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지만 강렬한 카타니아의 멋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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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지만 강렬한 카타니아의 멋과 맛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8.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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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人의 인생 모토…노래한다, 먹는다, 사랑한다
카타니아 전경과 애트나 화산. 사진=픽사베이
카타니아 전경과 애트나 화산. 사진=픽사베이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⑭

카타니아는 시칠리아에서 팔레르모 다음으로 큰 도시다. 같은 항구도시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카타니아가 좀 더 거친 느낌이다. 카타니아라는 이름 자체에 거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사람들이 시칠리아에 도착하기 전, 시칠리아의 원주민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마을 이름을 지었다. 카타네(Katane)라는 이름은 강판, 껍질을 벗기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카타니아 인근의 애트나 화산 때문이다. 카타니아는 검은 용암 위에 지어진 도시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풍경이 팔레르모보다 더 거무칙칙하다. 애트나 화산은 재앙이자 축복이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도시는 파괴되었지만,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화산토 덕분에 농사짓기 좋았다. 특히 포도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라, 카타니아 일대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맛이 훌륭하다.

카타니아가 거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카타니아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릴 때, 렌터카 회사 직원은 보험 보상조건을 설명하면서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풀커버 보험이라 하더라도 카타니아만큼은 예외라고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자기 부담금이 5000유로란다. 5000유로면 한화로 700만 원에 가까운 큰돈이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 하게 자주 일어나느냐?”고 묻자, 씨익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한다. 하여튼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기에, 풀커버 보험이라 하더라도 예외조항을 둔 것일 터.

그런데도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도시다.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의 숙소로 가는 길의 풍경은 유럽이 아니라 마치 동남아나 중동 또는 북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다. 퇴근 시간, 이오니아해를 따라 이어지는 긴 해안도로를 무질서하게 질주하는 차량과 그 사이를 파고드는 스쿠터 무리는 혼돈의 장관을 이룬다. 피렌체 밀라노 베니스 등을 여행했다 하더라도 시칠리아가 처음이라면 이질적인 거리풍경에 깜짝 놀랄 것이다.


수동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카타니아 호텔의 수동식 엘레베이터. 사진=정연일
카타니아 호텔의 수동식 엘레베이터. 사진=정연일

카타니아 구시가의 호텔은 4성급인데도 엘리베이터는 손으로 직접 문을 여닫아야 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엘리베이터가 아직 실제 사용되고 있다. 수동일 뿐만 아니라 속도도 매우 느리다. 호텔이 위치한 4층까지 올라가려면 5분이나 걸린다. 그래도 라운지에는 수동식 에스프레소머신이 있다. 직접 내려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진하고 맛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카타니아 구시가 도보 여행을 나선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카타니아는 연합군 공군의 폭격을 무려 80여 회나 받았다. 비행장과 항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타니아 구시가는 2000여 년 역사의 고대 그리스로마의 흔적부터, 중세와 근대,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재건한 건물까지 뒤죽박죽이다.

어느 도시든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큰 광장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고, 그 광장부터 여행을 시작하면 도보 투어 동선을 짜기가 좋다. 택시를 타고 스테시코르 광장(Piazza Stesicoro)에 내리면 광장의 중심에 멋진 대리석 조각상이 서 있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쟁쟁한 음악가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빈첸초 벨리니이다.

평소에 오페라를 즐겨 보거나 듣지 않아도, 베르디나 푸치니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이름은 하도 많이 들어서 친숙하다.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고 좀 찾아 듣다 보면, 로시니, 마스카니, 도니제티 같은 이탈리아 작곡가 이름이 감자 덩굴처럼 딸려 나온다. 빈첸초 벨리니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벨리니의 조각상이 카타니아에 있는 이유는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카타니아 구시가에 남아 있는 로마 원형 경기장 터. 사진=정연일
카타니아 구시가에 남아 있는 로마 원형 경기장 터. 사진=정연일

벨리니의 조각상이 있는 광장 맞은편에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터 일부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외부에서 다 들여다보이니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볼 것까지는 없다. 스테시코르 광장에서 카타니아 대성당까지 일직선 거리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카타니아의 명동 거리라고 할 만하다.


요절한 벨라니 덕분에


길의 양쪽으로 상점과 카페, 식당이 어깨를 잇대고 있고, 거리의 인파도 가득하다. 대성당 방향으로 걷다 보면 나타나는 광장은 카타니아 대학 앞의 대학 광장이다. 카타니아 대학은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스페인 아라곤 왕가의 시칠리아 점령 시기인 1434년에 개교했다. 이탈리아 전체에서는 13번째, 전 세계에서는 29번째 오래된 대학이다.

