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보리 대처, 국가주의 극단 전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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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보리 대처, 국가주의 극단 전체주의
  • 변상욱 전문기자
  • 승인 2023.08.17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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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4 “국가가 K팝 소유한다는 ‘끔찍한’ 전체주의”
AFP통신 “도대체 누가 잼버리 콘서트로 이익 얻는가”
우리 사회 오랫동안 국가주의와 국가론에 젖어 온 탓
8월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외신들은 ‘국가가 K팝을 소유한다는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상’이라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8월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외신들은 ‘국가가 K팝을 소유한다는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상’이라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잼버리 사태를 전한 언론 보도 중 가장 눈에 띈 기사는 단연코 경향신문과 SBS<공무원·공공기관에 민간기업까지 잼버리 총동원령’···“국가주의적 행태”>(89). <새만금 잼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이비 국가주의’>(813) 이다.

정부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에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공무원·기업·연예인 등을 가리지 않고 전시 군사작전식 동원을 한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국가주의적 사고의 발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향신문)

정부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국무총리가 긴급하게 현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대통령은 관광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냉방버스를 내려보내라는 지시사항을 직접 하달시민사회와 민간 영역에 급작스럽게 손을 벌리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진정성 있게 인정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군인뿐 아니라 지역 소방대원과 공무원들까지 현장에 긴급 배치.” (SBS)

두 언론 모두 국가주의를 제목에 인용했다. 그런데 잼버리 사태와 그 후속 조치를 전하는 외신이 사용한 용어는 다르다.

프랑스24

<‘K팝이 구출? 한국, 스카우트 잼버리 폐막 콘서트에 올인’>

정부가 재앙이 된 행사를 수습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비상 자금을 투입했지만, K팝 팬들로부터 공공 부문 직원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국가가 K팝을 소유한다는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상이라고 지적한 것도 덧붙였다.”

AFP통신

아이돌 팬은 그들이 좋아하는 그룹이 촉박한 일정에서 무대로 끌려나간 것에 눈물을 흘렸으며 축구팬들은 비싼 잔디가 훼손돼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누가 잼버리 콘서트로 이익을 얻는가라며 엑스(구 트위터)에 올라온 글로 기사 마무리.


국가주의의 극단 전체주의


우리 언론에 등장한 국가주의와 외신에 등장한 전체주의는 무엇이 다른 걸까?

<국가주의(Statism)는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 권력이 경제나 사회 정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조>로 정의한다. 국가주의에서 가장 정도가 약한 형태는 최소정부주의(minarchism)’라 하고, 국가주의가 극단에 이른 것을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외신들은 ‘국가주의’라고 보도한 국내언론보다 강한 ‘전체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외신들은 ‘국가주의’라고 보도한 국내언론보다 강한 ‘전체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 언론이 국가주의라 지적한 것은 독재정권, 군사정권의 국가 강제동원 경험에 비추어 그 정도를 약하게 평가한 듯 여겨진다. 외신들이 더 강한 전체주의라 지적한 것은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 훨씬 강도 높은 비판을 인용했다 볼 수 있다.

K팝 콘서트로 방송사의 정규편성이 즉시 중단되고, 방송제작팀은 가수 섭외와 콘서트 준비에 투입되었다. 축구 리그 진행이 파행을 겪고 특정구단의 잔디구장이 훼손되었다. 유럽 어느 국가의 축구 리그 경기나 공영방송 정규방송이 재난이나 국가 긴급상황도 아닌데 정부에 의해 일단 중단되고 구장을 콘서트에 징발당하는 일을 유럽언론은 상상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통상 주권은 인민에게 있지 않고 국민국가에 있으며, 모든 개인과 연합은 오직 국가의 권력과 명성과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는 수준의 강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체주의이고 이를 강력히 지지하는 걸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시즘에서 국가는 개인의 합보다 크다. 당연히 국가의 위신을 세우고 국가 권력이 필요하다고 징발하면 복종하는 것이 시민의 도덕이고 의무다.

복잡한 논의를 접고 우리 사회를 사이비 국가주의준국가주의국가주의내에서 좌표를 찍는다면 어디쯤일까? 그 전에 국가적 행사가 좌초해 긴급한 마당에 가수 동원과 국가적 지원을 받는 공영방송 동원, 공무원 동원이 그렇게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운운할 일이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에 관한 판단은 최근 잇달아 전개된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정부 압박과 언론 통제 상황을 보면 실체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노동계, 노동조합에 대한 압박. 화물연대는 화폭이 되고 건설노조는 건폭으로 불린다. 대대적인 회계감사와 압수수색도 빈번하다. 방송계에선 준공영방송이 좌파언론으로 분류돼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공영방송은 수신료징수 시행령으로 목이 졸리고 있다. 두 방송사 사장, 이사들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서울시민의 방송 TBS, 24시간 뉴스 전문채널 YTN도 압박을 받아 뒤숭숭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방송통신 운용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마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다. 파시즘 권력 전개의 최초 과정인 사상, 노조, 언론 통제와 유사하다. 또 시민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어 온 시민단체들도 예산이 끊기며 황망한 지경에 이르렀다. 집권세력의 눈에 이들은 각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부패의 카르텔이다. 그렇기에 응징이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전체주의 경고음 왜 안울리나


통상 이야기하는 전체주의의 조건은 1인에게 지배되는 정당 경찰검찰 등 사법 권력의 조직적 폭압 대중매체 독점적 장악 경제의 중앙통제 등이다.

