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의 지역언론 ‘처방은 지원+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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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지역언론 ‘처방은 지원+혁신’
  • 변상욱 전문기자
  • 승인 2023.09.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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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15년 사이 4분의 1, 문 닫는 ‘사막화’에 수혈 中
한국은 10년 동안 회사 9.28% 늘고 직원은 14.1% 감소
포털 조회수‧실시간 검색에 목매며 존재감은 점점 상실
풀뿌리 신문의 선전…검찰특활비 전국공동취재 좋은 예
지역언론의 ‘사막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답은 지원과 혁신인데, 혁신이 없는 지원은 회사는 늘고 직원은 줄어드는 변칙 경영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지역언론의 ‘사막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답은 지원과 혁신인데, 혁신이 없는 지원은 회사는 늘고 직원은 줄어드는 변칙 경영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지난 5월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사업과 지원에 대한 혁신방안이다. 키워드는 지원이다. 사업이고 혁신이고 간에 도대체 지역신문을 왜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지역언론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균형발전, 지역분권의 중요한 요소이자 동력이기에 지원해야 마땅하다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왔느냐앞으로라도 그렇게 실천할 것이냐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를 기점으로 언론계에서는 매체 비평지 <미디어오늘> 주도로 지역언론의 사막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자본투기가 지역언론 삼켜


미국 지역언론도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미디어오늘이 인용한 <미국 노스캐롤리나대학 허스먼저널리즘스쿨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0년 사이에 지역신문의 4분의 12200여 개가 문을 닫았다. 지역신문이 없는 지자체 카운티가 200여 개, 일주일에 신문이 하나 발행되는 카운티가 전체 3400여 개 중 1600여 개다.

우리나라 지역 언론은 토건자본이 인수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헤지펀드나 거대 미디어 체인이 가져가는 것도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지역언론을 인수해 정치적 입지 확보나 개발이익에 이용하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전국언론으로 연결시켜 정보유통과 수익 창출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지역 저널리즘을 지역발전과 지역 정치의 중요한 필요조건으로 보는 듯하다. 그래서 중립적비정파적 편집 독립성 보장 미래지향적실질적인 혜택 플랫폼 중립적, 지속 가능한 모델 지원 지역에 기반을 둔 다양성 또는 비영리 미디어 지원 더 많은 지역기자 양성 등의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예를 들면 시민이 지역신문을 구독하며 일정 기간 구독료 세액공제가 주어진다. 중소기업이 지역언론에 광고를 내도 세금공제가 있다. 또 기자를 고용하면 언론사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언론계나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걸 꺼려 공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언론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고 여론 형성과 민주정치가 위협을 받는다는 위기의식이 이런 새로운 시도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과 시민의 기금으로 언론인을 지원하는 단체들도 생겨났다. 국민의 20% 정도가 지역신문 소멸로 국가 운용과 민주주의에 관한 주요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데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냐는 판단에서다.

법률적으로도 커뮤니티 뉴스 및 소규모 기업 지원법(Community News and Small Business Support Act) 언론 경쟁 및 보존 법안(Journalism Competition And Preservation Act) 등이 연속해 등장했다. 이렇게 되자 지자체 중에 지역 언론에 광고 예산을 할당하는 곳도 생겨났다. 놀라운 일이 아닌데 놀랍다.

우리는 오히려 지자체가 지역언론에 구독료로 지출해 온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역언론 난립과 예산 지원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미국이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원한 돈이 저널리즘을 살릴지 언론의 소유지배자인 헤지펀드를 살찌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눈에 띄는 점은 지역신문을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소유하고 있는데 경영권 유지나 확대강화를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언론이 되도록 유도하고 지원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독자가 지역신문에 기부금을 내면 지역 정부가 매칭으로 언론사에 그만큼의 지원금을 책정해 지원하는 방식도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비슷한 지원방법들이 시행되고 있다. 중요한 건 지역민의 공감과 합의다.


