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어머니 ‘톈산’의 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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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어머니 ‘톈산’의 품속으로
  • 김상욱 전문기자
  • 승인 2023.08.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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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7000m 설산들과 산봉우리의 위의 샘 ‘침불락’
카자흐의 성산 한텡그리는 ‘크다’와 ‘단군’의 합성어

신실크로드 기행-1

톈산산맥의 고봉들은 건조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만년설을 간직하면서 여름이면 주변 지역으로 생명의 물을 녹여 내림으로써 카라반의 목을 적셔주었다.
톈산산맥의 고봉들은 건조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만년설을 간직하면서 여름이면 주변 지역으로 생명의 물을 녹여 내림으로써 카라반의 목을 적셔주었다. 사진=김상욱 전문기자

유목민들은 초지를 찾아 수평과 수직 이동을 해왔다. 계절에 따라 수평 이동을 하는 대표적인 민족은 몽골 고원을 무대로 가축을 키우는 몽골인이고, 수직 이동을 하며 유목을 하는 이들로는 톈산산맥의 해발 4000~5000m까지 오르내리면서 유목하는 민족으로는 카자흐, 키르기즈 인들을 꼽을 수 있다.

톈산산맥의 고봉들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만년설을 간직하면서 여름이면 주변 지역으로 생명의 물을 녹여 내림으로써 실크로드 카라반의 목을 적셔주었다. 실로, 톈산산맥은 중앙아시아 한가운데 우뚝 솟아올라 동서양을 나누는 경계선이자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동서양을 연결하던 실크로드를 탄생시킨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줄기는 계곡을 따라 강이 되어 중앙아시아 초원을 적시면서 말을 살찌우고 양과 소를 키워낸 것이다. 그래서 톈산산맥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본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실크로드 세 번째 기행은 바로 이 톈산산맥의 품속으로 걸어서 들어가 보는 톈산산맥 트레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톈산산맥은 경계선이자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동서양을 연결하던 실크로드를 탄생시킨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
톈산산맥은 경계선이자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동서양을 연결하던 실크로드를 탄생시킨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

길을 나서기에 앞서 구글 맵에 들어가서 위성 보기를 누른 후 중앙아시아를 보면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해발 5000~7000m급의 고봉들이 있는 톈산산맥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에 연해 있는 산맥은 그 서쪽 끝자락이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준령의 연속이다. 최고봉은 해발 7439m의 포베다봉(승리봉)이고 두 번째가 예로부터 숭배의 대상이었던 한텡그리(7010m)봉이다.

특히 한텡그리에 대해서는 그 어원이 우리말로 크다는 의미의 한, 그리고 제사장인 단군을 뜻하는 당굴이어서 우리 민족의 발원지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곳은 만년설로 덮여 있고 호수가 많아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톈산산맥은 알프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서 여름이 되면 유럽 여행자나 트레커들이 즐겨 찾고 있고 최근에는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카자흐의 성산 한텡그리


백두산이 한민족의 성산이듯이 한텡그리는 카자흐 민족의 성산이다. 그래서 한 텡그리는 카자흐어로 ()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항공사인 에어 아스타나의 사보 제호가 한텡그리일 정도로 이 산은 카자흐인의 정신적 고향이다.

톈산에 깃들어 사는 동물 중에는 야크가 있다.
톈산에 깃들어 사는 동물 중에는 야크가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위치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이 접경한 곳이어서 북쪽 경사면은 카자흐스탄, 남쪽은 키르기스스탄에 있다. 그래서 한텡그리의 등정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모두 가능하다.

카자흐스탄 쪽 베이스캠프는 알마티에서 약 280km 떨어진 곳에 있는 해발 2200m 고지에 있는데, 알마티에서 차량으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다만 워낙 고지대이고 여름이 짧아 매년 베이스캠프는 7~9월까지만 개장한다.

한텡그리는 베이스캠프로부터 약 95km 떨어진 곳에 있어 도보 등정을 하려면 사흘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들은 헬리콥터로 해발 4000m의 북 이닐첵 빙하까지 이동하여 거기서부터 등정을 시작한다. 두 곳을 연결하는 수송 수단인 헬리콥터는 20인승의 키르기스스탄 공군 소속 군용기(MI-8)이다.

텐산산맥 속의 침불락. 알마티 시민들의 사계절 휴식처이기도 한 침불락(러시아어 발음)은 카자흐어로 ‘쉼(산봉우리)’과 ‘불락(샘, 근원)’의 합성어로 ‘산봉우리에 있는 샘’이라는 뜻이다.
텐산산맥 속의 침불락. 알마티 시민들의 사계절 휴식처이기도 한 침불락(러시아어 발음)은 카자흐어로 ‘쉼(산봉우리)’과 ‘불락(샘, 근원)’의 합성어로 ‘산봉우리에 있는 샘’이라는 뜻이다.

