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시간 긴 곳에서 나그네를 기다리는 진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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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시간 긴 곳에서 나그네를 기다리는 진주역
  • 신용철 전문기자
  • 승인 2023.08.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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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네 번째 방문…‘인물 이야기‧맛집 탐방’ 취향 저격
역사와 문화로 경남권 대표하는 관광도시 자리매김 기대
진주역사 전경. 사진=신용철
진주역사 전경. 사진=신용철

보면 볼수록 가면 갈수록 매력적인 도시, 진주. 올해만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서울에서 KTX를 탄다면 부산, 포항, 목포, 강릉 등 국내 대부분의 KTX 기차역에 아무리 멀어도 2시간 대에 도착하지만 진주는 동대구, 밀양, 마산·창원을 거쳐 3시간 30분여 만이 걸린다.

자동차로 가면 부산과 목포보다 가깝지만 기차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운행시간이다. 만만치 않은 시간과 거리를 기쁜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로 역사여행, 인물 여행 그리고 맛집 탐방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그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진주역에 도착해서 역사 밖을 나오면 웅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역사(驛舍) 전경에 순간 압도된다. 진주역은 1925년 경전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역사를 1956년 다시 지었으며 2012년 경전선 복선전철사업으로 역사를 진주시 칠암동에서 현재의 가좌동으로 이전했다.

새로 지은 진주역사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진주의 관문으로 전통적인 건축의 요소들이 현대 철도역사와 만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주 철도역사 100년의 숨결을 간직한 채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옛 진주 객사(客舍)를 재현하고자 한 노력이 역사 구석구석에 배어 나와 정취를 더했다.

국립진주박물관 전경
국립진주박물관 전경

올해 처음 진주에 여행을 간 것은 지난 1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기획전시 중인 병자호란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성 안에 건립한 국내 유일 국립박물관으로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물은 한국 전통 목조탑을 석조 건물로 형상화한 것으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병자호란 특별전과 상설 임진왜란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며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이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외교정치를 잘 해주길 한 국민으로써 가슴속으로 바랐다.


어른 김장하보유도시


두 번째로 진주에 여행을 간 것은 전주의 한 시민종교단체에서 진행하는 한몸평화 인물기행 김장하 정신, 그 뿌리를 찾아프로그램에 함께 했다. 올해 초 <MBC문화방송>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각박하고 메말라가는 이 세상에 신선하고 시원한 오아시스 같은 방송이었다. 나눔과 베품, 기부에 인색한 현대인들에게 진정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고 가치 있는 삶인지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인물기행에 함께 한 참가자들이 김장하 선생이 운영했던 한약방에서 사회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인물기행에 함께 한 참가자들이 김장하 선생이 운영했던 한약방에서 사회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어른 김장하 선생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온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 김 선생께서 운영하신 한약방을 찾아가서 선생에게 도움을 받은 몇 분의 증언(?)들을 듣는 시간을 갖고,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란 부제가 적힌 <줬으면 그만이지>의 저자 김주완 작가와의 북콘서트 등을 통해 나눔과 기부에 대해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국내 최초 인권운동 도시


세 번째로 진주에 여행을 간 것은 국내 최초의 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는 진주 형평운동(衡平運動) 10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 공연 마당극 수무바다 흰고무래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마당극의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고 강상호 선생은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사랑은 인류의 본래 양심이다라고 강조하며 일제강점기 시대에 당시 양반의 신분으로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백정들과 함께 평등한 세상을 꿈꾼 선각자이자 실천하는 행동인이었다.

진주 형평운동 100주년 기념 공연 마당극 ‘수무바다 흰고무래’.
진주 형평운동 100주년 기념 공연 마당극 ‘수무바다 흰고무래’.

고 강 선생은 형평사를 창립해 백정들의 신분 해방과 교육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당시 사람들 중에는 선생의 이런 활동을 빗대어 새백정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1957년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진주 사람들은 한국출산기업조합연합회장으로 성대히 장례를 치르며 깊은 감사를 표했으며 정부에서도 지난 2005년 고 강상호 선생을 애국지사로 추서했다.

강 선생의 묘소와 형평운동 기념비를 둘러보며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돌보고, 신분이 높은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보듬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건강한 세상이 될 수 있건만 그렇지 못한 각박한 현실이 참 서글펐다.