, 버티는 변칙 경영의 승리


우리도 일찌감치 지역신문발전위원회를 두고 지역언론을 지원해 왔다. 그다지 성과가 좋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있는 지역신문발전기금도 2021869900만 원 2022826400만 원 2023825100만 원 2024728200만 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

2024년 예산은 기획취재 45000만 원 지역신문 제안사업 3억 원 지역민 참여보도 12800만 원 지역인재 인턴프로그램 64000만 원 지역신문 교류 15000만 원 지역신문 모니터링 27500만 원 디지털 취재장비 임대지원이 165000만 원 등이다.

미국과 다른 점은 상황이 열악한 데도 언론사는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기간행물 중 인터넷신문 등록현황을 보면 202311500개에 이른다. 종이신문지역언론으로 좁히면 2012571개였던 지역일간지·주간지는 2021624개로 오히려 9.28% 늘었다(2022 신문산업 실태조사). 그런데 종사자 수는 7620명으로 오히려 14.1% 감소했다. 회사 수만 늘어날 뿐 취재제작은 위축되고 변칙적 경영으로 버티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일단 많이 벌어 생존을 확보한 뒤 저널리즘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언론의 주장은 허무하다. 새로운 비전과 혁신의 실천을 보장할 수 있는 재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최근 한국지역언론학회 학술지 언론과학연구에 게재한 논문 <지역뉴스의 온라인 유통 구조 연구> (정용복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를 인용해 설명하자면 지역언론에는 온라인 기사유통을 위한 별도 부서를 갖춘 언론사가 드물다. 취재 업무를 겸하는 기자가 직접 포털·SNS에 기사를 올린다. 온라인 뉴스 유통은 오로지 포털에 의존하고 있었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의 포털에서 거두는 실시간 검색과 조회 수, 신속성이 절대적이다.

여기에 지역성이 강한소식을 얹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주목도와 조회 수가 떨어진다. 지역민들도 전국 뉴스에 더 몰린다. 그래서 지역언론이라도 자꾸만 전국 이슈를 쫓는다. 취재한다기보다 그런 이슈를 받아쓴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뉴스저널리즘에서 지역성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조회 수를 올리며 대박을 터뜨리려면 새만금 잼버리 같은 뉴스 외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게 아니라면 맛집이나 자극적인 사건사고 소식이 필요하다.

피동적으로 끌려가는 조직에서 혁신과 비전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저널리즘은 저널리즘대로 살려야 하고, 취재 및 기사 생산 방식도 언론사 독자적으로 할 게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 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역언론은 회생의 길을 찾고 전국적 영향력을 쌓아갈 수 있을까?


뉴스타파-지역언론 특활비 공조


서울의 은평시민신문은 지난 7저널 서울이란 새 매체를 창간했다. 지난해 8월에 서울구경이라는 뉴스레터를 시작해 은평구에서 서울 지역으로 범위를 넓히더니 이번엔 저널이다. 서울의 은평구이니 별다른 지역 정체성도 없어 민원 창구로, 지역정치인 홍보채널로 활용될 뿐 저널리즘으로부터 멀 수밖에 없다. 대도시 기초지자체 지역신문이 보통 그러하다.

그런데 은평신문은 은평에서 서울을 기록하기로 했다. 서울의 청년들, 서울의 상인들, 주거, 환경, 건강, 소외 등의 도시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사 쓰기 방식도 일반 신문기사와 다르게 주민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잡지에 가까운 형식을 택했고 그래서 저널 서울이다. 지역언론과 행정 권력이 만나 이뤄지는 취재가 아니라 현장답사를 통해 주민과의 만남을 통해 성심껏 쓴 기사들로 채우려 애쓰고 있다.

