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안 하는 일, 제가 하자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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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안 하는 일, 제가 하자고 생각했죠”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08.3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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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길한샘 라이더 유니온 충북지회 준비위원장
교원대 독어교육과 졸업했지만 교사 선택안해
배달노동자는 특수고용직, 처우 개선 필요해
​​​​​​​고용 관계 분명하지만 사업주가 누군지 몰라

배달없이 못 살아
배달기사의 하루


배달기사, 배달라이더, 배달노동자, 라이더 등 저를 부르는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전 배달노동자라고 불리면 좋겠어요.”

길한샘 씨(32)는 거리의 노동자다. 5일을 일하고, 320만원 정도를 번다. 남들보다 을 더 잘 번다는 그는 배달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운동신경과 동선을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능력. 그가 배달업을 한 지는 1년 남짓이다. “하루에 보통 20만원 정도를 벌어요. 한 시간에 8개 정도의 물량을 소화하죠.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에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이 일은 쉴 수가 없다. 연일 이상 기온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런 날이라고 해서 배달료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오토바이 앞에 차가 줄지어 있으면 공포심이 생겼어요. 제일 위험한 건 교통사고에요. 여름에도 5~8kg가 나가는 안전보호장비 옷을 착용하고 일해요. 제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죠. 사실 배달 기사는 진입하기도 쉽지만 그만큼 준비 없이 하다 보면 사고 위험도 높아요. 배달업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제도권 안에 들어와 노동자로서 안전지대를 찾는 게 중요해요.”

 

길한샘 라이더 유니온 충북지회 준비위원장
길한샘 라이더 유니온 충북지회 준비위원장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길 씨는 교원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친구들은 모두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를 꿈꿨다. 그는 남들이 다 하고 싶어하는 일을 내가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왜 배달업을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을 때마다 이 말을 해요라고 답했다.

길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습지 교사, 프리랜서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교사는 정규직이지만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직이었다. 프리랜서 강사는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군대를 다녀와 2021년 말부터 건설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했다. 현장에서 목수 일을 배우고 바로 투입됐다. 형틀목수를 하면서 작년 6월부터 투잡으로 배달일을 하다 올해 4월부턴 오로지 배달업으로 생계를 꾸린다. 형틀목수는 비정규직, 배달기사는 특수고용직이다.

특수고용직은 어딘가 고용은 돼 있지만 사업주와 만날 일이 없다. 노사관계가 있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임금협상을 할 수도 없다. 사업주는 직고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비를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는 사업주 이익만큼 손해를 보더라도 따질 수가 없다.

배달기사는 배달에 필요한 장비를 스스로 구매해야 한다. 길 씨는 건설현장에서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오토바이 구입 후 보험료를 비롯한 유류비 및 수리비 등 유지비용은 모두 배달기사의 몫이다.

 

길한샘 씨는 매일 점심시간을 쪼개 같은 일을 하는 배달기사들에게 생수를 나눠준다. 조합원을 모으기 위해서다.
길한샘 씨는 매일 점심시간을 쪼개 같은 일을 하는 배달기사들에게 생수를 나눠준다. 조합원을 모으기 위해서다.

 

소규모 중개업체 연합형성해

 

배달업은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요기요와 같은 대형 업체에서 플랫폼 중개 및 배달대행업을 진행한다. 수도권이나 일부 대도시의 배달기사는 이들 대기업에 고용돼 일하지만 지방 소도시는 그 정도 일감이 없어 대부분은 일반배달대행사에 소속돼 일을 한다. 일반배달대행사는 청주에만 해도 수십 개다. 이들은 일반음식점을 돌며 배달 계약을 맺는다. 배달 대행사 여러 개가 모여 연합을 형성하고 배달기사에게 그들이 구축한 플랫폼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준다. 대신 수수료를 떼간다. 배달 콜을 받을 때 대략 10%, 배달을 완료할 때 10%를 떼간다.
 

핸드폰에 배달 '콜'이 실시간 울린다.
핸드폰에 배달 '콜'이 실시간 울린다.

 

길 씨는 배달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해도 당장 사업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할 수가 없어요. 일반배달대행사들은 소위 담합을 통해 배달기사들의 기본 배달료를 정해요. 최근 기본 배달료가 200원 내려갔어요. 배달기사들이 억울해 항의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행동하기로 했다. 그가 배달업을 택한 이유 중에는 배달업이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그는 배달업계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 최초의 배달라이더 노동조합인 라이어 유니온2020년 발족했다. 길 씨는 충북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조합원 10명이 모이면 지회 창립이 가능하다. 지금 2~3명만 더 모으면 된다.

길 씨는 같은 배달업을 하는 기사들을 조합원으로 모으기 위해 매일 점심시간을 쪼개 율량동의 한 주택가에서 시원한 생수를 배달기사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면서 배달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부탁한다. “설문 100명을 받는 게 목표예요. 설문내용이 길어 하다 보면 8분 정도 걸려요. 그래서 꼭 집에 가서 쉴 때 해달라고 해요. 배달업에 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 같은 거예요. 사실 지자체에서 이러한 조사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는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 사회는 하는 일에 따라 계층이 나눠져요.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그런데 특수고용직이 가장 기형적이고, 상황이 열악해요. 정규직이 특수고용직이 될 수는 있지만, 특수고용직이 정규직이 되기는 어려워요. 가장 취약한 계층에서부터 구조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세상이 좀 더 안전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닐까요라고 밝힌다.

그는 2개의 전화기를 쓴다. 어깨에 매단 그의 전화기에선 계속해서 배달 알림이 울렸다. 그가 인터뷰를 마치고 콜을 잡아 거리로 나가면 바로 오늘의 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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