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외로움을 달랜 흔적,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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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외로움을 달랜 흔적, 유물들
  •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자
  • 승인 2023.08.18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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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 부러지자 조문을 쓴 미망인 유 씨로부터…

최근 AI와 로봇의 발달로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기에 연초에 큰 열풍이었던 챗gpt과 비슷한 대화형 인공지능에 기반한 AI기반 로봇은 신기하다 못해 영특까지 하다. 어느덧 컴퓨터가 내놓는 답에 넋을 잃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음성으로 조작이 가능한 텔레비전이나 전자기기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시곤 한다. 예전보다 더 고립되어 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좋든 싫든 기계에 의지한다. 대화해주는 전자기기는 기본이 됐고, 이젠 더 나아가서 로봇 강아지와 함께하는 생활도 낯설지 않다.

2013년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Her'는 인공지능체계인 사만사와 사랑에 빠진 홀로된 작가의 이야기이다. 사진=영화 포스터
2013년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Her'는 인공지능체계인 사만사와 사랑에 빠진 홀로된 작가의 이야기이다. 사진=영화 포스터

그 과정에서 사람은 그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심지어 몇 년 함께한 로봇 강아지가 고장이 나면 새로운 로봇 강아지를 들이지 못하고 비싼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그 로봇 개를 고치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음성인식을 하는 전기청소기나 텔레비전이 망가져도 고쳐서 쓰려고 한다.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 의지하는 모습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사실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유 씨 부인의 바늘과 조침문


2013년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Her'는 인공지능체계인 사만사와 사랑에 빠진 홀로된 작가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등장할 당시에는 사람과 이혼하고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미래 사회의 모습으로 큰 충격과 논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된 미망인으로 사회와 고립되었던 유 씨 부인(조침문의 작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21세기 로봇이 인간의 반려자가 되는 상황을 예언한 듯하다.

연변 자치주의 3000년 전 돌바늘. 사진=강인욱
연변 자치주의 3000년 전 돌바늘. 사진=강인욱

조선시대 규방문학의 대표인 조침문(弔針文)’은 이러한 사물에 대한 감정 이입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미망인 유 씨라고만 알려진 작자는 청나라에 다녀온 친척 삼촌이 사 온 바늘 쌈지 중 하나를 택해서 수십 년간 삯바느질로 긴 밤을 보냈다. 자식도 남편도 없는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바늘에 그녀는 자식이나 종복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 바늘이 부러지는 순간 잠깐 혼절을 할 정도의 충격을 받고 기나긴 애도사를 남길 정도이다. “네 비록 물건이지만, 후세에 다시 만나 백년고락과 일시 생사하기를 바라노라라고 끝을 맺는 조침문을 읽노라면 바늘 하나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유씨부인의 감성은 당시 장안 여성들의 화제가 되어서 너도나도 읽었고, 대표적인 규방문학이 되었다. 세상과 차단되어서 규방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야 했던 조선시대 양반집 여성이었기에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했을 것이다.


데니소바 동굴의 바늘


미망인 유 씨처럼 바늘이 부러지는 경험은 아마 구석기의 사람들도 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이른 바늘의 흔적은 러시아 알타이 공화국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2022년 스반테 파보가 노벨 생의학상을 받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데니소바인이 발견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유적은 데니소바인을 비롯하여 지난 20만 년 간 인간이 살던 흔적이 층층이 쌓여있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5만년 전의 바늘. 사진=러시아 방송 캡쳐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5만년 전의 바늘. 사진=러시아 방송 캡쳐

데니소바 동굴의 바늘은 5만 년 전의 층에서 발견되었는데, 지금 쓰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는 뼈로 만든 바늘이었다. 바늘은 바로 가죽옷의 등장과 관련되었으니, 당시 사람들은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수많은 시간을 가족들의 옷을 만드는 데에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유 씨 부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빙하기가 끝나고 신석기시대에 들어서서 바늘은 인간의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무덤에 함께 넣기도 했다. 특히 3000년 전 옌지(延吉, 연길)시의 동쪽에 위치한 샤오잉쯔(小營子, 소영자)문화가 있었는데, 당시의 무덤에서는 흑요석으로 만든 칼과 바늘을 함께 바구니에 담아서 무덤에 넣어준 것이 종종 보인다.

심지어 어떤 바늘은 의복뿐 아니라 몸에 자극을 주는 침구의 역할을 한 것도 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체하면 할머니는 반짇고리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서 손가락 밑에 피를 내고 등을 두드리셨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가. 고대에 컴컴한 동굴에서 바느질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나 3000년 전 두만강 유역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도 미망인 유 씨처럼 바늘을 귀하게 여기고 가족처럼 생각하을 것 같다.


우상을 집에 모신 신석기인


만주의 요하 상류에는 약 5000년 전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홍산문화가 있었다. 옥을 아주 세밀하게 가공하고 거대한 제사 터를 만들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문명이 영원할 수 없듯이 홍산문화는 약 4500년쯤 전에 급격하게 쇠퇴한다.

샤오허옌 유적에서 발견된 사람 모양의 우상. 사진=강인욱
샤오허옌 유적에서 발견된 사람 모양의 우상. 사진=강인욱

홍산문화는 초원과 온대의 중간지점에 위치했는데 기후의 변화로 홍산(紅山) 문화가 발달한 내몽골 지역은 거대한 사회가 해체되고 반대로 그 북쪽의 유목문화가 사방으로 널리 퍼진다. 이렇게 자신에게 위기가 오자 홍산문화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을 꾀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고, 새롭게 샤오허옌(小河沿, 소하연)문화가 등장한다.

이때 기후는 추웠고 사람들은 서로 고립되어서 작게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 소샤오허옌 문화에서는 거대한 제사 터를 만들지 않고 집에 다양한 우상을 만들어서 모셔두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 츠펑(赤峰, 적봉)박물관에는 샤오허옌 문화의 다양한 우상을 볼 수 있는데, 가만히 보노라면 이것을 만들고 때로는 이야기도 건네고 하소연도 하면서 긴긴밤의 외로움을 풀었던 당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외로움과 함께한 인간의 역사


인류는 언제나 고립되어왔다. 네안데르탈인 시절에 한 무리는 30~5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설사 만난다고 해도 서로에게 적대감은 없는지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불안해했다. 한국의 신석기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발굴 자료로 보면 대체로 한 마을은 인구는 50명 내외 정도였다.

샤오허옌 유적에서 발견된 흙으로 만든 동물상. 사진=강인욱
샤오허옌 유적에서 발견된 흙으로 만든 동물상. 사진=강인욱

우리가 생각하는 북적북적한 도시의 삶은 기껏해야 5000년밖에 안 되고, 그나마도 고대 근동이나 이집트 같은 극히 일부 지역뿐이었다. 인간에게 외로움은 언제나 함께했고, 그럴 때마다 그들이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어쩌면 우리가 발굴한 수많은 유물은 인간이 사랑하고 외로움을 달랜 흔적일 것이다.

AI와 로봇 애완견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닌 셈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탄생한 이래 외로움은 언제나 함께했으며, 그 외로움은 인간에게 수많은 종교의 우상, 그리고 예술을 만들어냈다. 사물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지혜의 산물인 셈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아도 외롭다. 대신 슬기롭게 그 외로움을 달래는 길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개방된 현대 사회가 되어서 우리는 다시 고립되고 있다. 갈수록 고립화되는 현대 사회는 코로나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몇 년간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자제했던 그 시간, 우리는 각자의 조침문을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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