013년 원봉 스님 후임으로 혜성 스님이 주지로 임명되며 불화의 씨가 됐다. 주지가 되기 전 혜성은 원봉 스님 아래에서 월급 받으면서 봉사 생활, 즉 독살이를 했다.

그러나 혜성은 스승인 원봉 스님과 갈등을 일으켰고, 주지 임명 2~3년 만에 원봉 스님이 절에서 나와 진천의 모 사찰에서 기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혜성 스님은 보현사를 태고종에서 한국 불교 법륜종으로 옮기는 최악의 사태를 불렀다. 혜성이 탈종도 하지 않고 임의로 소속 종단을 바꿨다는 게 태고종 측의 주장이다.

신도들은 보현사 재산을 탐낸 혜성이 법륜종으로 옮긴 후 주지로 눌러앉으려 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태고종 충북교구는 20195월 발표한 결의문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스승을 배반하고 승려의 본분을 망각한 현병호(혜성)의 패륜 행각과 태고종 전통사찰이며 종찰인 보현사를 부정하고 마치 개인 재산인 양 허위 주장하는 해종 행위와 보현사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한다

태고종은 재판을 통해 보현사를 다시 태고종 소유로 환원했다. 동시에 혜성 스님을 멸빈(滅擯) 조치했다. 멸빈은 승적 박탈이다.

이 일로 보현사는 중앙 종단에서 사고 사찰로 지정됐고 당시 충북종무원장인 도원 스님을 보현사 주지로 겸직 발령냈다.

 

왜 속전속결로 철거했나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식이 없는 창건주 혜득 스님은 1990년 열반하기 전 보현사 땅 소유권을 여조카에게 넘겼다. 땅은 조카가, 건물은 보현사가 소유하는 이중적 구조가 됐다.

보현사가 분란에 휩싸이자 땅 주인 여조카는 법원에 건물 철거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20227월 말까지 철거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었다.

승적이 박탈된 혜성(속명 현병호)은 일부 신도들과 함께 법원에 가 철거 찬성 시위를 벌이는 등 여조카 편에 선 행동을 했다. 태고종은 물론 타 종단 가입이 어려워진 상황을 인지한 그가 보현사 주지 복귀를 노려 땅 주인과 손잡고 철거소송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대법원에서 패소한 보현사는 기다렸다는 듯 속전속결 철거에 나섰다. 신도들도 주지인 도원 스님 등이 앞장서 자진 철거하는 바람에 아무 소리도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진 철거에 들어가자 여조카, 혜성 등이 현장에 나타나 진짜 철거할 줄 몰랐다. 그냥 (몸만 빠져) 나갈 줄 알았다는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법원은 원고 손을 들어주면서 철거하든지, 임대료를 받든지 하라고 했다.

당시 철거 현장에 있던 한 신도는 자진 철거에 나선 태고종 측에 대해 임대 협상을 통해 사찰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감정적으로 나와 전통사찰을 없애고 신도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불과 철거 1년 전에는 1억 원을 들여 경내에 CCTV를 설치해 놓고서 철거라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을 순식간에 해치웠다고 비판했다.

신도들은 특히 사찰 경내에 있는 각종 동산들의 문화·재산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철거과정에서 나온 불상, 석탑, 원목 건물 자재, 나무, 심지어 기왓장까지 다른 곳으로 옮겼다. 태고종이 다른 곳에 사찰을 지으려고 철거를 속전속결로 해치운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보현사 진입로.
보현사 진입로.

 

고시 공부 수험생들 황망

 

보현사 건물이 사라진 터 1000여 평은 종교 부지지만 맹지(盲地. 청주대 후문에서 시작된 진입로 300m는 청석학원 설립자 종손인 김윤배 청주대 총장 소유다. 진입로 옆에는 설립자 사당이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땅이다.

그동안 보현사라는 사찰, 즉 공익성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진입로 사용을 허용했지만 사찰이 사라졌으니 앞으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맹지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철거소송을 벌여 사찰을 사라지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철거소송에서 이기면 태고종 측에서 순순히 손을 떼고 나갈 것이고, 그런 후에 보현사 소유라는 그림을 그렸을 추론이 가능하다.

뒤늦은 보현사 철거 소식에 황당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특히 요사채에서 밤새워 가며 고시 공부했던 학생들이 그렇다.

지금은 대부분 일선에서 은퇴해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요사채는 이들에게 영원한 추억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고시 공부했던 한범덕 전 청주시장은 며칠 전 보현사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현장을 갔는데 망연자실했다. 같이 공부했던 후배들과 하룻밤 같이 자며 옛 추억을 되돌아보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김 총장 소유 땅에 지어진 6평짜리 쉼터가 유일하다. 화장실 터(지금은 멸실)에 올려 지은 이 건물 역시 작년 철거 위기에 있었으나 한 신도가 막아냈다. 그 이후 태고종 충북종무원은 한 스님을 내세워 이 건물에 대해 철거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신도 곽종민(서일대 교수) 씨는 어느 한날 없어진 보현사 주지 임명장을 들고 한 스님이 나타나 철거요구를 하더라태고종 부지도 아니고 내 돈 들여 지은 쉼터 건물에 대해 철거소송을 내 답답하다고 말했다.

 

태고종이 철거를 요구하는 유일하게 남은 쉼터
태고종이 철거를 요구하는 유일하게 남은 쉼터

 

관광안내엔 아직도 보현사가

 

보현사가 없어진 지 1년이 됐다. 희한하게도 언론 보도도 전혀 없었다. 이러니 통째로 없어진 기가 막힌 현장이 지역에 알려질 리 없다.

한국관광공사와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정보란에도 보현사는 현존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보현사 개요, 이용안내, 지도가 나온다. 네이버는 이를 안내하면서 20235월 기준으로 작성된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구석구석여행지 소개 정보라면서 이후 변경된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보고도 아무도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청주시 디지털 청주문화대전에도 보현사는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시민들은 전통사찰 보존에 적극 나서기는커녕 철거 1년이 된 불교계 대형참사를 관계 기관에서 전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당국의 안일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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