마지막으로 최근 진주에 여행을 간 것은 지난 14일 진주성 촉석루 인근 의암에서 열린 뮤지컬 의기논개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의암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했다는 도도히 흐르는 진주남강 위 수상객석에서 뮤지컬을 관람한 것은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줬다.

진주성 내 촉석루 인근 의암에서 열린 뮤지컬 ‘의기논개’.
진주성 내 촉석루 인근 의암에서 열린 뮤지컬 ‘의기논개’.

뮤지컬의 퀄리티 또한 지역뮤지컬이라 얕잡아봤다가는 큰 오산일 정도로 수준 높았다. 전문배우, 시민배우, 합창단 등 1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실경역사뮤지컬로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킬러콘텐츠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내년에도 다시 가서 관람하고픈 그런 뮤지컬이었다.


3대 냉면 중 하나인 진주냉면


진주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답게 음식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냉면 가운데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진주냉면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 터. 북녘에서 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이란 책을 보면 냉면 가운데서 최고로 치는 것이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 적고 있다. 진주냉면은 냉면의 메카 북녘에서도 인정한 맛으로 양반가의 특식 또는 기방의 야식으로 유명했다.

우리나라 3대 냉면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진주냉면.
우리나라 3대 냉면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진주냉면.

남해의 풍요로운 식재료가 결합해 탄생한 진주냉면은 고관대작은 물론이고 일본 관료와 지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전한다. 이밖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주비빔밥뿐만 아니라 진주비빔밥도 별미로 유명하며, 선비들의 해학적인 풍류가 만들어낸 진주헛제사밥과 진주에 떨어진 행운의 운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진주 운석빵도 맛집탐방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가운데 한 명인 남명 조식 선생의 역사적 DNA가 흐르고, 의기 논개와 임진왜란(개인적으로 조일전쟁이라 부르고 싶다!)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의 얼이 남아 있으며 국내 최초의 신분차별 해방 운동을 주도한 강상호 선생과 올해 <MBC> 다큐멘터리를 통해 각박한 세상에 신선한 선한 충격을 안겨준 나눔과 기부천사 어른 김장하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멋진 진주시.

이런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가 선조들의 유업을 이어 더욱 꽃피우고 살찌우는 경상남도권의 대표적 문화관광도시로 도약하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응원한다.


수서행 KTX 도입하라

 

진주대교 아래에 논개가 왜장과 남강에 뛰어들기 전 약한 손이 빠지지 않도록 모든 손가락에 끼었다는 금가락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진주대교 아래에 논개가 왜장과 남강에 뛰어들기 전 약한 손이 빠지지 않도록 모든 손가락에 끼었다는 금가락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끝으로 최근 국토부에서는 91일부터 수서역~진주역(경전선)을 비롯해 수서역~여수역(전라선), 수서역~포항역(동해선)SRT를 하루 왕복 두 차례 추가로 운행하기로 발표했다. 이 지역에 살거나 이 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내막을 살펴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유인즉 수서역~부산역(경부선)으로 운행하는 SRT 열차들을 빼서 이 지역들로 운행하고자 해서다. 간단히 얘기해서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웃픈 현실이다. 그래서 부산행 좌석이 4000여 석이 모자라 수서에서 부산을 오가는 이들에게 불편을 안겨주고 있다.

부산역에서 수서역까지 KTX를 운행하도록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국토부는 식상하게도 철도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선로 유지보수와 매표업무 등을 모두 코레일에서 도맡아 하고 있건만 무슨 경쟁체제라 할 수 있는가. 상식과 소통이 통하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꿈이 아닐 터. 모두가 바라고 요구할 때 비로소 상식과 소통이란 녀석들이 빼꼼히 문을 열어 우리를 반겨줄 것이라 믿는다.

●신용철

월간 ‘말’에 이어 ‘충청리뷰’, ‘제주신문’ 등에서 10여 년 동안 다양한 기자생활을 경험했다. 제주도에 꽂혀 7년 동안 자연과 벗하며 살다가 지금은 어쩌다 철도노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른바 ‘철도덕후’가 되고자 퇴직 전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역을 방문하리라 계획하고 있으며, 먼 훗날 퇴직 후엔 전 세계로 기차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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