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코미노섬, 신비한 블루 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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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코미노섬, 신비한 블루 라군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10.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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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푸른 산호초’와 ‘파다다이스’를 떠올리다

지중해, 몰타를 가다②

수도인 발레타 인근의 호텔 아침 식당에 내려가니 차려진 음식 중에서 영국식 아침 식사 메뉴가 눈에 들어온다. 영국 바깥에서 영국식 아침 식사가 보이는 곳은 주로 영연방이나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곳이다. 몰타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영국식 아침식사.
영국식 아침식사.

잉글리시 브랙퍼스트(English breakfast)는 구운 계란, 소시지, 햄과 베이컨, , 버섯, 감자, 토마토 등과 토스트 빵으로 구성된다. 모든 재료를 굽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흔히 영국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지만, 영국식 아침 식사만큼은 푸짐해서 한 끼를 먹고 나면 오후까지 든든하다.

달과 6펜스를 쓴 영국 출신 소설가 서머싯 몸은 영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세 끼 모두를 아침 식사로 먹어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 영연방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영국식 아침 식사를 취급하는 식당은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 저녁에도 영국식 아침 식사 메뉴가 가능하다.

영국식뿐만 아니라 푸짐하기는 독일식 아침 식사도 마찬가지다. 알프스 이북의 추운 나라는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잠들어 일찍 일어나기에 공복 기간이 길어서인지 아침 식사를 든든히 챙겨 먹는 편이다. 반면 지중해 일대의 국가,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아침 식사를 빵과 커피와 주스 정도로 간단하게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건축 미술 음악 복식 그리고 성격까지 모든 방면에서 인간은 살고있는 땅의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다.

호텔 아침 식당의 한쪽에는 영국식 아침 식사 구성 메뉴 외에도 올리브와 그리스식 페타 치즈 등, 굽지 않고 절였거나 신선한 채소로 가득한 지중해식 식단 메뉴가 차려져 있다. 호텔의 아침 식사 메뉴 하나만 보더라도 현대 몰타의 문화는 영국식과 지중해식의 혼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순수혈통보다 혼합일 때가 더 매력적이다.


코미노 섬으로 가는 길

 

코미노 섬으로 가는 길
코미노 섬으로 가는 길

첫 회에 언급했듯이 섬나라인 몰타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크게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섬이자 수도인 발레타와 몰타의 관문인 국제공항이 있는 몰타(Malta)섬과 그보다 작은 고조(Gozo), 그리고 두 섬 사이의 해협에 있는 가장 작은 코미노(Comino)섬이다. 45일 일정이면 조금 바쁘지만 세 섬을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어차피 몰타를 나가려면 공항이 있는 몰타섬으로 다시 와야하니 첫 코스는 먼 곳부터 시작해 가까운 곳에서 마치는 게 낫다. 몰타 여행의 첫 방문지는 코미노섬으로 잡았다. 코미노섬을 먼저 보고 고조섬으로 간 뒤에 몰타섬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이다.

하늘에서 본 블루라군
하늘에서 본 블루라군

코미노섬은 수도인 발레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종점에서 내려 배를 갈아타고 들어간다. 영국식 아침식사를 든든히 하고 호텔을 나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몰타섬의 서북단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 버스가 반대 방향에서 지나쳐 간다. 아 참, 몰타는 영국처럼 좌측통행이지. 호텔 조식으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고도 깜빡 잊었다.

유럽 바깥의 구 영국 식민지는 좌측통행을 하는 곳이 많지만, 유럽은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유럽 내에 과거 영국이 지배했던 몰타와 키프로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측통행이다. 스페인 남단의 지브롤터 역시 영국이 지배했으나, 몰타와 키프로스처럼 섬나라가 아니고 스페인 본토와 차량이 오가기에 우측통행이다.

코미노 섬 블루라군
코미노 섬 블루라군

반대편 차선으로 길을 건너서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지중해를 따라 달리며 정류장 마다 사람을 태운다. 버스의 오른쪽 차창으로는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에 올랐을 때만 해도 비어있던 실내 공간이 어느 새 사람들로 꽉 찼다. 모두 코미노 섬으로 가는 여행자와 관광객이다. 더 이상 탈 공간이 없다 싶을 무렵에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기 시작한다. 코미노 섬으로 가는 보트 선착장이 있는 종점에 도착한 것이다.

석호를 뜻하는 블루 라군


몰타의 코미노 섬은 일명 블루 라군(lagoon)으로 유명하다. 사실 블루 라군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몰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여러 곳에 있다. 다녀본 곳 중에서는 몰타 라오스 아이슬란드 등의 블루 라군이 떠오른다. 엄밀하게는 세 곳 모두 물빛은 블루 이지만 라군은 아니다. 라군은 바닷가 해안선의 석호(潟湖)나 열대 바다의 고리 모양 산호초 섬인 환초(環礁)를 뜻한다. 한반도에는 환초는 없지만, 경포호를 비롯해 송지호 영량호 등 동해안에 많은 석호가 있다.

코미노섬 블루라군
코미노섬 블루라군

그럼 왜 석호도 아닌 곳에 블루 라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유를 생각 해보면 뭐니 뭐니 해도 상업적인 이유가 크다. 블루 라군이라는 이름이 워낙 친숙하고, 로맨틱한데다 신비스럽기 까지도 하니까. 그래서 전 세계 어디나 물빛이 좀 푸르스름 하면 온천이든 바다든 호수든 연못이든 가리지 않고 블루 라군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많다. 몰타의 블루 라군도 마찬가지다. 다음이나 네이버 지도에서 블루 라군이라는 상호를 검색해보면 한국에도 블루 라군을 상호로 사용하는 업소들이 꽤 보인다. 카페도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업소는 수영장이다.

