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유해봉환 2년, 고려극장 연극으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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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유해봉환 2년, 고려극장 연극으로 부활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9.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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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전 공연 마치고 나니 육사 흉상 철거 논란 벌어져
1932년 만든 카자흐 국립아카데미, 고려인 단원 100여 명
충북 진천 출신 강태식 연출가 “연극 ‘桓의 나라’ 준비 중”
고려극장의 첫 한국인 상임연출은 충북 출신의 강태식 연출가다. 강태식 상임연출을 9월 2일 서울에서 만났다. 사진=이재표
고려극장의 첫 한국인 상임연출은 충북 출신의 강태식 연출가다. 강태식 상임연출을 9월 2일 서울에서 만났다. 사진=이재표

장군님도 똑같이 이주 열차 화물칸에 탔겠지요. ‘자애로운 분이시라 민중들을 보살펴서 먼저 태워 보내고, 마지막 열차를 탔다는 것은 연극의 설정입니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에 연해주를 출발해 40일 동안 중앙아시아로 가는 열차를 세트로 만들었습니다.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보따리의 볍씨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강물로 척박한 땅을 세 번이나 갈아엎어서 논을 만들고 볍씨를 뿌렸습니다.”

816일과 19일 각각 서울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과 대전 서구문화원에서 공연한 연극 <40일간의 기적-홍범도 장군의 기억 속으로> 강태식 연출가의 설명이다.

연극 중 봉오동 전투장면. 사진=카자흐스탄 고려극장
연극 중 봉오동 전투장면. 사진=카자흐스탄 고려극장

이 연극은 1937년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와곤(Vagon)’이라고 부르는 기차 화물칸에 실려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떠나야 했던 고려인 강제 이주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무려 18만 명을 이주시켰는데, 창문도 없는 화물칸에 선반을 놓고 짐짝을 싣듯 사람을 태우다 보니 추위와 질병, 굶주림 등으로 25000~3만 명이 기차 안에서 죽었다. 그중에서도 85명을 태우고 1224일에 떠났다는 마지막 열차가 연극의 배경이다.

이 연극의 강태식(55) 연출가를 92,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의 상임연출이다. 홍범도 장군의 말년을 수위로 보냈다는 그 고려극장이 맞다. 연극 <홍범도 장군의 기억 속으로는 지난해에 만든 고려극장 90주년 기념작이다. 무슨 극장이기에 올해로 91년이나 됐고, 국립아카데미는 또 뭘까 싶다.


카자흐스탄 5대 국립극장

 

연극 포스터. 후원에 국가보훈부가 있다.
연극 포스터. 후원에 국가보훈부가 있다.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극장을 만들었죠. 1937년 강제 이주 때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왔어요. 다민족 국가인 카자흐스탄에 국립극장은 카자흐와 러시아, 위구르, 독일, 그리고 카레이스키(고려)까지 다섯 개가 전부에요. 극장 시설만 말하는 게 아니라 배우팀, 무용팀, 합창팀, 사물놀이팀 등 100여 명의 단원이 있죠. 극장장도 있지만, 예술감독이 최고 책임자예요.”

예술감독은 리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다. 현재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5세까지 내려왔는데, 예술감독을 포함한 단원은 모두 고려인들이다. 이들의 일과 중에는 한국말을 배우는 시간도 있다. 다민족의 고유언어를 살리려는 카자흐스탄의 정부정책 덕분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우리말에 능통하지는 않아서 우리말 대본을 통째로 외워서 무대에 올랐다. 공연 대본도 한국 공연에 맞춰서 보완했다.

원래 연극은 열차를 타고 온 40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한국 공연은 장군이 고려극장에서 일하는 장군이 먼 하늘을 보며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생활과 봉오동 전투를 회상하는 전투 장면이 4분 정도 나와요. 또 원로 연극인인 박정자 배우가 중간중간에 해설자로 나서 극의 이해를 도왔어요.”

연극의 대미에는 전주 판소리합창단(단장 방수미 명창)이 불러 화제가 된 이육사의 시 광야를 출연자 30여 명의 함께 불렀다.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공연팀은 8월 서울과 대전에서 연극 ‘40일간의 기적-홍범도 장군의 기억 속으로’를 공연했다. 이육사의 시 ‘광야’를 합창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공연팀은 8월 서울과 대전에서 연극 ‘40일간의 기적-홍범도 장군의 기억 속으로’를 공연했다. 이육사의 시 ‘광야’를 합창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

반응이 뜨거웠어요. 환호가 나왔죠. 국회 공연 때는 430여 석의 좌석이 꽉 차고, 계단에까지 빽빽하게 앉아서.” 이 공연은 장군의 유해봉환 2주년을 기념해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했고, 국가보훈부가 후원했다.


뮤지컬 빅토르 최 준비


고려극장 공연팀은 8월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안톤 체호프 원작 갈매기를 공연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갔지만 강태식 연출은 10월 중순까지 한국에 더 머물 예정이다.

1992년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수교한 것을 기념하는 ‘30주년 문화교류를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에 걸쳐 진행하는데, 11월에 한-카자흐 합작으로 무대에 올릴 연극 ()의 나라에 출연할 한국 배우들의 캐스팅과 연습을 위해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텡그리아다로 공연하게 될 이 연극에 출연할 우리 배우는 영화배우 김응수와 탤런트 손종학,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이성열 등이다.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강제 이주되는 고려인들. 연극 장면. 사진=카자흐스탄 고려극장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강제 이주되는 고려인들. 연극 장면. 사진=카자흐스탄 고려극장

강태식 연출은 내년에는 레닌그라드에서 록밴드의 싱어와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던 고() ‘빅토르 최(초이)’의 삶과 음악을 다룬 뮤지컬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빅토르 최는 카자흐스탄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그가 불렀던 노래는 서너 곡 정도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머지 노래는 만들어야죠. 빅토르 최와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 중에 두 명 정도가 직접 출연하기로 했어요. 한국 뮤지컬의 수준이 높아서 한국 배우들도 출연하게 될 겁니다.”

뮤지컬 빅토르 최는 왠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감상해야 할 것만 같다.


진천에서 태어나 은행원 꿈꿨었죠

안양예고 졸업하고 모스크바 연극유학이 인생 바꿔

 

강태식 고려극장 상임연출.
강태식 고려극장 상임연출.

강태식 상임연출은 고려인 만으로 구성된 고려극장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것도 충북 진천군 백곡면이 고향이다. 지금은 폐교된 백곡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성악을 공부해보라는 교감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안양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멋모르고 연극영화를 전공하게 되면서 연극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청주상고에 진학해 은행원이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고교 졸업 후 러시아로 연극을 공부하러 간 것이 또 한 번 반전의 계기가 됐다.

“1994년 모스크바로 가서 1년 반 동안 말을 배우고 모스크바 국립연극대학교에 들어갔어요, 석사 학위를 따고 박사 과정을 수료하는데 15년이 걸렸습니다. 석사를 하면서 연출로 전환했는데, 모스크바 유학 경력 덕분에 고려극장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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