카타니아 대성당 전경. 사진=정연일
카타니아 대성당 전경. 사진=정연일

대학광장 앞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팔레르모 대성당보다 조금 작지만 멀리서 봐도 한눈에 대성당임을 알아볼 수 있는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카타니아 대성당이다. 대성당 앞 광장 분수의 기둥에는 뜬금없다 싶은 코끼리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8세기경 유럽에 없는 코끼리를 아프리카에서 가져다 왔나 보다. 그래서인지 대학 심볼에도 코끼리가 있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성당 관리인에게 벨리니의 무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벨리니는 프랑스에서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의 석관은 카타니아 대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가톨릭 문명권은 자국 위인의 묘를 대성당 안에 안치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성당 안에도 여러 개의 석관이 있어 찾는 데 은근히 시간이 걸린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빈센조 벨리니의 조각상. 사진=정연일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빈센조 벨리니의 조각상. 사진=정연일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지 관리인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곳에 가니 벨리니의 무덤이 있다. 석관 위에는 그의 작품 악보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무슨 작품일까? 찾아보니 몽유병의 여인 중 마지막 아리아다. “아 그렇게도 빨리 시들 것을 볼줄 몰랐다, 꽃들이여.” 서른셋에 요절한 벨리니의 묘비명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다.

2014년부터 유럽에서 발레와 오페라를 직관하면서 매력에 흠뻑 빠졌다. 유럽에서 20여 편 정도는 본 듯하다. 유럽 오페라 하우스의 3등석은 그리 비싸지 않다. 사실 로얄석 박스도 아닌 저렴한 가격 좁은 좌석에서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오페라를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만든 공연예술의 모든 것,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구나 싶은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다.

202211, 독일 드레스덴의 젬퍼 오페라에서 벨리니의 대표 오페라 노르마를 봤다. 드레스덴에 처음 온 건 20006, 그 후로 올 때마다 언제 저기서 공연을 한 번 보나 했는데 무려 22년 만에 드디어 소원을 풀었다. 젬퍼 오페라에서 공연을 보는 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벨리니의 묘비명은 그의 작품몽유병의 여인 중 아리아의 첫 소절이다. 아 믿기 어렵구나, 꽃들이 이렇게 빨리 시드는 것을 볼 줄이야. 사진=정연일
벨리니의 묘비명은 그의 작품몽유병의 여인 중 아리아의 첫 소절이다. 아 믿기 어렵구나, 꽃들이 이렇게 빨리 시드는 것을 볼 줄이야. 사진=정연일

노르마는 로마제국 시절의 기독교 문명 이전의 갈리아(지금의 프랑스)가 배경인 작품이다. 스토리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와 비슷하다. 차이라면 둘사이에 아이를 낳고도 양다리를 걸친 비극적 삼각관계라는 것. 오페라라는 게 뭔가 대단히 고상하고 우아한 것 같지만, 큰 줄거리는 삼각관계의 치정사건인 작품이 많다. 어찌 보면 한국의 막장드라마와 비슷하다.


이 순간을 위하여 건배!


성악곡이나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곡 중에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부르고 연주하지?’ 하는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리스트의 초절기교. 작곡자이자 당대의 피아노 명연주자였던 슈만도 혀를 내둘렀다. 벨리니의 작품, 노르마의 아리아도 그런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곡을 멋지게 부르고 소화한 사람이 그리스 출신의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였다. 멜로디는 여기저기 광고에서 많이 썼는지 처음 들어도 귀에 익은 곡이다. 달콤하면서 슬프다. 벨리니의 무덤 앞에서 아리아 두 곡을 찾아 들었다. 드레스덴 젬퍼에서 봤던 노르마의 아리아와 그의 묘비명으로 쓰인 몽유병 여인의 마지막 아리아.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느낌은 매우 달라진다.

벨리니의 무덤 앞에서 들은 아리아는 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대성당을 나와 카타니아의 오페라 하우스를 찾아간다. 정식 명칭은 테아트로 마시모 벨리니.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 테아트로 마시모 뒤에 벨리니가 붙었다. 외관은 팔레르모보다 초라하다. 오페라 하우스 광장 코너의 카페 이름은 역시 벨리니다. 죽은 벨리니가 카타니아 관광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4월 말이지만, 충분히 뜨거운 시칠리아의 태양 아래에서 두세 시간 도보로 시내를 돌아다녔더니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개인적으로 맥주를 좋아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을 즐겨 마신다. 너무나 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다양한 와인이 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큰길로 이어지는 긴 골목은 맛집이 가득하다. 코를레오네 와인을 주문하며, 니노 로타가 작곡한 대부 주제가 ‘parla piu piano’의 첫 구절 가사를 흥얼거렸더니, 웨이터가 씨익 웃는다.

대부의 고향 카를레오네 마을에서 생산한 화이트와인의 이름은 마피아가 아니라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이다. 이런 사소한 것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다. 사진=정연일
대부의 고향 카를레오네 마을에서 생산한 화이트와인의 이름은 마피아가 아니라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이다. 이런 사소한 것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다. 사진=정연일

해물 리조또는 물론이고 후식으로 시킨 레몬 셔벗과 탄산수조차 맛있다. 이탈리아에 오면 후식으로 늘 포도 증류주인 그라빠 한 잔을 마시는데, 시칠리아 산 그라빠를 주문하니 전통 과자와 같이 나온다. 정말 맛있다. 행복하다.

흔히 이탈리아인의 인생 모토를 세 단어로 이야기한다. “깐따레 만자레 아모레(Cantare Manzare Amore)” 각각 뜻은 노래한다, 먹는다, 사랑한다이다.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마시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사라지며 노래가 절로 나온다. 요절한 벨리니를 위하여, 살아서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하여 건배!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9월 아프리카여행을 준이 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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