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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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 이지상 가수, 작곡가
  • 승인 2023.10.2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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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이 그리워 알마티로 갔다

알마티로 갔다. 오랫동안 호수를 둘러싼 자작나무숲의 가을을 그리워 해왔다. 오선지나 기타는 물론 책 한 권 안 들고 비행기를 탔다. 카메라와 여분의 옷 몇 벌만 챙겼다. 천산(天山-텐샨산맥)을 넘어와 파미르고원을 횡단하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비행기가 날았다. 비행시간은 6시간 50, 공항을 이륙한 시간은 저녁 610.

서해 바다의 작은 섬들 사이로는 황홀한 일몰의 햇살이 구름을 물들였다. 저녁 햇살은 쉬이 저물지 않았다. 해가 둥근 지구의 서쪽으로 기우는 시간만큼 비행기는 앞서가는 해를 쫓으며 서쪽을 향해 날았다. 날 저무는 시간의 서해 바다는 푸르렀다가 검붉었다가를 반복했고 상해(上海)쯤에서 시작된 대륙을 지나면서는 역시 검붉어진 구름 아래로 간간이 도시의 불빛들이 깜빡거렸다.

땅 위에 터를 잡은 지상의 일가들은 그들이 경외하는 하늘을 향해 끊이지 않는 모스부호처럼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불빛은 누군가의 간절한 구조신호로 읽히기도 했고 절대자를 향한 기도문인 듯도 했다가 때늦은 소식을 전하는 멀어져간 사람의 안부처럼 들리기도 했다. 황혼(黃昏)은 사막 즈음에 도달해서야 사라졌다.

구름 위의 비행에서 밤하늘은 별의 시간이었다. 가을로 접어든 북반구의 별자리 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당한 간격으로 무리 지어 흔들리는 기체와 무관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산에도 별빛이 떨어졌다. 빛 하나 없이 외로운 천산의 높은 봉우리들은 먼 우주로부터 도착한 빛들을 모아 나의 작은 창으로 보내 주었다. 기내의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진 설산 위로 비추는 별들의 개수를 세며 나는 잠들 틈을 찾지 못했다.


천천히 순하고...


투덜거리지 않고 불만 없고 아무 걱정 없는 하루를 보낸 적이 있는가를 물었었다. 그런 날은 없었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하지 않고 잠든 밤도 없었다. 언제나 크고 작은 계획이 있었다. 그것을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불가결한 요소로 포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는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상쇄시키기 위한, 또는 욕망의 충족을 위한 얕은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나의 불온한 계획은 언제든 세워졌고 대부분은 실행되지 않았다. 지난달 사진전을 열었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삶이 다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셨나요?” 사진전 개막공연 때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드렸던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바람을 품는 것도 아니었다. ‘넘치면 좀 덜어내고 모자라면 더 채워 주고 빨리 가기 위해 혼자 뛰기보다는 오래 가기 위해 여럿이 걷는 지혜를 구하는 것. 가장 잘 사는 한 사람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지 않고 가장 못사는 한 사람을 위해 다수가 손 내미는 것. 내일을 걱정하며 잠 뒤척이지 않고 내일을 향한 기대로 달콤한 꿈에 젖어 드는 것.’

바람이 너무 거창하다면 다 접고 그저 “1+1=2”라는 가장 단순한 상식이라도 인정이 된다면 좋으련만 그조차도 어려워진 세상이었다. “평생 일본 놈에게 안 잡히고 여생을 마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노병 홍범도는 그리운 고국 땅에 돌아와 일본놈들에게 영혼을 붙들리고 지구의 우물에 독을 풀고 다니는 자들에게 빌붙어 영혼을 파는 무리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민주의 , 통일의 짜를 꺼내기조차 어색한 시절의 가을을 맞았었다.

그럼에도 애초 품은 마음을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허나 갈 길은 가야겠고 맘먹은 일은 잘 안되고.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고 여겼다.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진전의 제목을 달았었다.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바람은 가두지 말아라


자작나무 숲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순백의 군락 위로 빼곡하게 물들은 노란 금풍(金風)의 향연에 들어가 나도 함께 물들고 싶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 모스크바에서 이르쿠르츠, 그리고 바이칼 호수로 접어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추억은 지금도 아스라하다.

한잔의 보드카로 목을 축이고 적당한 취기로 바라보는 시베리아 너른 벌판은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수시로 아른거렸었다. 여름이었다. 가지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리며 언 땅 위로 떨어지고 동토의 눈밭 위에서도 꿋꿋하게 숲을 이룬 자작나무에 손을 대며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린 적도 있었다.

시베리아 동토에 새겨진 역사 속의 이름들. 겨울이었다. 그렇게 열 두 번의 시베리아 기행이 있었다. 바람(wind)은 가둘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새긴 건 자작나무 숲에서였다. 거대한 숲에 촘촘히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도 바람은 불었고 나무들을 흔들었다.

알마티는 가을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공원을 비추는 햇살과 노란 나뭇잎 속에 갇혀있는 도시였다. 호수는 맑고 아담했으나 호수를 둘러싼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면 노랗게 물들어만 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정도였다. 바람은 차가웠고 햇살은 따스했다. 자작나무 노란 금풍 위에는 한눈에는 담을 수 없는 천산의 설산이 경이로왔다.

이 아름다운 곳은 흔히 중앙 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길이 1000km에 최고봉이 몽블랑(4808m)인 알프스를 길이 2500km에 포베다산(7439m)을 포함한 5000m~7000m 봉우리가 즐비한 하늘이 내린 산에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호수 위로 바람이 불었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도, 천산의 만년설 위로도 바람이 불었다. 천산의 대자연은 바람(hope)은 가두지 말아라라는 말로 나를 훈계하는 듯했다. 사람은 가둘 수 있으나 사상은 가둘 수 없다는 인간됨의 요구를 멈추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들었다. 천천히 가을을 맞으러 갔었다. 그리고 순하게 가을에 물들었다. 나는 다시 천산의 바람을 등지고 날아 내가 사는 땅에 돌아왔다. 이제는 뜨끈하게 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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