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쟁 방아쇠 당긴 홍범도 흉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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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 방아쇠 당긴 홍범도 흉상 논란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09.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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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취업, 위안부=매춘이라 우기는 ’ 뉴라이트 논리’
軍간부교육 뿌리 “신흥무관학교 아닌 군사영어학교” 주장
미국의 인종 갈라치기에서 배운 ‘윤석열표 선거전략’ 재현
최근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다섯 분의 독립 영웅 흉상을 철거하기로 한 배경에는 독립운동을 배격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있다. 애초에는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모두 철거할 계획이었다. 사진=뉴시스
최근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다섯 분의 독립 영웅 흉상을 철거하기로 한 배경에는 독립운동을 배격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있다. 애초에는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모두 철거할 계획이었다. 사진=뉴시스

바야흐로 이념 전쟁이 시작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과의 투쟁을 말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민항쟁을 선언했다. 힘과 힘, 의지와 의지가 충돌하는 한국 사회는 전쟁터다.

대선 다음날인 2022310일에 미국의 랜드연구소 홈페이지에 인상적인 기고문이 실렸다. 랜드연구소 한국학위원장이자 정치학자 에릭 모브랜드 박사는 <언론이 한국의 선거에서 놓칠 수 있는 것>이라는 기고문에서 윤석열 후보의 선거전략을 사회적 분열을 선거전략으로 바꾸는 극단주의적 관점이며 주변적인 견해를 증폭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는 이러한 정치 방식은 서구의 관찰자에게 너무나 익숙하다고 비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윤석열 대통령이 극우 정권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주로 외신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작년 3월에 워싱턴포스트, 포린폴리시, 아시아태평양재단, 르몽드 등 주요 언론이 한국의 새로운 정권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동안 정작 한국 언론은 거의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쩌다 극우 이념을 가진 지도자가 출현했다 하더라도 한국 민주주의가 함부로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또는 국민이 무서워서라도 신생 정권이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대한 안이함이 형성되었다.


거대한 퇴행, ‘신중세주의


1년 반이 지난 지금, 예전의 경고는 실제적인 위험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과연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1987년 이후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삶을 규정하는 가치체계이자 생활의 원리였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포용하는 관용과 존중의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과 의식으로 확장되어왔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자부심은 포용과 존중의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다채롭고 풍부한 정신세계를 창조하였다. 이렇게 활력이 넘치던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이전 시대에나 볼 법한 현상이 다시 나타날 조짐이다.

지난 4월에 랜드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티모시 히스, 웨이롱 콩, 알렉시스 데일 황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분열이 고조되면서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안보의 전반적인 약화 또는 퇴보가 미중 전략경쟁과 동반하여 진행되는 현상을 신중세주의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트럼프의 ‘인종 갈라치기’로부터 그 붕괴 조짐을 보였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남녀 갈라치기’로부터 붕괴가 시작되었다. 사진은 인종 평등, 평화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하지만 그는 암살됐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트럼프의 ‘인종 갈라치기’로부터 그 붕괴 조짐을 보였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남녀 갈라치기’로부터 붕괴가 시작되었다. 사진은 인종 평등, 평화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하지만 그는 암살됐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트럼프의 인종 갈라치기로부터 그 붕괴 조짐을 보였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남녀 갈라치기로부터 붕괴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공화당 내의 극단주의 흐름인 티 파티(tea party)로부터 민주당에 대한 음모론의 결집으로 분열의 길을 갔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극단주의 단체인 뉴라이트로부터 민주당과 야당에 대한 공산당 낙인을 찍는 방향으로 분열의 길을 가고 있다.

신중세주의는 선거로 집권한 독재자가 국가 통합의 토대였던 정신을 공격하고 적대와 분열을 조장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풍부하고 다층적인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선적인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기준에 집착하는 지적 장애가 발생한다. 이는 문명의 재야생화’, 즉 다시 야생과 야만의 리바이어던으로 회귀하는 현상이다.

이제껏 국가 윤리와 도덕의 토대였던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공격하면서 인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기심을 합리화한다. 약자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이는 합리적 인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장려해야 한다. 이러한 합리적 인간이 자유를 추구할 수 있을 때가 좋은 세상이다. 경제학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도출된 뉴라이트 이념은 국가의 규제와 도덕주의로부터의 해방된 자유로운 이익 추구라는 최고선을 지향한다.


홍범도 흉상 소동과 역사 수탈


한국에서 국가의 정신은 크게 호국, 독립, 민주화라는 세 기둥을 통해 세워졌다. 보훈부가 관리하는 국가 유공자는 이 세 정신의 범주에 대부분 속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국가 통합이 기본 토대이자 시민의 상호 존중의 덕목이며, 국가의 집단정신의 표상인 정체성의 핵심이다.

