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수호성인 시라쿠사의 산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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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수호성인 시라쿠사의 산타 루치아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8.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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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한 ‘신을 평생 섬기겠다’는 약속 지키려 순교
시라쿠사 대성당 정면 파사드. 우측 지붕 빨간 사각형 안이 산타 루치아. 사진=정연일
시라쿠사 대성당 정면 파사드. 우측 지붕 빨간 사각형 안이 산타 루치아. 사진=정연일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⑬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 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한국의 중 장년 세대라면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이 나폴리 민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타 루치아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애창곡이기도 해서, 이탈리아 여행 중에는 북쪽의 베니스부터 남쪽의 나폴리까지, 이탈리아 어디에서나 자주 들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타 루치아가 누구인지, 왜 이 노래가 나폴리에서 나왔고 유명해졌는지 아는 이는 적다.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 민요이다. 민요라는 말은 작곡 작사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의 입에서 불렀던 노래라는 뜻이다. 이를 이탈리아의 음악가이자 언론 출판인인 테오도로 코트라우(Teodoro Cottrau)가 채보하고, 거친 나폴리어 가사를 부드러운 이탈리아어 가사로 번역해 1850년에 악보를 출간한다.

한국어 번안 가사는 이탈리아어 버전을 더 순화시켰다. 산타 루치아가 유명해지게 된 것엔 나폴리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큰 성공을 거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공이 크다. 카루소는 고향 나폴리의 민요인 산타 루치아를 녹음했다. 유투브에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민요가 되었다.

시라쿠사 대성당 측면의 그리스 신전 터의 흔적. 사진=정연일
시라쿠사 대성당 측면의 그리스 신전 터의 흔적. 사진=정연일

산타 루치아의 루치아는 실존 인물이다. 산타(Santa)는 성스러운 이란 뜻이다. 라틴어 ‘Sancta’에서 나왔다. 루치아는 영어의 루시(Lucy)와 같은 이름이다. 역시 어원은 라틴어이다. 빛을 뜻하는 ‘Lux’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름의 뜻만 풀이하자면, 산타 루치아는 성스러운 빛이라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세인트 루시(St. Lucy)라고 부른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인물이다. 기독교인에 대한 마지막 박해이자 가장 심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


어머니가 정한 혼약 때문에


산타 루치아의 순교에는 엇비슷한 이야기가 몇 가지 조금 다르게 전해져 내려온다. 시라쿠사에서 태어난 루치아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시라쿠사에서 멀지 않은 카타니아에는 순교자 아가타의 영험한 무덤이 있었다. 성 아가타의 무덤은 기도와 소원이 잘 이뤄지는 곳으로 유명했다.

시라쿠사 대성당의 실내 - 왼쪽 벽면에 그리스 신전이  기둥이 보인다
시라쿠사 대성당의 실내 - 왼쪽 벽면에 그리스 신전이 기둥이 보인다

루치아는 성 아가타의 무덤을 찾아가, 어머니의 병이 낫게 해주면 일생을 하느님에게 바치겠다고 기도했는데, 기적처럼 그녀의 어머니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루치아에게는 부유한 비()기독교 집안의 약혼자가 있었다. 아버지 없는 편모슬하 가정에서 가난했던 형편이었기에, 루치아의 어머니는 일찍 그녀의 약혼을 정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완쾌 후 루치아는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하느님을 평생 섬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취소한다. 결혼을 취소당한 약혼자는 루치아를 시라쿠사 총독에게 고발하고, 총독은 루치아의 기독교 신앙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으나 루치아는 거부했다.

마침내 총독은 사형을 명하고, 형장으로 소 떼와 루시아의 몸을 줄로 묶어 끌고 가려고 했으나 소 떼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장작을 쌓아 화형을 시키려고 했으나, 역시 불이 붙지 않아서 마침내 루치아는 목에 칼을 찔려서 순교한다. 그래서 산타 루치아의 동상이나 조각은 목에 긴 칼이 꽃혀 있다.

산타 루치아의 순교에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부한 루치아를 시라쿠사의 총독은 두 눈을 뽑아 버리고 매음굴에 던져 버리라고 했다는 이야기와 결혼 취소를 못 받아들이는 약혼자를 단념시키기 위해 스스로 눈알을 뽑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타 루치아 조형상. 목의 칼은 순교를, 손의 종려나무 가지는 악에 대한 승리를, 접시의 안구는 순교의 방식을 상징한다.
산타 루치아 조형상. 목의 칼은 순교를, 손의 종려나무 가지는 악에 대한 승리를, 접시의 안구는 순교의 방식을 상징한다.

