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나그네를 기다리는 작고 예쁜 극락강역
상태바
숨어서 나그네를 기다리는 작고 예쁜 극락강역
  • 신용철 전문기자
  • 승인 2023.09.22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기자기한 시설물에 절로 웃음…비밀정원역으로 계속 남아주길
현대사 아픔 딛고 유네스코 3관왕 도시로 우뚝 선 ‘빛고을 광주’
극락강역은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던 역사를 1959년에 소박한 맞배지붕 구조로 새롭게 준공해 오늘날까지 이른다. 사진=신용철
극락강역은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던 역사를 1959년에 소박한 맞배지붕 구조로 새롭게 준공해 오늘날까지 이른다. 사진=신용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꼬마역이자 도심 속 예쁜 꼬마역이라고 불리는 기차역은 어디에 있을까. 조금 과장해 정의하자면 아마도 이곳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철도마니아(소위 철도덕후)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을 듯싶다.

정답은 전남 광주광역시에 있는 극락강역이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나고 중·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의 지인도 잘 모를 정도로 광주송정역과 광주역 사이에 숨겨진(?) 도시역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꼬마역’이자 ‘도심 속 예쁜 꼬마역’이 바로 극락강역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꼬마역’이자 ‘도심 속 예쁜 꼬마역’이 바로 극락강역이다.

극락강역은 지난 1922년 역원 무() 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1938년에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그러던 중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던 역사를 1959년에 소박한 맞배지붕 구조로 새롭게 준공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됐다. 한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KTX열차까리 비껴가는 명장면을 볼 수 있어 철도덕후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역의 호칭은 인근에 있는 극락강에서 따왔으며 극락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근방에 있던 여관 극락원에서 강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이 속한 동네는 1914년 지역통폐합으로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으로 불리지만 옛 지명은 극락면이었다. 인근에서 극락강역과 같은 옛 지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서창에 위치한 극락교는 광주 시내에서 공항과 송정 방면으로 가는 길목일 뿐만 아니라 매년 억새 축제가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극락(極樂)=즐거움 있는 곳


극락강역은 광주송정역과 광주역 사이를 오가는 통근열차를 이용해 철도여행객들이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역에 도착하게 되면 먼저 필자처럼 입가에 미소부터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도심 속에 있지만 시골역 같은 느낌에 처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역 풍광을 보며 어릴 적 향수에 잠시 젖을 수 있을 것이고, 이 작은 역에 어떻게 이런 시설물들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절로 웃음도 나올 것이다.

이곳을 찾는 철도여행객들을 위해 역사 밖에 설치한 다양한 포토존부터 역사 안에는 철도제복 무료체험 등을 할 수 있으며 방문한 이들이 철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부터 현재 KTX까지 다양한 열차 사진들이 붙어있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역은 지난 2013년 철도문화재로 지정됐고, 2017년 한국철도 광주본부 고향역으로 지정되면서 테마역 개발을 시작해 2018년과 2019년 극락강역 문화축제와 극락강역 내일로 페스티벌을 개최했으며 이런 다양한 노력들로 2019년 한국철도에서 최우수 테마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시가 시민들이 더욱 나은 편리와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새롭게 바뀌기까지 자치단체장의 강한 의지와 공무원들의 값진 수고가 중요하듯이 이 작은 역 또한 역장의 열심과 역무원들의 노고 그리고 이 역을 아끼는 봉사단들의 봉사가 없었다면 오늘날 이런 값진 결실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역의 아기자기한 모습들

극락강역을 떠나며 그런 소중한 마음들을 계속 이어나가길 바라며 이 작은 꼬마역이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가끔 찾아와 쉬고 잠시라도 잃고 사는 웃음을 찾을 수 있는 비밀정원역이 되었으면 했다.


광주송정역-극락강역-광주역


광주송정역에서 통근열차를 타고 극락강역을 오게 된 필자는 광주역으로 가는 통근열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광주역에 도착하자마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 옛날 서울과 목포로 오가는 이동객들로 북적북적하고 화려했던 광주역은 이제 광주송정역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옛 영화를 추억으로 삼는 역 같았다.

 

옛 전남도청에서 광주은행 사거리 518미터 금남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국내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로 지금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었다.
옛 전남도청에서 광주은행 사거리 518미터 금남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국내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로 지금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었다.