반면 뉴라이트는 독립과 민주화라는 두 정신적 가치를 부정한다. 식민지 시대는 공장과 철도가 세워져 조선 민족이 이익을 추구할 기회를 확대한 근대화 시기로 둔갑한다. 강제징용은 정당한 대가를 받는 취업이었고, 위안부는 매춘 산업일 뿐이었다. 일제는 수탈한 것이 아니고 식민지 조선이 일본에 수출한 것이다. 윤봉길과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민주화 운동 역시 허위와 기만이다.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이 자유를 선사한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가 창조해 낸 산업과 자본이 시민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이다. 단지 이런 성장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 이승만의 건국과 미국과의 동맹을 통한 안보의 달성이 기려야 할 덕목일 뿐이다.

최근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다섯 분의 독립 영웅 흉상을 철거하기로 한 배경에는 독립운동을 배격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있다. 애초 육사는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까지 포함한 흉상을 모두 철거할 계획이었다.

막상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김좌진과 지청천은 공산주의자와 대립했고, 이범석 역시 정부 수립 후 초대 국무총리이자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점 때문에 결국 소련 공산당 경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만 철거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 이외의 네 영웅 흉상도 지금 교정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흉상 철거 계획은 육사 자체만의 결정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역사 전쟁을 촉발하려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의지가 실려 있다.

육사는 그 뿌리가 구한말의 의병이나 광복군, 또는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가 아니라 미 군정 시기인 1947년의 국방경비대가 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군사영어학교에 있다고 설명한다. 한낱 영어 강습소에 불과한 영어학교가 국군 장교 양성의 정신적 뿌리라는 황당한 주장이다. 한국 전쟁 시기에 국군에는 의병이나 광복군 출신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역사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고 그 대신 일본군 출신의 영웅담이 확대되고 과장되었다.

결국 한국 전쟁에서의 국권 수호는 일본이 양성해 준 근대적 군사 지식과 독립군 토벌의 경험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19514년제 육사가 세워지고 초대 교장인 안춘생 준장이 안중근 의사의 조카라는 점을 제외하고 이후 교장은 일본군 출신들로 채워졌다. 육군 참모총장은 연속 11번이나 일본군 출신으로만 임명되었다.

이들이 주도한 국군에는 일제의 의식과 용어, 문화가 장기간 지배하게 된다. 영어로는 군사경찰(MP military police)이라면서도 일제식 용어인 헌병(憲兵)이라는 용어를 굳이 70년이나 고집했다. 정작 일본 자위대에서도 쓰지 않는 용어인 기합(氣合) 등 지난 시기 국군은 일제 잔재의 박물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다 공산권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권위주의적인 군대 예절과 구타와 학대의 폐습 역시 일본군 풍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육사가 미 군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는 오랜 관습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2021년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되고 육사 교정에 다섯 분의 독립 영웅 흉상이 설치되면서였다. 이때부터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었으나 이는 친미, 친일의 육사 정신이 크게 수정되는 것이기에 수구 세력에게는 눈엣가시였다.


큰 갈리치기, 작은 갈라치기


올여름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척결하는 반국가세력과의 투쟁을 선포했다. 이념 전쟁으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2030년 청년 세대를 끌어들이고 야당과 노총을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 고립시키는 큰 갈라치기전략이다. 자유 우파와 중도층까지 이념의 깃발 아래 규합하여 미래로 가는 세력으로 하고, 야당과 노총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뒤로 가는 세력으로 만들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는 작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산하 여의도연구소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건의했던 당시와 같은 맥락이다. 지지층이 견고하지 못할 때 윤석열 캠프가 구사한 이런 남녀 갈라치기 전술은 2030 남성표를 결집하여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총선을 9개월 앞둔 시점에서 지지율이 30%대에 갇혀버린 윤석열 정권은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미 뉴라이트 역사관에 포획된 윤석열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 2년 차 전략인 중도 실용 노선과 같은 정치적 외연을 확장하는 선택이 아니라 더 작고 편협한 고립의 길로 가게 된다.

정치기획의 시작은 이념 전쟁을 통해 큰 갈라치기를 하려고 했으나 막상 결과는 전통적 보수까지 고개를 젓게 만드는 작은 갈라치기, 엄밀하게 말하면 구보수와 신보수를 갈라치는 황당한 결과다. 이렇게 되면 중도층은 물론이고 보수 일부까지 등을 돌리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다.

어설프게 시작한 역사 전쟁, 이념 전쟁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사실상의 지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존 지지율까지 잠식하는 참혹한 여론조사 수치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이 부활을 꿈꾸는 친일 수구 세력과 강하게 결속되어있는 한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더 일본에 경도되고 스스로를 식민화된 존재로 추락시키는 사고 체계가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시민의 정치적 압력만으로 윤 대통령은 노선을 수정할 수 없다. 게다가 용산 대통령실의 극단주의자들은 지금의 이념 전쟁이 2030 남성표를 확실하게 견인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앞으로 더 빈번하게 역사 전쟁이 발화될 것이다.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는 정신세계가 파괴되면서 내년 총선은 새로운 야만이 허용되느냐, 저지하느냐의 갈림길이 된다. 최근 인도, 이스라엘,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태국에서 삼권분립이 마비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현상을 지켜본 세계는 내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새로운 정치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삶을 지배했던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새로운 야만이 등장하는 신호는 한국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다. 친일과 반공을 외치는 저들의 전쟁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 수호 전쟁이 될 것이다.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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