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不正義)로 통합된 정파(政派)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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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不正義)로 통합된 정파(政派)의 시대
  • 주현진 인문학자,한남대 연구교수
  • 승인 2023.08.10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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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참사가 남긴 사회적 공분

7월 장마는 우리에게 잔혹하였고, 글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자연현상으로 시작되었지만, 인명 피해 사건으로 귀결된 장마였다. 그리고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례처럼 닥쳐오는 회오리가 또다시 우리의 마음을 때렸고,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정부, 지방자치단체, 관련 행정당국의 미흡한 대비와 사태수습으로 인해 빚어진 사태라고 대중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천후에 대비하였더라면”, “신속한 통제가 있었다면”, “소통을 잘하였더라면이라는 통탄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서 이미 체험된 공분과 통탄이다. 대중의 비통한 목소리가 국가를 책임진 위정자의 달팽이관에 닿으리란 기대로 발화된 것이겠지만, 실현된 것 같지는 않다. 현재 국정 최고책임자 대통령 입에선 한 마디의 사과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복어 배처럼 불룩한 볼의 두꺼운 살갗 아래 공간은 넉넉해서 많은 구절을 담아낼 수 있는 임에도 얇은 입술을 비틀고 나온 이 없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저잣거리 음식 앞에선 잘 벌어진 입이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87년 민주화 이후로 겪어보지 못한 위정자의 초상이다.

그래서인가. 대중은 우왕좌왕하다가 비통한 심정을 지우고, 체념한 듯 운명론자가 된다. “천재지변 앞에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나”, “자연재해는 인류의 숙명이다”. 고대 신화의 시간에서 모이라이(Moirai)’로 불린 운명의 세 여신이 21세기 인류로 환생한 것처럼, 대중은 각자 모이라이에 속하는 여신 클로토(Clotho)가 되어 운명의 물레에서 실을 잣는다. 무용한 물레 앞에 앉아, 사회적 불행에 비통한 심정을 삭이는 우리 모습이 구태하다 못해 비루하다.

지난 정권에선 의사, 대학생, 청년, 여성주의자, 노동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집단화된 정체성이 서로 경쟁하듯 대통령에게 악다구니를 쉽게 퍼붓던 장면이 떠오른다. 모두 한결같이 정의를 외쳤고, 위정자에게 공정과 평등의 값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현재 우리의 이성과 지각은 마비되었는가. 현재의 위정자를 옹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지지하는 정치인의 침묵에 동조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침묵을 지킨다.

작년 이태원 참사 사망자 수는 159, 7월 장마로 인한 홍수에 생명을 놓친 사람들은 46. 먼 대륙에서 벌어지는 내전(內戰)에서나 있을 법한 사망률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현() 대통령을 칭송하는 추상적인 문구가 박힌 현수막이 신탄진 네거리에서 나부낀다. 보수적 정치집단의 표명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정치적 표명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답게 시민의 정치참여는 당연한 권리이다. 달리 말해서, 정치참여는 민주주의 시민에게 부여된 불변적 지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민 지위에 합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현재 국내정치를 바라보면, 민주주의 시민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보다는 기원전 1000여 년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난 예언자 조로아스터(Zarathushtra)를 추앙하는 21세기적인 이신교(二神敎) 신봉자 무리만이 관찰된다.

시민의 사회적 실존과 참여가 구현되는 장()으로서의 정치가 아닌 선신(善神)과 악신(惡神) 간 대결의 장으로 정치를 이해하는 무리이다. 정치는 선악의 대결이 아니다. 또한, 사람을 맹신하는 신앙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수장이 국가적 질서에 혼돈을 초래할 만큼 무능해도, 또한 개인적 야욕을 위해 사회공동체 따위 내동댕이치는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를 추종하며 믿습니다만을 외치는 대중에게 과연 민주주의 시민의 지위가 가치 있을까.

보수(保守)의 목표가 우두머리가 아니듯이, 진보의 목표 또한 우두머리가 아니며, 정치는 사람과 진영에 충성하는 추종 행위가 아니다. 무능하고 불의한 우두머리를 지키려고 사회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무리는 조폭이지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정치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이름으로 양극화되어있지만, 실제 어느 정당도 자신의 이름에 맞는 정체성을 증명한 적이 없다.

다만, 그들끼리는 부정의(不正義)하게 조화롭다. 국가 이익과 전통을 보수하는 정당도 없고,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사회적 진보에 힘을 쏟는 정당도 없다. 무능한 대통령을 감싸느라 여념 없는 정당이 국민에게 힘이 되어줄 리 만무하고, 개인적인 비리로 기소된 당대표를 비판한 당원을 징계하는 정당이 민주적일 리 없다.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학교 연구교수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학교 연구교수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 시민임을 자각할 때이다. 전제군주제의 백성이, 조로아스터교의 광신자가 입었던 구태를 벗어던져라. 부정의로 통합된 정파의 시대를 가르고 나아가야 한다. 지금으로선, 여러 매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신교적 믿음을 떨쳐낸 국민의 절반이 정치적 혼탁을 인지하고, 우두머리에 집착하는 두 정파(政派)를 거부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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