라군은 반드시 산호초(coral reef)가 아닌데, 블루 라군 하면 먼저 산호초부터 떠오르는 이유는 1980년대에 개봉했던 브룩 실즈 주연의 영화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영어 원제는 ‘The blue lagoon’이었으나 번역 제목은 푸른 산호초였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해 생각한다면 일본어 번역 제목을 그대로 따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코미노 섬의 하트 모양 해식 동굴
코미노 섬의 하트 모양 해식 동굴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한국어 한자 단어가 일본이 만든 것을 생각한다면 산호초도 라군을 일본이 번역하며 만든 단어일 것이다. 물론 푸른 석호보다는 푸른 산호초가 더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몰타의 블루라군이 있는 코미노 섬으로 가는 배를 타니, 정작 브룩 실즈 주연의 푸른 산호초를 아직도 못 봤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1980년대 개봉 당시에는 중학생이라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서 못 봤고, 장년의 나이가 되어서 보려니 시큰둥할까 봐 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내용의 영화였던 피비 게이츠의 파라다이스도 같은 이유로 아직 못 봤다.

당시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라면, 두 영화 모두 제목은 익숙하지만, 영화를 본 이는 드물 것이다. 대신 두 영화의 주연배우였던 브룩 실즈와 피비 케이츠의 얼굴은 매일 열두 번도 넘게 들여다봤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 유행했던 브로마이드 코팅 책받침 책갈피 때문이다. 피비 케이츠가 직접 부른 영화의 주제가도 매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와서 지금 다시 들어도 멜로디가 귀에 익다.

트레킹 루트에서 내려다 본 해안침식 지형과 해식 동굴, 사각형 안이 산타마리아 요새
트레킹 루트에서 내려다 본 해안침식 지형과 해식 동굴, 사각형 안이 산타마리아 요새

석호도 아니고 산호초도 아니지만, 몰타 코미노섬 블루 라군의 물빛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푸름과 연푸름 짙푸름이 섞여 있다. 코미노 섬에 도착하기 전 보트는 해안 침식동굴 몇 곳을 보여준다. 선장은 침식 동굴 깊숙이 보트를 몰고 들어간다.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빛을 흡수하고 튕겨낸 바닷물의 빛깔은 몽환적이기 까지하다.


두세 시간이면 섬 일주 가능


절경이 펼쳐질 때마다 보트에 탑승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감탄사를 뱉어낸다. 이윽고 코미노섬의 선착장에 도착해 내리니, 4월인데도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국적은 다르지만 대부분 젊은 이들이다. 태양은 뜨겁지만 아직 수온은 차가운지, 바람이 불자 바닷물에서 나온 젊은이들 몇이 몸을 떤다. 그래도 즐거워 보인다, 젊음이니까.

코미노 섬의 들풀
코미노 섬의 들풀

가수 이상은의 노래 가사처럼, 젊음 그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젊었을 때는 몰랐다가 나이가 드니 깨닫는다. , 이런 곳은 좀 더 젊고 싱싱 할 때 왔어야 하는 곳인데.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같이 온 일행은 모두 중 장년의 나이라, 아무도 수영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해수욕 대신 한국의 중장년 일행이 택한 것은 코미노섬 일주 트레킹. 섬의 크기가 크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두세 시간이면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다. 코스의 난이도도 쉬운 편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야생화가 펼쳐진 아름다운 길이다.

코미노 섬 트레킹
코미노 섬 트레킹

선착장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길의 초반에는 곳곳에 해안 침식 동굴의 절경이 펼쳐진다. 30여 분 정도 천천히 걷다 보면 거대한 사각형의 요새 성채에 도착한다. 북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고 지중해 일대에서 약탈을 자행했던 이슬람 해적인 바르바리 해적을 막기 위해 1618년 몰타 기사단이 지은 산타 마리아 요새이다.

2002년에 개봉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촬영지였기도 해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실제 배경장소라고 착각하지만, 실제 배경은 몰타가 아니라 프랑스 남부의 이프섬이다.

산타마리아 요새
산타마리아 요새

산타 마리아 요새를 지나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한때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버려진 건물들이 보인다. 몰타의 지배세력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바뀌며, 몰타에 있던 프랑스 사람들은 몰타를 떠나거나 코미노섬으로 이주 격리되었다. 길은 코미노섬 선착장의 반대편의 작은 마을로 이어진다. 구글맵을 들여다보니 코미노 섬의 유일한 마을이다.

선착장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달리 차분하고 조용하다. 당일 방문 여행자나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태양은 뜨겁지만 건조하고 쾌적한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들꽃으로 가득한 길을 걷다 보면 그리 힘든 줄도 모르고 어느 새 출발 원점인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선착장 근처에는 푸드 트럭 여러 대가 성업 중이다. 간단한 핫도그 햄버거 샌드위치와 맥주 칵테일 생과일 주스등을 판매한다.

코미노섬의 푸드 트럭
코미노섬의 푸드 트럭

푸드 트럭에서 음식과 마실 것을 사서 적당한 곳에 앉아 블루 라군과 물놀이 하는 청춘들을 내려다보며 요기를 하니, 1980년대 중학생 시절 히트했던 산울림의 청춘의 가사 첫 구절이 생각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과거가 될 것이고 지나고 보면 청춘이었구나 싶을 때가 올 것이다. 청춘 시절처럼 가슴 떨리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지만, 다리가 떨리기 전에 훗날 후회가 없도록 더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연일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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