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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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대하여
  • 이지
  • 승인 2023.09.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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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다

요즘 들어 소위 입신양명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버젓한 관직에 올라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의사봉이 있는 회의 석상에서조차 상대방을 히죽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삿대질과 막말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한다. 이들의 언사는 대개 정의와 진실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를 혼란스럽게 뒤흔들어 놓기 일쑤다.

1+12인 것이 자명한데도 엉뚱한 대답을 내놓고는 그것을 정답이라 우기면서 정작 옳은 답을 내놓은 사람들을 싸워야 할 적이라고 규정짓는다. 일본의 식민 지배는 나쁘다가 정답인데 독립전쟁의 영웅은 모욕을 주거나 독재는 나쁘다가 정답인데 독재자를 추앙한다.

언론이 적화(赤化)되었다고 공공연히 떠들면서 언론의 자유는 보장한다고 하고 멸시와 대결로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으면서 평화를 지향한다고도 한다. 더군다나 일본이 뿌려대는 방사능 오염수를 홀딱 뒤집어쓰면서도 그것을 걱정하는 적어도 75%의 국민을 혹세무민하는 무리로 취급하며 짐짓 훈육까지 하는 것이다.

이들의 말뽄세는 표리부동양두구육을 지나 지록위마(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다)’의 경지에 이른 것인데 우두머리는 진시황이요 그 아래서 전권을 휘둘렀던 역사 이래 최고의 간신 조고(趙高, ?~기원전 207)를 연상시키니 이런 이들의 나라에서 평범한 백성 노릇하는 것이 무척 괴로운 것이다.

일제 식민지를 거부한 3.1 운동은 한국의 근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거사에 참여한 인원은 전체인구의 3% 미만이었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 국내에서는 610 만세운동과 광주 학생봉기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쟁의와 조직 활동으로 일제에 저항했지만 거기에 참여했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20238월 현재 독립 유공자는 17848명이다.

당연히 해방 후 독립전사들을 찾아내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무척 적은 숫자이다. 그 당시 조선의 인구는 2600만 명이었다. 대부분은 침묵했고 침묵을 핑계로 일제에 부역한 이들이 더 많았다. 4.19 혁명의 구호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였다. 3.15부정선거와 15세 소년 김주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민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1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봉기에 나서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거사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가 들어선 지 12년 만이었고 한국전쟁이 있었다. 소위 빨갱이 사냥이 전국적으로 자행이 되었고 무려 100만여 명의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다.

그때에도 대부분은 침묵했고 침묵을 핑계로 독재에 부역한 이들이 더 많았다. 흔히들 1980년대를 저항의 시대라 한다. 그러나 지독한 침묵의 시대이기도 했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유인물 한 묶음을 뿌리기 위해 청년들은 지독한 고문과 억울한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했으나 대부분 학생은 교정에 뿌려진 유인물을 밟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월 광주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열사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외쳤던 각 대학의 집회 참여 인원은 대개 100~2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학 축제에 유명연예인이 출연할 때는 5000~6000명씩 모이곤 했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876월 항쟁으로 침묵의 기간은 끝나는 듯했으나 이후에도 침묵은 끝나지 않았다. 침묵이 미안해 집회장 주변을 서성거렸던 사람들도 있었다. 구호를 외치며 교정을 행진하는 학우들을 따라다니며 물 한 병 건네던 이도, 백골단의 곤봉에 맞아 피 흘리는 친구를 부축해 주던 이도 있었다.

그때의 침묵은 불의에 대한 방조였고 역사적 책무를 외면하는 일이었고 따라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 대한 빚이었다. 최근 입신양명한 이들의 프로필 중 가장 눈여겨보는 것이 나이다. 거의 다가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다. 그 이름에 어떤 사회성이 묻어있는가를 살핀다. 내가 겪었던 시절의 가치는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 분단에 저항하는 통일과 화해, 무차별적 폭압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권리 같은 것이었다.

뜨거웠던 열망과 가능하지 않은 꿈을 꾸며 정의와 진리를 위해 분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를 청년이라 하고 스스로 다독이며 불가능한 이상을 정리하고 차분한 현실적 대안을 찾는 것이 중년이라면 내가 프로필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사회성은 찾기 어렵다. 그런데 그들이 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다. ‘청년시대를 침묵했고 방관했으며 혹은 부역했던 이들의 나라에서 나는 고작 유랑자나 이방인에 다름없다. 다만 방관하거나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 ‘지록위마의 세상,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기 위해 노래를 쓴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지요.” -고 함석헌

적어도 인류멸망의 신호탄이 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서 노래를 쓴다. ‘일본이 지구의 우물에 독을 풀고 다닌다/일본이 인류멸망의 문을 활짝 열었다/바다에 사는 어떤 생명들도 찬성하지 않았다/하늘 아래 사는 그 어떤 생명들도 찬성하지 않았다. 한국은 지구 우물의 독을 맘껏 마시라 한다/한국은 인류 멸망의 문을 맘껏 드나들라고 한다/절명시는 쓰지 못해도 단죄문은 써야겠다/이 오욕의 날을 오래토록 기억하는 노래로/일본 없이는 살수 있어도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다/일본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다// -독과 문과 부역자(Poison. Gate & Collabo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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