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착한 이들의 인프라 개선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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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착한 이들의 인프라 개선도 중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08.10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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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년 전 정착한 고려인 장류보위 씨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통역 및 사무 맡아
​​​​​​​2003년 취업 위해 한국행, ‘고려인’공동체 지원

코리아 모셔오기
청주 정착한 고려인들


고려인 장류보위(50)씨가 한국에 온 것은 20035월이었다. 그는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의 봉제공장에 취업해 통역 및 사무 관련 일을 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공장이 망했고, 그는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 처음엔 ‘3개월비자를 받아 동두천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남자를 만났고, 그를 따라 2004년부터 청주에 정착했다. 이후 청주에서 20년째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청주시에서 주는 외국인 명예 이통장에 임명돼 위촉장을 받기도 했다.

 

장류보위씨는 고려인 2세로 20년 전 청주에 정착했다.
장류보위씨는 고려인 2세로 20년 전 청주에 정착했다.

 

고려인 2세의 운명

 

장 씨는 2007년 귀화했다.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배웠던 이력 때문에 그는 전문 통역일을 할 수 있었다. 2009년부터 청주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다문화강사로 일하다 2011년부터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통역 및 전체적인 사무일을 맡고 있다. 이주민노동인권센터는 2003년 개소해 노동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이주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장류보위씨는 지금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부장직책을 맡고 있다.
 

한국어와 러시아에 능통한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어와 러시아에 능통한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장 씨는 고려인 2세다. 1945815일 이전에 출생한 이가 1세대로 분류된다. 장류보위 고려인 가족의 이주사는 다음과 같다.

장 씨의 할아버지는 1890년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너가 살다가 1937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함께 사할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한인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주는 교사가 됐다. 할아버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장 씨의 아버지 장인노켄치씨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년간 해군 군복무를 하고 우수리스크에 살게 된다. 이때 아내 정 나제즈다와 결혼을 하고 슬하에 아들 1, 2명을 낳았다.

첫 아들은 우수리스크에서, 둘째 딸(장류보위)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셋째 딸은 카자흐스탄에서 출생했다. 장 씨의 부모님들은 10년간 중국 훈춘에 살고 있으면서 청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때는 한국에 머물렀다.

장 씨의 오빠는 두 아들과 함께 10년 전 청주에 정착해 살고 있고, 여동생은 연해주에서 경찰공무원으로 일한다.

장 씨는 2003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곳 파르티잔스크에서 생활했다. 당시 장 씨의 아버지는 모스크바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로스엔젤레스에서 온 미국 선교사와 함께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어교실도 개설해서 그는 이 때 한국어 공부를 한다.

 

처음 왔을 때 고려인은 20여명

 

그는 고려인들 대다수가 한국에 왔다 간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20여 년 전엔 고려인들이 청주에 많지 않았다. 20명 안팎이었다.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던 시기라 서로 연락할 길이 없었다. 지금은 공동체 형성이 잘 돼 있다. 현재 청주에만 고려인동포네트워크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인원이 1200여명이다.” 그는 고려인연합회 청주 지부장을 맡고 있다.

최근 제천시가 저출산 및 인구소멸 문제의 대안으로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정책 및 도내 정착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그는 한국에 오지 않는 고려인들을 데려와 정착하는 시도도 해야 하지만 먼저는 이곳에 온 이들의 다양한 생활여건을 개선시켜 주는 게 필요하다. 비자 문제도 현실적으로 적용해 일하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막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고려인들에겐 현재 이른바 동포비자인 ‘H2비자‘F4비자가 나온다. H2비자는 방문취업비자로 중국, 즉 재외공관에서 비자를 신청해 심사를 받는다. H2비자 대상자는 중국이나 구소련지역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외국국적동포로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자 또는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 일방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다. 일반적인 외국인 노동자 비자는 ‘E9비자와 최대 3개월 관광비자인 ‘C3비자가 있다. 동포비자는 일반 외국인 노동자 비자에 비해 혜택이 많다.

가령 고려인과 결혼한 남편이나 아내는 ‘F1’비자를 받는 데 일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다. 일을 하다 들켜 벌금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부분을 유연하게 개선할 여지가 있다. 또 일자리와 숙소 문제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데려올 경우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인프라도 마련돼야 한다.”

그는 지난 20년 전과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을 체감한다. “큰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소위 다문화 가정이 초창기였기 때문에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이는 결국 상처를 입었고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반면 5년 후 둘째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땐 오히려 다문화 가정이 보편화 된 시기라 맘 편안히 학교를 다녔다. 아이 성격차도 있겠지만 다문화 가정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고려인이지만 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아직도 한국 문화에 적응 안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삶은 대체적으로 만족한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이런 부분이 처음엔 많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5년 전 한국의 활동가들과 함께 러시아를 다시 가봤는데 수십년이 지나도 모든 게 그대로인 듯했다. 그 때 한국행을 택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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