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냐 진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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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냐 진화냐
  •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물리학자
  • 승인 2023.10.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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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학과 종교, 설명하려는 대상과 방법이 다를 뿐

이 세상은 그냥 저절로 생긴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인가요? 이 누군가는 물론 신을 의미합니다. 이 논쟁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논쟁이자 지금도 계속되는 논쟁입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은 논쟁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아마도 기독교인일 것입니다.

자연과학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자연을 보면 참 오묘합니다. 자연 풍광만 보아도 오묘한데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을 보면, 그리고 그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얼마나 다양하고, 오묘하고, 기이합니까? 나아가 생물, 아니 인간의 신체구조만 보아도 그 오묘함이란 놀라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눈을 보세요. 눈에는 렌즈 역학을 하는 눈동자가 있고, 빛이 이 눈동자를 통해서 망막에 상을 만들고, 이 상은 시신경을 통해서 뇌에 전달되어 우리가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입과 혀는 어떤가요? 음식을 소화하고 배설하는 위와 온갖 내장은 어떤가요? 허파와 심장은 또 어떤가요?

이런 오묘한 자연이 그냥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 오묘한 자연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어떤 존재가 특별한 의도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보일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대자연의 신비함과 생명의 오묘함은 신의 존재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로 보였을 것입니다. 더욱이 성경에는, 세상은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의 창세기로부터 지금까지를 성경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계산해 보면 이 우주의 나이는 1만 년도 채 안 되는 6000여 년이라고 합니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의 나이는 최소한 40억 년이 넘고,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성경의 결론과 과학자의 결론이 이렇게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창조론자들은 지구의 지층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 한꺼번에 만들어졌고, 지구 나이를 측정하는 방사능 연대 측정법은 방사능의 반감기가 옛날에는 달랐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우주의 나이도 지금의 물리학 이론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상수(중력 상수, 전자의 전하량, 빛의 속도 등)가 과거에는 지금과는 달랐었기에 지금의 이론으로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나는 여기서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주장이 과학일 수가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창조론자들은, 창조론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벽하지 않기는 진화론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진화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니, 진화론뿐인가요? 모든 과학 이론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상대론도 양자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아직도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창조론은 어떤가요? 창조론은 진화론과는 달리, 틀릴 수가 없는 이론입니다. 아니, 틀려서는 안 되는 이론입니다. 창조론은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과정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어떤 불가침적인 전제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창조론은 불가침적인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론은 과학이 아닙니다. (조심하세요. 창조론이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 절대로 기독교를 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god)’을 개입시키는 순간, 그것은 과학이 아닌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신은 모든 불가사의한 현상을 설명하는 만병통치약입니다. 신이 했다고 하면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지전능한 존재가 신인데 신이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요? 신이라는 존재를 가정하고, 그 존재가 전지전능하다고 정의하면 설명하지 못할 자연현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없다면 과학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과학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과 마주치더라도, 신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설명 방법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해서 이 지구에 현재와 같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겨났을까에 관한 의문을 가지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작업에 진화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론자들은 창조되었다는 불변의 가설에 맞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조론이 과학의 교과에 들어가 있을 공간은 없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모순과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명하려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과학은 물질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종교는 절대적인 신과 인간의 관계를 대상으로 합니다. 과학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하지만, 종교는 객관성보다는 깊은 명상과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과학과 종교는 서로 싸울 수도, 싸울 필요도 없는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그러니 과학자가 종교에, 종교인이 과학에 자기의 입장으로 개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과학을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보다 더 상위에 두는 사람들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창조론은 옳을지 모르지만 과학이 아니고, 진화론은 틀릴지 모르지만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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