이걸 기준으로 할 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독주, 공권력의 과도한 남용과 편향, 공영방송을 비롯한 다수 언론의 관변성, 자본과 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 등은 분명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왜 과도한 국가주의, 전체주의로의 반동에 대해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 걸까?

첫째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국가주의 국가론에 젖어 온 탓이라 생각한다. ‘사회질서 유지국가안전 보장이라면 다른 것들은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거나 유보된다. 심지어 국가 체면 유지라는 막연한 가치마저 최우선 가치가 되지 않는가.

빈곤층과 노인, 중증질환자, 장애인, 이주민에게 지원되는 예산에 그리 인색하던 국가 권력과 여론이 잼버리 참가자에게 투입되는 예산에 추호(秋毫)의 망설임도 없다. 논리와 명분이 필요 없는 게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논리와 명분은 집권세력이 내놓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 국가론 쏠림은 그냥 해소되지 않는다. 남북 대치의 한반도 상황에서 미러 등 강대국이 늘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배경으로 국가권력은 일치단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려되는 건 형식적인 민주주의 틀 안에서 우리의 정치 과잉이 전체주의적 의식을 굳혀가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점이다. 우리 편이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국가를 장악하게 된다는 극화된 정파 의식 속에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모욕도 거침이 없다.

정치적 반대는 여론과 지지자들의 물리적 힘을 동원해서라도 제압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사법 권력이 정치적 목적 아래 정파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셋째 당연히 언론의 무능과 무책임 탓이다.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니에 그라스만이 당신이 억압자와 하나라는 걸 깨달을 때 당신은 비로소 억압자에게 맞설 수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 권력의 나팔수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이 지배체제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는 자각과 참회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넷째 더 넓게 보자면 지구촌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참혹한 테러와 대규모 난민, 코로나 19로 인한 펜데믹을 겪으며 여러 사회에서 더 강한 권력과 단호한 정부 집행을 요구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이른바 규제 열광(regulation mania)이라는 현상이다. 그럴 때 국가 권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축적된 국민 개인과 단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며 힘을 키워가기 마련이다.


전체주의 종말은 국민 재난


이대로 전체주의를 향해 나아가면 국가는 팝 콘서트로 구멍 난 국가행사의 뒷수습을 겨우 메울 수는 있겠으나 국민은 재난에 맞닥뜨릴 것이다. 사회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서로가 서로의 자유를 속박할 것이다. 지루하게 법 절차를 밟기보다는 사적 수단과 힘을 통한 즉각적인 짓밟기가 서로를 불안케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처지, 다른 생각을 지닌 집단을 공격하며 정의를 위한 결단이라 할 것이다. 이 나라는 그렇게 무너져 갈 것이다.

염생식물, 잘피 등 연안에 서식하는 식물과 갯벌 등의 퇴적물을 포함한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말하는 블루카본. 블루카본은 그린카본인 밀림보다 50배 뛰어난 속도로 탄소를 흡수한다고 추정한다. 사진=영화 ‘수라’
염생식물, 잘피 등 연안에 서식하는 식물과 갯벌 등의 퇴적물을 포함한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말하는 블루카본. 블루카본은 그린카본인 밀림보다 50배 뛰어난 속도로 탄소를 흡수한다고 추정한다. 사진=영화 ‘수라’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숱한 정치사회적 담론은 이후로 미뤄두고 새만금 잼버리에서 시작된 이야기니 새만금으로 돌아가 궁리해보고자 한다.

언제까지 새만금을 간척의 대상으로 보아야 할까? 지금은 빨리 크는 소를 품종개량으로 만들고 해초를 먹인다. 사료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저탄소 한우 품종개량이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 갯벌의 탄소 저장능력은 1300만 톤으로 추정한다. 자동차 11만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연간 26만 톤이니 엄청난 양이다.

이것이 해안가의 해양 생태계. 맹그로브 숲, 염생 습지, 해초류 그리고 해조류에 의해 흡수되는 탄소인 블루카본이다. 블루카본은 그린카본인 밀림보다 50배 뛰어난 속도로 탄소를 흡수한다고 추정한다. 미래에 블루카본이 공식적으로 지구 기후위기를 완화시키는 방식으로 인정받고 탄소배출권에 포함된다면 새만금을 모두 흙으로 메워 버리는 과거의 개발은 국가 미래의 훼손이나 마찬가지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는 전체주의 담론 자체가 이미 시대에 한참 뒤진 것이다. 이미 인간을 위해 인간 이외의 만물은 굴종하라는 담론조차 명분이 사라지고 있다. 그것이 지구위기의 문제다. 지구 위의 생명체들이 지구의 존속을 위해 인간과 자연이 서로 동등한 지위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담론이 선진국 중심으로 번지는 데 우리는 전체주의로 퇴행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 단기적인 성과, 정치적 치적 선전,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민생도 뒷전으로 밀리고 국민의 기본권도 유보되는 마당에 생태환경의 권리와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황당할지 모른다. 황당하다는 건 그만큼 갈 길이 멀고 시간은 촉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새만금은 우리에게 그러니 생명에 반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변상욱

CBS 퇴임 이후 언론판에서 주가가 더 올라 섭외 1순위로 꼽히는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군사정권이 CBS의 보도기능을 박탈한 시절 PD로 입사해 프레스카드 없는 무자격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이후 CBS 보도국 대기자로 여러 뉴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했고, YTN ‘뉴스가 있는 저녁’ 앵커를 맡기도 했다. 저널리즘과 철학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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