광주역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지 금남로까지 걸어가며 여느 지방 중소 도시에서 모두가 고심하고 있는 원도심권의 한적한 거리풍경에 왠지 쓸쓸하면서도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 이치도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어느덧 금남로 인근에 도달했고, 역시 광주의 중심지답게 이곳에서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옛 전남도청에서 광주은행 사거리 518미터 금남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국내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로 지금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현대사의 아픔을 정통으로 맞은 빛고을 광주는 이제 그것이 곧 역사가 되고 기록문화의 유산이 된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무등산권 지질공원과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유네스코 3관왕 도시로 우뚝 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들러 그 당시를 기록한 수많은 기록물을 관람했고 그 가운데 주요일간지들의 왜곡된 언론보도와 정부의 보도지침 실태를 보며 분노했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고 고립된 광주섬에서 치열하게 부패 군사정권에 항거한 광주 민중들의 민주화운동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245발의 헬기사격 총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당시 관련 영상과 헬기모형, 갤러리 등을 볼 수 있는 역사문화복합 공간이다.
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245발의 헬기사격 총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당시 관련 영상과 헬기모형, 갤러리 등을 볼 수 있는 역사문화복합 공간이다.

인근의 전일빌딩245’로 향했다. 이곳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245발의 헬기사격 총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당시 관련 영상과 헬기모형, 갤러리 등을 볼 수 있는 역사문화복합 공간이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새롭게 단장한 빌딩 전망대에 올라 5·18민주광장을 내려다보며 1980518일 무렵을 상상해 봤다.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당시의 상황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서 미래는 없다는 역사의 격언처럼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며 변화할 때 그때에서야 이전과 같은 참혹하고 상식 이하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광주섬을 기억하다


12일의 기차여행 마지막 코스로 광주광역시 원도심권에서 그리 멀리 않은 거리로 광주천만 넘으면 되는 양림역사문화마을로 향했다. 전부터 광주에 올 일이 생기면 항상 들르던 곳으로 마을 입구에 있는 사직동 기타거리는 나의 단골코스였다. 이곳에서 광주 지인들과 한 잔을 하게 되면 얼굴 처음 보는 손님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곤 했던 곳이다.

‘광주의 어머니산’이라고 불리는 무등산
‘광주의 어머니산’이라고 불리는 무등산

양림역사문화마을은 최근 말 많고 탈 많은(?) 음악가 정율성의 생가를 비롯해 시인 김현승의 시비와 소설가 황석영과 문순태의 집필지 등으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개신교와 우리의 전통문화 유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으로 100년이 넘는 근현대건축물들과 동서양이 공존하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박물관마을이라 할 수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이 마을에 있는 사직공원 전망타워에 올랐다. 멀리 광주의 어머니산이라고 불리는 무등산의 장엄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문득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싯구로 시작하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무등을 보며라는 시가 생각났다.

미당의 갈지자 정치적 행보를 떠나 꿈은 많았지만 가난했던 나의 20대 시절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 시였다. 오늘날 MZ세대들 가운데서도 20대 시절의 나와 같은 시련을 겪고 있는 청춘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시렸다.

미향의 도시답게 수많은 맛집이 있지만, 광주송정역 근처에 있는 ‘1913송정역시장
미향의 도시답게 수많은 맛집이 있는 ‘1913송정역시장.

오송역으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광주송정역으로 향했다. 한번 식사를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맛집을 찾고 싶은 것은 모든 식도락가의 바람일 터. 독자들 가운데 광주에 가서 식사한다면 미향의 도시답게 수많은 맛집이 있지만, 광주송정역 근처에 있는 ‘1913송정역시장에 꼭 방문해 보시길.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광주 핫플레이스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다양한 먹거리와 즐거운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방송과 신문 등에 소개된 몇 곳의 국밥집과 국숫집에서 꼭 식사해 보시기를. , 그때 먹었던 국밥이 아직도 그립다! 도대체 국밥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신용철

월간 ‘말’에 이어 ‘충청리뷰’, ‘제주신문’ 등에서 10여 년 동안 다양한 기자생활을 경험했다. 제주도에 꽂혀 7년 동안 자연과 벗하며 살다가 지금은 어쩌다 철도노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른바 ‘철도덕후’가 되고자 퇴직 전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역을 방문하리라 계획하고 있으며, 먼 훗날 퇴직 후엔 전 세계로 기차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