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에도 분출, 살아있는 에트나 화산
상태바
8월 14일에도 분출, 살아있는 에트나 화산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8.25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량을 와이어를 걸고 급경사를 오르는 짜릿함
에트나 화산으로 가는 길. 사진=정연일
에트나 화산으로 가는 길. 사진=정연일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⑮

사화산이든 휴화산이든 활화산이든, 제주처럼 보통 화산은 섬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나 시칠리아의 화산은 섬의 동쪽에 치우쳐 있다. 지금도 살아 꿈틀거리는 에트나 화산이다. 마지막 분출은 2023814일이었다. 화산 분출로 인해 카타니아 공항이 폐쇄되기도 했다.

에트나 화산의 높이는 해발 3290m이지만, 분출할 때마다 매번 높이가 조금씩 달라진다. 에트나 화산에 대해서 읽어보면 섭입대(攝入帶, Subduction zone)라는 지질학 용어가 나온다. 두 지각판이 만나는 지점에 생기는 화산을 섭입대 화산이라고 하는데, 에트나 화산은 섭입대 화산이 아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화산의 기원이 논쟁중이다.

에트나 화산 바로 아래에 있는 공용주차장. 사진=정연일
에트나 화산 바로 아래에 있는 공용주차장. 사진=정연일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괴물 에트나 화산 아래 가둔 티폰이 발버둥 칠 때마다 화산이 분출한다고 한다. 티폰은 대지의 여인 가이아가 올림푸스 산의 신들을 대적하기 위해 낳은 거신이다. 또 다른 얘기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이 에트나 화산 아래에 있어서, 헤파이토스가 대장간의 단야로(鍛冶爐)에 불을 지피면 화산이 분출한다고 한다.

에트나(Etna)라는 이름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 제우스의 어머니였던 아이트나(Aitna)가 변덕을 부리면, 지진과 화산 폭발이 일어난단다. 아이트나는 지진, 화산,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볼 수 있는 간헐천의 여신이기도 하다.


케이블카, 특수차량으로 등정

 

에트나 화산 루트맵, 해발 29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에트나 화산 루트맵, 해발 29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에트나 화산 투어는 보통 카타니아에서 시작한다. 개별 여행자라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카타니아 시내의 여행사 투어를 찾아서 합류하면 된다. 네 다섯 정도면 카타니아 시내에서 택시와 흥정을 해서 에트나 화산 아래까지 가는 것도 괜찮다. 해발 고도가 높아 오후에는 안개와 구름이 끼어 화산과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 어려우니, 가급적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는 게 좋다.

이번 일행은 모두 15명이라 호텔에 가격을 물어본 뒤 승합차 택시를 두 대 불렀다. 차량 종류에 따라서 최대 7,8명이 탑승할 수 있으니, 요금이 꽤 나가지만 1인당 요금은 오히려 투어보다 저렴한 편이다. 카타니아 시내를 벗어나 에트나 산자락으로 접어드니 서서히 풍경이 달라진다. 해발 1000m 정도에 다다르자, 길의 양쪽에 가득 쌓인 화산토와 화산석이 눈에 들어온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갈수록 풍경은 점점 황량해지고, 저 아래 멀리 떠나온 카타니아와 지중해 바다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눈에 들어온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다.

해발 1900m 지점의 주차장과 2500m 지점을 잇는 케이블카.
해발 1900m 지점의 주차장과 2500m 지점을 잇는 케이블카.

한참을 올라간 승합차 택시는 에트나 화산 아래의 공용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다 줬다. 스마트폰의 고도계를 확인하니 해발 1900m가 넘는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주차장에서 에트나 화산 분화구까지 가는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티켓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왕복 케이블카만 끊는 것, 다른 하나는 왕복 케이블카 더하기 특수차량과 산악 가이드까지 포함하는 티켓이다.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있고, 등산 장비까지 갖췄으면 아예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위의 사항에 모두 해당하지 않아 모두 포함하는 티켓을 끊었다. 1인당 요금이 10만 원이 넘지만, 케이블카와 특수차량을 타 보니 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 개조 특수차량으로 이동
 

해발 2900m지점, 일반인은 이곳 까지 갈 수 있다. 정상은 출입금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상은 3345m이지만 계속 변한다. 사진=정연일
해발 2900m지점, 일반인은 이곳 까지 갈 수 있다. 정상은 출입금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상은 3345m이지만 계속 변한다. 사진=정연일

이탈리아어로 급경사진 곳에 설치한 강삭철도(綱索鐵道, cable railway)를 푸니쿨라(Funicular)라고 한다. 우물의 두레박처럼 레일 위의 차량에 와이어를 연결해 끌어 올리고 내리는 방식이다. 1800년 대 말부터 유럽 곳곳에 보급 되어 아직도 운행을 하는 곳이 많다. 나폴리의 베수비오 화산에 있었던 강삭철도가 노래 때문에 유명해져, 지금은 전 세계 어디나 심지어 아시아 권인 홍콩 빅토리아 전망대의 강삭철도도 푸니쿨라라고 부른다.

반면 우리가 흔히 케이블카 라고 부르는 이동수단은 이탈리아에서는 푸니비아(Funivia)라고 한다. 푸니(Funi)는 로프라는 뜻이고 비아(Via)는 길이다. 신약 성서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할 때 길이 비아.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기에, 케이블카를 물었는데 푸니비아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아 헷갈리기 쉽다.

