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게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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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게와 국회의원
  •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물리학자
  • 승인 2023.08.23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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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주체는 생명체가 아닌 환경

필자가 핀란드에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국회의사당에 갔는데, 주차장에 자전거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안내자가, 국회의원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놀라웠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타고 온 자전거를 볼 수 있을까요?

핀란드의 국회의원과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은 왜 이렇게 다를까요?

믿거나 말거나 이것도 다윈의 자연선택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환경에 적합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도태됩니다. 핀란드의 국회의원이나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나 모두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두 나라 국회의원의 모습은 이토록 다를까요? 두 나라의 국회의원이 본래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두 나라의 정치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에서 국회의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가용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유리하고,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용 자동차와 운전사, 그리고 비서들을 거느리고 있어야 당선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에서도 자가용에 운전기사를 둔 국회의원이 어쩌다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국회의원이 다시 당선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핀란드 사람들이 그런 국회의원을 보면, 우리의 세금으로 저것들의 운전기사 월급이 나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다시는 표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국회의원이 살아남고, 운전기사를 둔 국회의원은 도태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핀란드 국회의원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두 나라의 사회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우리 국회의원들은 우리나라라는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표를 준 우리 국민의 잘못입니다. 국민의 생각이 변하면 국회의원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이 변하지 않는 한 절대로 국회의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지역구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나라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 애쓰는 것보다 당선에 유리한 한 애국적인 국회의원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의 한 어촌에는 사무라이게라는 특별한 게가 살고 있습니다. 이 게는 등 모습이 사무라이 얼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곳에는 사무라이 모습을 한 게가 많을까요?

이 현상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부가 어쩌다가 게를 잡았는데 사무라이 비슷한 등껍질을 한 게였다고 합시다. 어부는 차마 그 게를 잡아먹지 못하고 다시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사무라이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사무라이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이런 일이 오래 계속되다 보니 그 지역에는 사무라이 모습의 게는 생존에 유리하고 다른 게는 생존에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더 사무라이처럼 생기면 생길수록 더 잡아먹힐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입니다. 게들은 점차 더 사무라이와 닮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도 사무라이 게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부패한 모습으로 변해 온 것입니다. 시모노세키 어촌의 게가 점차 사무라이를 닮아 가듯이 말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시모노세키의 어부이고,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바로 사무라이 게인 것입니다. 사무라이 게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듯이 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도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은 그 어부에게 있고, 우리나라 국민에게 있을 뿐입니다.

진화의 주체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환경이 진화의 주체입니다. 환경이 변하면 생명체도 변합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데 생명체가 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현재의 생명체가 그 환경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아닐 때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생명체가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어떤 변화라도 그 변화는 환경에 덜 적합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생존 확률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 영덕 대게가 사무라이 모습을 한다고 시모노세키의 사무라이 게처럼 잡아먹히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모든 변화에도 진화의 이론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물건도 진화합니다. 제품의 성능은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도 진화합니다. 그 디자인이 꼭 좋고 아름다운 방향으로만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선호가 달라지면 디자인도 달라집니다. 그래야 잘 팔리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선비들 갓이 컸다, 작았다 했던 것이나, 여자의 치마가 길었다, 짧았다 하는 것이나, 넥타이 폭이 넓었다,

권재술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물리학자
권재술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물리학자

좁았다 하는 것이나, 다 진화하는 모습입니다. 치마나 넥타이가 스스로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의 기호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우리가 만든 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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