카자흐스탄 영토인 베이스캠프에서 키르기스 군용기가 떠서 양국 공동영토인 한텡그리까지 알피니스트들을 수송하는 것이니 한텡그리는 두 이웃 국가 간 국제협력에도 한몫하는 셈이다.

해발 4000m에 있는 제2 베이스캠프는 약 300m 두께의 빙하 위에 있고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곳이다. 여름에는 표면의 눈이 녹아 암석층이 나타나서 캠프로서 제 역할이 가능하지만 9월 말이면 다시 결빙되어 동면에 들어가는 곳이다.

일반인들도 제2 베이스캠프까지 헬리콥터로 갈 수 있는데 기후의 변화가 심한 곳이라 운이 좋아야 예정대로 다녀올 수 있다. 우리나라 산악인들도 한 텡그리에 1년에 몇 차례씩 도전하고 있고 1996, 2004년에는 조난사고가 있었다.

에베레스트보다는 훨씬 낮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손때가 덜 묻은 한텡그리는 에베레스트 원정을 앞두고 마지막 실전 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동시에 트레킹을 즐기는 일반인들의 휴식 공간으로써 우리와도 친숙해지고 있다.


톄산 트레킹의 축소판 침불락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톈산산맥의 웅장한 모습을 맛보고 싶다면 침불락으로 가 보길 권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다양한 톈산산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알마티 시민들의 사계절 휴식처이기도 한 침불락(러시아어 발음)은 카자흐어로 (산봉우리)’불락(, 근원)’의 합성어로 산봉우리에 있는 샘이라는 뜻이다. 침불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알마티 도심에서 톈산산맥을 향해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메데우에서 출발하는 곤돌라를 이용하면 된다.

침불락에는 메데우(해발 1600m)에서 출발해서 두 번 만 갈아타면 해발 3200m의 ‘탈가르 패스’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곤돌라를 운행하고 있다.
침불락에는 메데우(해발 1600m)에서 출발해서 두 번 만 갈아타면 해발 3200m의 ‘탈가르 패스’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곤돌라를 운행하고 있다.

메데우는 지주, 기둥이라는 카자흐어인데,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빙상경기장이 있고, 1980년대 우리나라의 배기태 선수가 금메달을 딴 곳이다. 도심에서 메데우로 가는 길가에는 우리나라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대전차 장애물과 같은 구조물을 볼 수 있다. 겨우내 톈산산맥에 내린 눈이 봄과 여름에 녹아내려 일어나는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의 끝판왕이 바로 메데우 댐인데, 1970년대 건설부 차관을 지낸 고려인 허가이 알렉세이가 건설했다고 한다.

그는 카자흐스탄 최대의 댐 공사에 특이한 공법을 사용하여 세계 각국의 토목 공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해발 2000m 산속에 건설해야 하므로 건설자재를 실은 공사 차량의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또 진흙이 흘러내리는 악조건에서 공사를 강행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 그는 협곡 좌우에 있는 높은 산을 폭파해 산에서 쏟아져 내린 흙과 돌로 100m 높이의 댐을 축조한 공법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된 공법을 보기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 유네스코에서 견학을 오고 모스크바에서 전문가들이 찾아오는 등 한동안 허가이 알렉세이의 명성이 드높아진 적이 있다고 전해지며 이 공로로 허가이는 국가 공로훈장을 받았다.

침불락은 본래 스키장으로 개발된 지역으로 1940년대 말 영국인들이 해발 2200m에 있는 침불락이 스키장으로서 적합한 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했고, 소련 시기인 1954년에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스키장을 개장했다. 침불락 스키장 주변에는 숙박 시설과 식당 및 사우나 등을 갖춘 16개의 코티지와 108개 객실과 식당, 가게 및 나이트클럽을 갖춘 호텔이 영업 중에 있다.

2011년 알마티 아스타나 동계 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침불락과 메데우는 더욱 현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메데우(해발 1600m)에서 출발해서 두 번 만 갈아타면 해발 3200m탈가르 패스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곤돌라를 운행하고 있다.

해발 3200m에서 빙하를 보면서 톈산의 정기를 받고 내려올 때는 곤돌라 2단계(2850m)에 오픈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 볼 것을 권한다. 박스형 곤돌라와는 달리 깨끗한 톈산의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스키어용 오픈 리프트는 발아래 닿을 듯한 침엽수림 사이를 통과하면서 곳곳에 남이 있는 잔설 위를 지나간다.

다음 호에 -2가 이어집니다.

●김상욱

알마티국립대 조선어과 교수로 카자흐스탄 땅을 밟은 지 29년. 한글 동포신문 주필이고 연합뉴스를 통해 중앙아시아 5개국 뉴스를 전하고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에 여러 차례 출연했고 KBS ‘1박2일’에서도 고려인 강제이주에 관해 이야기했다. 부부사진전 ‘카자흐스탄’을 열었고, 사진집 <카자흐스탄>과 공저로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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