에트나 화산 워킹투어. 사진=정연일
에트나 화산 워킹투어. 사진=정연일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알프스를 접한 나라에서도 케이블카나 산악 열차를 타고 올라가면 트레킹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아래쪽에서는 등산 장비를 갖추고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무르고 버석거리는 화산토라 전문 등산화가 아니면 미끄러지기 쉬우니 등산화뿐만 아니라 등산스틱도 필수다. 기후가 급변하는 고지대라 필수적인 여러 장비를 넣은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 케이블카 요금 몇만 원을 아끼려, 고행에 가까운 등산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여행과 관광의 행태의 차이일 것이다.

푸니비아를 타고도 한 참을 올라가 내리니 해발 2500m이다. 트럭을 개조한 러시아제 특수차량이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반도 여행 중에서 타본 차량이다. 캄차카도 화산지대였다. 화산토에서는 2륜 전륜 구동의 일반 차량으로는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캄차카에서 깨달았다. 4륜 구동이어야 하고, 특히 바퀴는 화산토에 빠지지 않는 거대한 특수 바퀴를 장착해야 한다.

2003년 분화로 생긴 거대한 분화구. 사진=정연일
2003년 분화로 생긴 거대한 분화구. 사진=정연일

 

개조 트럭을 타고 화산토 비포장 길을 지그재그로 한참 올라가서 내리니,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가 조금 무겁다. 고산증 증세이다. 고도를 확인하니 해발 2900m. 해발 고도 10m 정도의 카타니아에서 해발 2900m로 단숨에 올라오니 몸이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온도도 패딩 점퍼가 필요할 정도로 뚝 떨어졌다. 카타니아와 무려 섭씨 25도 이상 차이가 난다. 하여튼 드디어 에트나 화산 분화구 아래에 도착했다. 활화산이라 정상은 일반인은 출입금지이다.


여행에 비유할 수 있는 인생


기다리고 있는 산악가이드를 만나 그룹을 나눠서 가이드와 함께 도보 이동하면서 안내를 받았다.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이고, 계속 화산토가 쌓여 초행자에게는 위험한 구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유니폼 재킷 가슴팍에 붙어 있는 마크가 눈에 들어온다. 베수비오산과 그리스 신화의 신이 새겨진 로고 마크이다.

그런데 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포세이돈의 상징인 삼지창이다. 제우스나 아이트나 여신 대신 포세이돈이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본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고산증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어본다. 산악 가이드는 에트나 화산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에트나 화산 산악가이드의 로고마크
에트나 화산 산악가이드의 로고마크

바다와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분화구. 비교적 근래인 2003년에 화산 폭발로 생긴 것이라고. 마치 제주의 기생화산인 오름과 비슷한 풍경이다. 그러면서 에트나 화산의 탄생에 관해서 설명하는 데 멀리 있는 해안선 한 곳을 가리킨다. 그곳을 보니 작은 섬들이 모여 있다. 최초의 화산이 분출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수십 만년의 세월 동안 점점 분출지점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쌓이고 또 쌓인 게 지금의 에트나 화산이라고.

여행 중 만나는 지질학, 지구과학의 내용은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시칠리아의 인간 문명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고대 그리스도 겨우 2700여 년 전이다. 수만 년, 수십만 년의 지질학의 역사에 비유하면 찰나인 셈이다. 그럴 때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불인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지구에 잠깐 왔다 가는 것이고, 한 사람의 인생은 더 짧다. 인류가 멸종한다고 하더라도 화산은 계속 폭발할 것이다.

에트나 화산 워킹 투어를 마치고 개조트럭을 타고 다시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내려오니, 올라갈 때와 달리 기념품 가게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어디나 기념품은 비슷해서 이제는 거의 구입하지 않지만, 에트나 화산석으로 만든 것은 눈길을 끌었다. 시칠리아의 상징인 삼발이(Trinacria)와 화산석으로 만든 머그컵이 인상적이다. 저 머그컵에 시칠리아 산 와인을 따르면 맛이 어떻게 달라질까.

에트나 화산석으로 만든 시칠리아의 심볼 삼발이(Trinacria). 사진=정연일
에트나 화산석으로 만든 시칠리아의 심볼 삼발이(Trinacria). 사진=정연일

내려오는 케이블카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온 노부부와 합석했다. 둘이 대화하는 언어가 낯설어 물어보니 독일어라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독일어는 조금 알아듣는데 어디서 왔냐 물으니 잘츠부르크에서 왔다고. 오스트리아의 독어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독일어와 비슷해, 표준 독일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알아듣기 어렵다. 특히 오스트리아 서쪽 알프스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까지 포함하는 티롤 지방이라, 더 알아듣기 어렵다.

알프스가 지척인 사람들에게 에트나 화산은 어떤 느낌인지 물으니 놀랍다고. 알프스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지만 화산은 없다. 전 세계 언제 어디서나, 인간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동경하고 로망과 판타지를 품는다.

한국인은 야자수가 즐비한 열대의 바다를, 동남아 사람들은 하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을 실현해주는 것이 여행이다. 에트나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날씨가 쾌청해 위쪽 화산과 아래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안개가 자욱해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인생을 여행에 즐겨 비유하나 보다. “봉 보야쥬(Von Voyage).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9월 아프리카여행을 준비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