충남의 당진시대는 1993년 국민주로 창간됐다. 충남미디어그룹협동조합에 의해서 운영된다. 지역 단체들의 지자체 지원보조금 부적절 사용을 보도하며 당진시의 보조금 정산·관리제도를 강화시켰다. 평택항으로 묶여 예산과 개발정책도 평택에 내주던 지역의 항구를 2001년엔 당진항으로 되찾아 왔다.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단독 인터뷰하며 당진항 지정 약속을 받아내고 끈질기게 밀고 나가 이룬 성과다.

충남 태안신문은 태안바다 기름유출 사고 이후 15년간 바다를 치유하고 피해민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과정을 2000여 건의 기사로 기록했다. 특히 가해기업인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기금 운용을 명목으로 2016년 설립된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이 피해민들이 아닌 조합원들만을 위해 운영되는 문제를 파헤쳐왔다. 전국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 이슈를 15년간 끌고 온 것이다.

지역이 사라지고 있는데 지역신문이라니라는 부정적인 판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면 지역신문은 더욱 간절하다. 사회 현안을 심층적으로 보도해보자는 목표로 펼치고 있는 저널리즘 협업과 조직들의 연대도 눈여겨 봐야 한다.

뉴스타파가 5개 지역 언론사와 진행하는 검찰 특활비 취재와 같은 협업 저널리즘은 정보의 조작과 은폐가 횡행하고 기성 언론사가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뉴스타파가 5개 지역 언론사와 진행하는 검찰 특활비 취재와 같은 협업 저널리즘은 정보의 조작과 은폐가 횡행하고 기성 언론사가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뉴스타파가 전국 5개 언론사와 진행하는 검찰특활비 조사는 전국적인 이슈를 지역으로 좁히고 모아서 다시 전국으로 넓히는 취재이다. 지역마다 공공 비영리 성격, 그리고 시민과 연대하는 매체들이 대거 출범해 지역 사회의 정치, 정책 감시, 전국 이슈의 지역별 현황 등 다양한 주제를 취재보도해야 한다. 이런 협업 저널리즘은 정보의 조작과 은폐가 횡행하고 기성 언론사가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될 방식이다.

지역언론이 사라진다면 당연히 지역공동체와 지역문화가 사라진다. 우리 사회는 지역언론이 무척이나 많음에도 선택의 혼란만 가중되고 힘도 분산된다는 게 문제다. 독자와 시장이 아니라 지자체 구독료광고에 의해 생존하니 비판기능을 상실한다. 지자체를 장악한 정치 권력은 중앙정치만 바라보며 충성경쟁까지 벌이니 황당한 노릇이다.

어쨌든 건강한 지역언론이 소멸하거나 풍요 속의 빈곤으로 지역민에게 저널리즘을 제공치 않는다면 정치적 편향이 강해지고 정치적 혐오와 투표율 저하가 우려된다. 지역민들은 정치든 사회경제든 SNS에 더 의존하게 된다. SNS는 넓게 고르게 퍼진 정보연결망이 아니다. 신문방송보다 더 파편적이고 격리상태에서 극단적 정보에 취하게 만든다. 또 대부분 전국적 이슈에 매몰된다.

충청리뷰가 최근 지면을 대폭 할애해 내년 총선 출마예상자를 다뤘지만, 이 역할이 위축소멸하면 내 지역의 정치가 어찌 되고 어떤 인물이 나섰는지조차 모른 채 총선을 맞게 된다. 이미 지방선거에서 선출한 지자체장 면면을 돌아봐도 선거가 구실을 못 했음은 확연히 드러난다. 건강한 지역언론이 지역정치를 제대로 감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독자들은 지역언론 붕괴가 민주주의의 커다란 위협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변상욱

CBS 퇴임 이후 언론판에서 주가가 더 올라 섭외 1순위로 꼽히는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군사정권이 CBS의 보도기능을 박탈한 시절 PD로 입사해 프레스카드 없는 무자격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이후 CBS 보도국 대기자로 여러 뉴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했고, YTN ‘뉴스가 있는 저녁’ 앵커를 맡기도 했다. 저널리즘과 철학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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