산타 루치아의 조각이나 동상을 보면, 목에 칼이 꽂혀 있고 한 손에는 안구 2개가 올려진 접시나 그릇을, 다른 손에는 악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지금도 산타 루치아의 축일 (1213) 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눈알 모양 빵을 먹는다. 루치아는 빛과 눈의 수호성자라서 이탈리아의 안과 병원에 가면 루치아의 그림이나 조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겨울이 길고 겨울밤도 긴 북유럽에서도 산타 루치아 축일을 기념한다. 루치아 축일은 밤이 가장 긴 동지 무렵이라, 어둠이 짧아지고 빛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북유럽 사람들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리라.

나폴리의 수호성자는 성 젠나로 이지만, 나폴리에서 민요 산타 루치아가 탄생하게 된 이유도 앞서 말했듯이 루치아의 이름이 라틴어 빛(Lux)에서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바다에서 삶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폭풍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타 루치아 신앙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중국인들이 이주한 지역의 마조(媽祖) 신앙과 너무나 흡사하다. 마조 신앙은 불교의 관세음보살과 중국 푸젠(福建)성의 민간신앙이 합쳐 탄생했다. 중국 동부 해안지역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화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마조를 모시는 마조 신전이 있다. 이탈리아의 산타 루치아와 중국의 마조 모두 뱃사람의 수호신이자 구원자이다.


모스크와 성당을 거듭한 역사


시라쿠사 대성당은 2500여 년 전 그리스 신전의 터 위에, 1300여 년 전에 세워졌다. 아테네 신전의 터뿐만 아니라 남은 기둥도 그대로 품었다. 아스텍의 신전을 부수고 지은 멕시코의 멕시코 시티 대성당이나, 잉카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지은 페루 쿠스코 대성당보다 포용성이 느껴진다.

수호성인 산타 루치아가 등장하는  바다와 배 그림
수호성인 산타 루치아가 등장하는 바다와 배 그림

북아프리카 아랍 이슬람 세력의 침공 후 시라쿠사 대성당은 모스크로 개조되었다가. 바이킹 노르만 왕조의 시칠리아 정복 이후 다시 성당으로 바뀌었다. 이후 1693년 시칠리아를 강타한 대지진에 무너졌다가 재건, 복구했기에, 하나의 성당에 1000년 이상의 역사와 시대별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시칠리아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수많은 성당을 봤음에도, 지금까지 이런 성당은 못 봤다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시라쿠사 대성당에 들어서면, 시칠리아섬의 아랍 노르만 양식의 실내가 펼쳐진다. 장엄한 기둥을 따라 중앙 제단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별실에 산타 루치아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산타 루치아의 순교 후 그녀의 유해와 유물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갔다가, 베니스와 프랑스를 떠돌다가 시칠리아 시라쿠사로 다시 돌아왔다.

베니스의 산 제레미아 성당에는 아직 산타 루치아의 유물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가톨릭 국가의 문화유산의 절반 이상은 기독교 유산이기에, 가톨릭을 이해하지 못하면 보고도 알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자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가톨릭에 관심을 가지는 게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시라쿠사 대성당을 나오면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레나토레가 만든 시칠리아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말레나에 등장했던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우측 편에는 산타루치아 알라 바디아 성당이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천재 화가이자 다혈질의 사고뭉치였던 카라바조가 그린 산타루치아의 매장사본이 세워져 있다.

진본은 시라쿠사 대성당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의 산타 루치아 알 세폴크로 성당에 있다. 로마에서 살인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카라바조는 나폴리와 몰타를 거쳐 시칠리아 시라쿠사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 카라바조는 도피하는 곳마다 대작을 남겼다. 나폴리와 몰타의 성당, 그리고 시라쿠사의 성당에도 카라바조의 걸작이 있다. 시라쿠사에 간다면 반드시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 중 하나다.

과학의 시대에 가톨릭과 정교회를 포함한 기독교의 성인 성자의 기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믿기란 어렵다. 의심하거나 회의하는 것은 이성이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이다. 개인의 선택이자,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산타 루치아가 이성과 합리와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천지 사방 온통 새까만 어두움에 둘러싸인 듯한 절망감에 빠져 있다면, 먹구름 속 한구석에서 한 줄기 빛처럼 산타 루치아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시라쿠사를 벗어나 카타니아로 이동하면서, 유튜브에서 엔리코 카루소가 부른 산타 루치아를 찾아서 들으며 따라 흥얼거려 본다. 정들은 나라에 행복아 길어라,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북유럽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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